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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빛과 냇물 소리 솔가지 퉁소 소리

평창강 따라 걷기 9-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6월 24일(목)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우명길 이규석 원영환 최돈형 홍종배, 모두 7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7월 6일(화)

 

이날 걸은 평창강 따라 걷기 제9구간은 영월군 한반도면 광전리 소오목2교에서 한반도면 광전리 한아름민박집 앞 평창강가에 이르는 9km 거리이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한반도면의 일기예보를 확인하여 답사팀 카톡방에 올렸다. 그런데 석영은 답사 참가를 뒤늦게 결정하는 바람에 제시간에 출발하는 기차표는 매진되고 1시간 먼저 출발하는 기차표를 겨우 구했다고 한다. 그는 오전 8시 40분에 평창역에 도착하였다. 그는 국문과 교수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감성이 매우 풍부한 친구다. 그는 아침 9시 20분에 답사팀 카톡방에 “오늘 행로에 전경으로 드리우는 한시 한 편입니다”라고 서문을 달아 다음과 같은 시를 올렸다.

 

雨餘庭院靜如掃 風過軒窓凉似秋

우여정원정여소 풍과헌창량사추

山色溪聲又松籟 有何塵事到心頭

산색계성우송뢰 유하진사도심두

 

비 갠 뒤 정원은 비질한 듯 고요하고

들창에 바람 들자 가을인 양 서늘하다.

산빛과 냇물 소리 솔가지 퉁소 소리

진세의 일 어이해 마음에 이를쏘냐.

 

- 원감 충지(圓鑑 沖止, 1226-1293) <우연히 절구 한 수를 쓰다(偶書一絶)>

 

내가 한시의 저자인 충지에 대해서 검색해보니, 충지는 고려 때의 승려로서 국사(國師) 칭호까지 받았다. 그는 장흥에서 태어났는데, 장원급제하여 관리로서 안정된 삶을 10여 년 동안 살다가 뒤늦게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그가 남긴 시문은 76편에 달하는데, 고려조 불교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된다. 조선 시대에 불교에 비우호적인 유학자들도 충지의 시문은 인정하였다고 한다.

 

우리 일행 7명은 오전 11시 40분에 걷기를 시작하였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날씨는 맑고 기온은 높지 않다. 최고 기온이 26도로 예상되니 초여름이지만 덥지는 않을 것이다. 둘러보니 산의 색깔은 신록이 아니다. 활엽수의 색깔도 녹색이 진해져서 이제는 녹음(綠陰)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작물이 옥수수와 감자다. 하지가 며칠 지난 감자밭에서는 감자를 캐고 있었다. 옥수수는 벌써 대가 나왔다.

 

 

 

조용한 길을 따라서 1km쯤 걸으니 소오목교가 나타나고 강변에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쉼터에는 솟대를 만들어 세워 놓았다. 강원도에서 솟대는 처음 보았다. 오늘 걷는 거리는 9km에 불과하여 일정은 바쁘지 않다. 우리는 강가로 내려가 자작나무 그늘 밑에서 쉬었다.


 

 

 

나는 배낭에서 군고구마와 영진구론산을 꺼내어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고구마는 아침에 각시가 구워서 싸주었고, 영진구론산은 내가 지난주에 봉평면 진조리에 있는 평창수 생수 공장에서 선물로 받아온 것이다. 생수 공장은 5년에 한 번씩 허가를 연장할 때 샘물환경조사서를 작성하여 심사를 받아야 한다. 내가 공부한 전공이 수질관리인데, 원주지방환경청에서 나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한 것이다. 공장장에게 웬 구론산 선물이냐고 물어보니, LG생활건강에서 2011년에 평창수(해태htb)를 인수하였는데, 몇 년 전에는 영진구론산까지 인수하였다고 한다. 친구들이 그동안 군고구마를 간식으로 보내준 각시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한다. (배달 사고 없이 전달했다.) 우리는 평창강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서 다시 출발하였다.


 

 

 

 

우리가 걷고 있는 영월군 한반도면에는 이제 밤꽃이 피었다. 내가 근무하던 수원대에는 밤나무 동산이 있었는데, 비릿한 밤꽃이 필 때 1학기 강의가 끝난다. 밤꽃의 향기는 매우 진하며 향기 성분에 스퍼미딘(spermidine)과 스퍼민(spermine)이 있는데 이 성분은 남자의 정액에도 들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밤꽃 향기를 정액 냄새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밤꽃 향기를 ‘양향(陽香)’이라고 불렀는데, 조선 시대에는 밤꽃이 필 때면 부녀자들은 외출을 삼갔고 과부는 더욱 근신하였다고 한다.

