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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은행나무가 말해주는 것

떨어지는 은행잎은 죽음이 아니라 탄생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2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제 곧 거리마다 가로수 밑으로 노란 색종이들이 눈처럼 날릴 때가 온다. 이미 황금설이 내린 곳도 있으리다. 그럴 때 우리들은 이효석이 그의 수필 <낙엽을 태우며>에 남긴 이 명언을 생각한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한여름 들이나 산에 가면 온통 칡넝쿨이 우거지고 그 줄기마다 칡의 잎들이 무성해서, 마치 이 세상이 칡잎으로 뒤덮이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는 칡 잎은 다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 이제는 노란 은행잎이 세상을 뒤덮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은행잎에 대한 시인들의 찬사와 영탄, 한탄이 은행잎만큼이나 많은 것을 접하게 된다.​

 

 

우리 한국의 가을은 이제 확실히 은행잎이 분위기를 잡아준다. 지금도 우리는 길에 쌓인 은행들을 밟으며 이 은행잎들이 상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버릴 수가 없는데, 이런 가로수가 없던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나? 생육신으로 유명한 김시습(金時習)도 이런 시를 남긴다;​

 

落葉不可掃  떨어지는 잎은 쓰는 것이 아니라오

偏宜淸夜聞  맑은 밤 그 소리 듣기 좋나니

風來聲慽慽  바람이 불면 그 소리 우수수하고  

月上影紛紛  달이 오르면 그림자 분분하지요

                                                 ... 김시습 낙엽​

 

가을에 은행잎이 좋은 것은 노란빛이 우리의 시각을 마비시키는 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서 떨어지는 은행알이 천식 등 호흡기 질환에도 좋은 약재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는 이 나무가 학자의 나무고 학문의 나무여서 이 나무를 보면 위대한 학자인 공자의 체취를 느끼고 가르침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까닭일 것이다.

 

공자는 숲에서 제자들과 대화하다가 행단(杏壇, 학문을 닦는 곳)에 앉아서 거문고를 타면서 휴식을 취했다고 하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 행단을 은행나무 단으로 알고 서원이나 향교에 은행나무를 많이 심고 가꾸었다. 조선시대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서울의 문묘에 수령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은 유명하거니와 고려시대에도 은행나무를 좋아해 개성의 성균관에 높이 30미터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북한의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데 고려시대에 자란 것으로 미루어 수령이 500년 이상 되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서울 근교에서는 높이가 40미터가 넘는 용문사 은행나무가 천 년이 넘은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졌지만, 경북 영주 순흥에 가면 내죽리의 '압각수' 은행나무가 이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무로 유명하다. 세조가 1455년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를 때에 바로 밑의 동생 안평대군은 곧 죽임을 당했고 그 밑의 동생 금성대군은 경북 순흥으로 유배를 당했다. 그런데 이 고을의 선비들이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 복위운동을 꾀하다 적발되어 300명 이상이 죽음을 당하고 순흥도 당시의 부(府)가 현(縣)으로 강등되는 참혹한 일이 생겼다.

 

이때 동네에 있던 이 수백 년 된 은행나무도 잎을 피지 않고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노래하기를, “은행나무가 다시 살아나면 순흥이 회복되고 순흥이 회복되면 노산(魯山)도 복위(復位)된다.”라고 하였는데 그 후 230년이 지난 1682년에 신규(申奎)란 사람이 단종이 복위되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자 조정(朝廷) 의논도 모두 찬동하게 되어 단종이 복위되고 순흥도 다시 부(府)로 승격하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은행나무가 이미 다시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역사로 사람들은 순흥(지금의 영주 내줄리)의 이 은행나무는 부활의 나무라고 하는데 수령도 천 년 이상으로 본다.

 

 

이보다도 더 오래된 나무는 충남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에 있다. 백제 성왕이 사비로 천도할 즈음인 서기 538년에 좌평 맹씨가 심었다는 이 은행나무는 높이 30미터 둘레가 9미터인데 나뭇가지로 덮인 면적만도 무려 천 평방미터가 넘는 엄청난 넓이를 자랑한다. 이 전설이 사실이라면 1500년이 된 나무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은행나무는 대체로 천 년 안팎을 상한으로 꼽는데, 특이하게도 중국에는 무려 사천 년이나 된 은행나무가 살아있어 중국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산동성 거현(莒縣)의 현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9킬로미터 떨어진 부래산(富來山) 정림사(定林寺)의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가 무려 수령 4천 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절은 중국문학의 지침서라 할 《문심조룡(文心雕龍)》이 탄생한 곳이기도 한데, 이곳의 은행나무는 높이 26.3미터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나뭇가지들이 차지한 면적이 950평방미터에 이르고 노란 은행잎이 해마다 경내를 온통 뒤덮는다고 한다.

 

 

옛 기록인 《춘추 좌전》에 따르면 노(魯)나라 은공(隱公) 8년(서기전 715년)에 은공이 이 지역 지도자와 이 나무 아래서 맹약을 맺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때의 나무의 나이를 생각하면 3천5백 년 전의 일이라서 어언 4천 년의 나이가 된다고 중국인들을 말하고 있고 그것이 기네스북에도 올라 천하 으뜸의 은행나무로 인정받았다고 말한다. 그 연대의 진위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만큼 은행나무가 오래 살 수 있는 영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 은행나무가 가장 사랑을 받는 계절이면 우리는 한껏 흥이 오르다가도 찬 바람이 불고 비라도 내릴 양이면 우수수 떨어지고 바람에 쓸려가는 그 광경을 보면서 다시 처연해진다. 곧 우리들의 삶도 저렇게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막다른 생각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러나 은행잎은 떨어지지만 봄이 되면 곧 다시 나와서 멋진 세상을 꾸며주고 있고 또 나무 자체는 특별한 변고가 없으면 수백 년에서 천 년 이상도 살아오고 있으니 이 은행나무야말로 인간의 백 년 남짓한 시간의 제약을 넘는 영원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비바람이 불고 나무에서 떨어져 어디론가 날려가다가 쓰레기장으로 가는 은행잎을 죽음으로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연의 섭리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라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란 존재가 바로 그렇지 않던가? 처음 갓난아기로 태어났다가 조금 자라서는 방긋 웃을 줄도 알고 말할 줄도 알고 걸어 다닐 줄도 알며 소년기를 지나 청년이 된다. 그리고는 장년기를 거치고 노년을 맞아 세상을 떠나고 마는데, 이 과정의 어느 것 하나 성장과 탄생, 변화와 순환 아닌 것이 없다. 내가 죽어야 손자 손녀들이 세상에 나와 우리의 생명을 새롭게 이어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기에 떨어지는 은행잎은 죽음이 아니라 탄생인 것이다. 우리가 나이 들어 죽음으로서 우리의 아들딸, 손자, 손녀들이 이 땅에서 생명을 받고 자양분을 흡수해서 살아가며 아름다움을 피듯, 은행잎이 찬 바람에 의뢰해서 저 흙 속으로 돌아감으로써 다시 이 세상에 봄이 오고 잎이 나고 여름이 되어 그늘이 되고 가을이 와서 노란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이 은행잎이야말로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의 영원한 순환을 몸소 보여주는 위대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가을은 어쩌면 은행나무와 그 잎이 우리에게 주는 위대한 가르침에 감사해야 할 계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