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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이제야 봄이 보이는구나

바람의 방향이 남풍이고 코끝이 향기로워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3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대통령선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후보 쪽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은 있었는데, 누가 되었든 간에 서로 상대방 후보의 나쁜 점, 잘못한 점만이 부각되는 바람에 상대방 후보와 진영에 대한 일종의 적대감이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지만 선거결과에 대해 서로 승복하는 모습은 아름답다고 하겠다. 과거 보아왔던 선거와 개표과정의 부정 여부, 재검표 하자는 주장이 없어진 점, 진 쪽이 졌지만, 진 것이 아니라며 미래를 거는 승복... 이런 것들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이번에 드러난 0.8%도 안 되는 두 후보에 대한 차이. 30만 명도 안 되는 이 차이로 한 나라 대통령이 바뀌고 그 나라의 노선이 달라지는가? 그래도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두 쪽 다 50%에 바짝 닿는 지지율이 아닌가? 참으로 묘한 법이자 묘한 논리로 대통령이 결정되는구나. 희한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이제는 서로가 상대진영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견해차를 인정하고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주지 않으면 서로가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되었기에 과거 말로만 하던 협치라는 개념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하겠다. 물론 여전히 칼을 가는 사람들이 많이 숨어 있겠지만....

 

선거가 끝나면서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아침마다 오르는 산에서 새들이 활기차게 날아오르고 그들의 목소리도 힘차고 상쾌하다. 벌써 몸에 기운이 넘치는 듯, 곧 짝짓기라도 할 듯이 우짖는 소리가 남에게 과시하는 듯한 모양새를 띄고 있구나. 나뭇등걸을 타고 딱따구리가 유난히 자주 작업을 하고 있고 청솔모들도 부지런히 나무줄기를 타고 오른다. 비둘기나 까치들도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평화롭게 자신들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것이겠지. 요란히 서로 이기려고 싸우는 인간들에게 자연은 언제가 조용히 가르침을 준다. 뭐 하러 그리 죽으라고 치고받고 싸우는가? 각자 자기 영역에서 자기 할 도리를 다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렇게 평화롭게 잘 사는데, 인간들은 왜 그러지를 못하나? 하고 말하는 듯하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이고 죽고 다치고 곳곳에 선혈이 낭자하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이별의 눈물이 강을 이루고 있는 소식이 이 지구촌을 흔들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한 사람의 결정이 이렇게 인류 전체를 위협할 수 있구나. 독재라는 것,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절대권력을 소유한다는 것이 참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함으로 해서 가슴이 아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제는 봄을 느낄 수 있을까? 남쪽에서 꽃소식이 계속 올라오고 있구나. 하얀 매화, 붉은 매화, 노란 산수유, 파란 새싹들이 천연색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봄 편지들이 알록달록 꽃을 봉투에 담아서 보내오고 있다. 사람들은 어느새 두보(杜甫)의 시(詩) <춘망(春望)>을 기억 속에서 꺼내어 다시 보곤 한다.​

 

國破山河在  나라는 깨졌지만, 산하는 그대로이구나

城春草木深  성 안에 봄이 오니 초목만이 우거졌구나.

感時花濺淚  시절을 생각하니 꽃을 보아도 눈물이요

恨別鳥驚心  흩어진 식구들 한스러워 새 소리에 가슴 메네.​

 

봄이 되어 온갖 새들이 지저귀지만 나라는 망하고 가족들은 흩어져 있는 신세를 생각하니 눈물만 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이 시를 흥얼거린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도 나라는 깨지지 않았다. 이별하고 못 만나는 가족들도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곧 4월이 온다며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이 싯귀를 무심코 흥얼거리면서 봄이 마냥 좋지만, 그 봄을 즐기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봄에 그리 싱숭생숭할 일이 아니다. 이 좋은 계절, 생명의 계절, 소생의 봄을 잔인하다고 할 이유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자 이제 우리는 봄을 즐길 수 있을 것이고 즐겨야 한다.​

 

정치 쪽을 보면 이긴 쪽에서는 그동안 제시했던 개선점을 잘 살려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이고, 진 쪽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진지하게 반성할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면서 치르는 이 선거라는 것은 세상의 겨울을 극복하고 흙먼지를 털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멋진 기제(機制)이자 방책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우리의 생명이 걸린 듯 선거에만 정신을 쏟던 우리는, 이 선거가 가진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이제 그런 생각을 벗어나서 이 선거가 가져다주는 우리 사회보다 성숙한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며 이 새로운 우리 사회의 봄을 함께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때마침 며칠 전에는 봄비도 촉촉이 내렸다. 동해안 쪽의 그 넓고 많은 지역의 산불들을 잠재워주는 단비였다. 진작 왔으면 피해도 적고 불 끄는 사람들도 덜 고생했을 것이지만 뒤늦게라도 온 것이 다행이고 고맙기도 하다. 자연히 우리에게 이제 봄을 즐기라고 마음을 써 준 것이리라!​

 

소리 없는 고즈넉한 아침

비단실같이 잔잔하고 포근한 단비

가뭄 뚫고 생명의 봄비 내린다​

 

화초가 되살아나는 소리

나뭇가지마다 초록의 꿈이 살아나고

보석처럼 꽃망울이 꿈을 꾸며

맺히는 모습 장관(壯觀)이다​

 

속삭이는 봄비

창 너머로 영혼의 나래를 펴고

이제야 사랑의 꽃 피어나는

봄의 소리를 듣는다

                    ...봄비 내리는 대지 / 김덕성

 

 

비가 그친 오늘 아침 산에 오르니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이 남풍이고 코끝이 향기롭구나. 그래 이제 우리나라에도 북풍, 서풍 대신에 남풍이 부는 계절이다.​

 

南風之薰兮  남쪽에서 불어오는 맑고 시원한 바람

可以解吾民之 兮  사람들의 근심을 녹여주네

南風之時兮  남쪽에서 불어오는 때 맞춘 바람

可以富吾民之財兮  백성들의 재물을 늘려주네!​

 

옛날 순임금이 다섯 줄의 거문고를 치며 이렇게 <남풍(南風)>이란 노래를 불렀다고 하지 않나? 그때의 세상이 가장 살기좋은 세상이었다고 한다. 그래 이제 우리도 싸우지 않고 함께 봄노래를 듣고 함께 부르는 세상으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