 

 

꿀은 꽃꿀과 사양꿀로 나눈다. 벌이 꽃에서 모은 꿀이 꽃꿀이다. 나무에서 얻는 꿀은 대부분이 아카시아꽃과 밤꽃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밤꽃이 지고 나면 양봉업자는 벌에게 오히려 먹이(설탕물)를 제공하고 다음 해 봄까지 벌을 잘 관리해야 한다. 벌이 설탕물을 먹으면서 만든 꿀을 사양꿀이라고 하는데, 꽃꿀보다 값이 싸다. 꽃꿀에 설탕액을 혼합한 것(이른바 가짜꿀)은 벌꿀이라고 표시할 수 없고, ‘당류가공품’이라고 표시해야 한다. 양봉하는 친구 말을 들어보니, 가짜꿀을 만드는 여러 가지 교묘한 방법이 있어서 진짜꿀과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우리가 걷는 지역의 행정명은 한반도면 광전리이다. 한적한 이 구간을 지나는 길은 중앙차선이 그려져 있는 부분과 차선이 없는 부분이 섞여 있다. 이 구간에는 도로번호가 없고 차량의 통행이 거의 없는, 다시 말하면 걷는 사람에게는 매우 좋은 길이다. 길 왼쪽으로는 평창강이 흐르고 길 오른쪽으로는 밭이 있다. 집은 매우 드문드문 나타난다.

 

평야 지대를 흐르는 강은 농사용으로 물을 끌어 쓰기 위해서 작은 보를 많이 만들어 놓았다. 지금까지 관찰한 평창강은 보가 매우 드물다. 보가 없으니 평창강 곳곳에서 자연 상태 강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연 상태의 강은 일단 폭이 넓다. 강가에 넓은 홍수터가 발달하여 있다. 홍수터에는 갈대나 갯버들 같은 수변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

 

자연 상태의 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것이 하중도이다. 강물 중간에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작은 섬이 하중도(河中島)이다. 하중도는 유속이 느리고 여울이 발달한 구간에 나타난다. 하류에 보를 막으면 수위가 높아져서 하중도는 물에 잠기고 사라진다.

 

 

 

한참 걷다 보니 고개가 나타난다. 강물은 고개에 막혀서 동쪽으로 꺾여진다. 사전 답사 때에 조사해보니 이 지점부터는 강 따라서 가는 길이 없다. 작은 둑길도 없다. 고개를 넘고 멀리 한반도면 읍내까지 돌아가야 다시 강과 만나게 된다. 고개는 높지는 않지만, 경사가 몹시 심했다. 답사팀의 평균 나이가 70이 넘는지라 모두 헉헉거리며 고개를 올라갔다. 그래도 아직은 건강하여서 답사에 참여했을 것이다. 낙오하는 사람 없이 고개를 올라가니 다시 평평한 길이 나타난다.


 

 

우리는 평창강과 멀어지면서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길가에 벚나무 또는 돌배나무가 심겨 있어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때는 하지가 지난 6월 하순. 햇빛이 따가워서 그늘로 걷고 싶어진다. 햇빛에 알레르기가 있는 석주는 양산을 꺼내어 햇빛을 가렸다.

 

광탄마을이라고 쓰인 커다란 표지석이 나타났다. 마을 앞으로 평창강이 휘어져 흐르면서 넓은 여울을 만들었으므로 ‘넓을 광(廣)’자와 ‘여울 탄(灘)’자를 써서 광탄리라고 불렀다. 원래 순수한 우리말 이름은 너분여울이었다. 너븐은 ‘넓은’의 옛말이다. 너분여울이 한자어 광탄으로 변하였다.

 

광전1리는 통두둑 마을인가보다. 통두둑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나타났다. 통두둑은 광탄의 절골 뒤쪽에 있는 높은 언덕이다. 통이란 ‘하나’라는 뜻이고 두둑은 ‘둔덕배기’를 뜻하므로 통두둑이라고 불렀다. 영월 사람들도 벼농사를 짓는가 보다. 벼를 심은 논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 논이 반가웠다. 논에 백로 두 마리가 보였다.

 

 

 

 

조금 더 가자 왼쪽에 시랑공원이라는 표지석이 나타났다. ‘영월 신씨 문화유적지’를 시랑공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나 보다. 50여 미터 산 쪽으로 돌비석과 무덤이 보였다. 일행 중에는 신 씨가 없어서 올라가 보지는 않았다. 조금 더 가자 오른쪽에 점동마을 표지석과 현종사 표지석이 나타났다. 점동(店洞)마을은 예전에 솥을 만들었던 마을이었는데, 점마을 -> 점말 -> 점동으로 변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