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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이 가을을 넘는 법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날까?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2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갑자기 주위에서 들리는 신음소리다. 아침 영하로 내려가고 출근하는 볼따구니에 찬 바람이 몰아치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무의식적으로 토해내는 비명인 것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가지에 잔뜩 매달려 웃을 때는 아름답고 멋있는 이 가을에 감사하다가 며칠 뒤 금방 추워지니까 가을에 대해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것에 감사하던 마음이 어느새 쑥 들어가 버린 것이다. 참으로 간사한 것이 우리네 마음이구나.

 

허둥지둥

 

우리 마음이 바빠진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추위가 오면 걱정할 일이 많다. 늘 우리가 미리미리 대비하라는 말을 듣고 마치 준비를 다 해놓은 듯 느긋하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마음이나 생각이 허둥지둥. 정신이 바람에 날려 무인지경으로 밀려간다.

 

​아등바등

 

그러다가 이젠 몸이 아등바등해진다. 방한복이 좋아져 웬만하면 옛날처럼 추위를 심하게 타지 않아도 되겠지만 이제는 손가락도 발걸음도 빨리 따뜻한 피난처로 가기 위해 온통 내 머리와 상관없이 재빨리 움직이려고 하는데, 그것이 곧 아등바등이다.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적확한 표현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봄과 여름철에는 마음이 즐겁고 가을과 겨울에는 근심이 쌓이는데,

이는 계절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중국 한(漢)나라 사람 장형(張衡)이 〈서경부(西京賦)〉에서 읊었다는 이런 정도의 구절이야 나도 할 수 있겠다. 그보다는 전국(戰國)시대에 초(楚)나라의 시인 송옥(宋玉)이란 사람이 구변(九變)이란 시에서 읊은​

 

“悲哉秋之爲氣也 슬프구나, 가을의 기운이여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 소슬한 바람에 풀과 나무가 온통 시들어버렸구나 ”​

 

라는 구절이 더 사무치게 전해온다. 송옥의 표현이 더 절절한 것은 우리가 가슴 속에 품었던 뜻을 제대로 펴기도 전에 철이 자꾸만 바뀌어 어느새 벌써 가을이 돌아왔음을 절감하는 내용이지 않은가? 원래는 나라에 진언을 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강물에 몸을 던진 굴원(屈原)을 추모하기 위함이라지만 꼭 그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도 늦가을에는 여러 가지 심사가 냉매밀발처럼 달려 나온다. 그다음 구절을 봐도

“憭慄兮若在遠行 처량해라 먼 길 떠난 길손의 심정이라 할까

登山臨水兮送將歸 높은 산 올라 물 굽어보며 귀향객 보내는 기분일세 ”​

 

라고 하고 있어 이제는 이런 계절에 사람마저 떠나보내고 혼자 남는 외로운 심사를 대변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이 쓴 이런 시는 어찌 보면 너무 교과서적이고 안일하다는 느낌이 든다.​

 

冏冏月吐巘 밝은 달은 산 너머서 올라오고

咽咽蛬吟礎 귀뚜라미는 섬돌에서 울어대며

摵摵葉響柯 나뭇잎들은 우수수 떨어지고

嗈嗈雁呌侶 기러기는 울어서 짝을 부르네

天地互陰陽 천지 음양이 서로 교체되어

居然見秋序 어느덧 가을 절서를 만났구나

商音一何肅 가을은 어이 그리도 엄숙하여

萬物歸摧沮 만물이 모두 꺾이어 버리는고

幽人自多感 은거하는 사람 절로 느낌 많아져

念此嘿不語 이를 생각하매 말이 안 나오네

 

                                  ... 신흠, 가을의 회포(秋懷)​

 

그러나 우리는 이 정도로 벌써 절망하는 것은 너무 사치스럽다. 가을보다 더 스산하고 추워서 마음까지도 허기지고 얼어붙는 겨울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 겨울에도 낙담하지 않고 거기서 사랑을 미리 보는 이런 시인들이 있는데 벌써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 겨울 사랑 / 박노해​

 

그런 시인을 생각한다면 갑자기 닥친 늦가을의 이 스산한 기분과 섭섭한 마음 정도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아니 그렇게라도 해야 낙엽과 그 낙엽이 거름이 되어 봄에 새 생명을 틔워주는 이 위대한 자연의 고마운 가르침에 조금이라도 부응하는 것이 될 것이다. 아직 낙담하기에는 이 가을의 갑작스러운 스산함이 멀고도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