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2년 6월 14일 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김형대 권중배 부명숙 오종실 이규석 이규성 원영환 최돈형
모두 9명
<답사기 작성일> 2022년 7월 3일
동강 따라 걷기 제4구간은 진부면 호명리 오대천의 작은 보에서 시작하여 오대천 따라 청심대까지 걷는 10.5 km 거리이다.
이날 강릉에 사는 김형대 PD가 참석했다. 김형대 PD는 작년에 우리가 평창강을 걸을 때도 한번 참석한 적이 있다. 그는 그 유명한 <차마고도> 다큐멘터리 촬영팀에서 일했었다. 이날 그는 360도를 촬영할 수 있는 새로운 기기를 가져와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나의 중학교 동창인 권중배가 이날 처음 참석했다. 그는 전날 우리집에 와서 잤다. 나는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 친구와 함께 평창역으로 가서 석주를 태우고 다시 진부역으로 가서 김형대 PD를 태우고 점심식사 장소로 갔다. 국도 6번 도로가에 있는 옛골청국장 식당에서 11시에 모여 이른 점심을 먹었다. 해당과 은곡과 이규성 교수는 막걸리를 한 병 시켜서 먹었다.
오대천 왼쪽 언덕 작은 보가 있는 지점에서 12시 45분에 출발하였다. 출발 지점의 행정명은 진부면 호명리(虎鳴里)이다.
《평창군 지명지》에서 호명리의 어원을 조사해 보았다. 옛날에 마을 앞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호랑이가 자주 올라가 울었다 하여 범우리라 하였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우리말 지명 대부분을 한자로 바꾸었는데, 그때 범우리를 ‘호랑이가 우는 마을’로 보아 호명리로 바꾸었다.
조금 걷자 산책로가 나타났다. 낮은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여러 가지 들꽃을 심어 놓았다. 전나무를 심어 놓은 구간도 있었다. 키가 작은 노란색 꽃이 많이 피어 있다. 식물이름을 잘 아는 가양이 황금달맞이꽃이라고 이름을 알려 준다.
달맞이꽃은 칠레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다. 보통의 달맞이꽃은 낮에는 오무라들고 밤이 되면 노란꽃을 피우기 때문에 달맞이꽃이라고 부르는데, 이 녀석은 낮에 꽃이 피어서 낮달맞이꽃이다. 또한 노란색 꽃잎이 황금색 같다고 하여 결국 이름은 ‘황금낮달맞이꽃’이 되었다고 한다. 황금낮달맞이꽃은 달맞이꽃의 개량종으로서 원래의 달맞이꽃보다 키가 작으며 꽃은 더 크고 색깔도 더 화사하다. 내가 봉평에 이사 온 뒤에 관찰한 바에 따르면 황금낮달맞이꽃이 달맞이꽃보다 시기적으로 조금 일찍 핀다.
산책로의 오른쪽에 보이는 오대천은 가뭄이 계속되어 수량이 많이 줄어 있었다. 산책로 양쪽으로 계속해서 꽃이 나타났다. 노란색 꽃이 많았다. 식물이름을 잘 아는 가양은 황금낮달맞이꽃 말고도 고들빼기와 씀바귀의 차이점을 설명해주었다.
오대천 둔치에 조성된 산책로는 길지 않았다. 얼마를 걷다가 둑길로 올라섰다. 오대천을 오른쪽으로 내려다보며 걸었다. 다리가 하나 나타나는데 이름을 확인해보니 호명교이다. 호명리에 있는 다리이니 당연히 호명교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다. 내가 작년에 평창강 따라 걷다가 알게 된 사실은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이름은 오른쪽 기둥에 새겨져 있고, 왼쪽 기둥에는 다리의 길이, 건설 연월일, 건설 회사 이름 등이 새겨져 있었다.
둑길의 왼쪽으로는 밭이 계속 나타났다. 밭에는 감자, 배추, 무 등이 심겨 있었다. 감자밭에는 흰색 감자꽃이 솜을 뿌린 듯 활짝 피어 있다. 둑길의 오른쪽 경사면에는 작물 대신 꽃이 심겨 있었다. 요즘 피는 꽃으로는 붉은색인 꽃양귀비, 노란색인 큰금계국이 많이 보인다.
조금 더 걷자 오른쪽으로 흐르는 오대천 건너편으로 진부면 소재지가 보인다. 진부면은 평창군 북단에 있으며 신라시대에는 푸른 소나무가 많다고 하여 청송현(靑松縣)으로 불리다가 조선중기에 이르러 현을 폐지하고 진부역(珍富驛)의 이름을 따서 진부면이라 부르게 되었다.
진부면은 본래는 강릉군에 속했으나 1906년에 평창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장평리(長坪里)가 봉평면에 이관되었다. 1983년에는 용전리, 이목정리, 속사리, 도사리 등이 신설된 용평면으로 들어왔다. 1989년에 도암면 호명리가 진부면에 이관되었다. 현재 진부면은 38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진부면은 주산인 석두산(해발 763m)과 곁산인 사남산(해발 880m) 아래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산이 곁산보다 낮아서 토박이보다는 객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해져 온다. ‘석두산’은 한문으로 ‘石頭山’으로 표기되어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석두산(碩頭山)’으로 개칭하였다고도 한다. 진부에는 오대천의 풍부한 농업용수가 있고, 농토가 비옥하여 예로부터 농업과 임업이 발달되었다.
현재 진부면은 교통이 편리하다는 장점에 힘입어 군청이 있는 평창읍보다 인구가 조금 더 많다. 특히 2018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면서 KTX 진부(오대산)역이 개통되면서 발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둑길 따라 계속 걷다 보니 송정교가 나타났다. 호명리 남쪽으로 이어지는 동네가 송정리이다.
송정리(松亭里)는 《조선지지》에는 미면리(米面里)라고 표기되어 있다. 오대천 옆에 있어 쌀농사가 매우 잘 되어서 ‘쌀많이’라고 부른 것이 쌀면이가 되었다. 현재는 ‘쌀면’으로 송정리에 편입되었다. 소나무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고 해서 ‘송정’이라고도 불렀다. 둑길을 계속 걷자 예쁜 다리가 나타났다.
위 사진은 멋을 부려 설계한 ‘오대천인도교’다. 차는 다니지 못하고 사람만 건너다닐 수 있는 아름다운 다리다. 경제성만을 따진다면 다리를 만들면서 차도와 인도를 함께 만드는 것이 훨씬 돈이 적게 들고 효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만 다닐 수 있는 다리’는 경제성이 떨어질 것이다. 누가 결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진부면에서 ‘오대천인도교’를 만들었다는 것은 진부에 사는 사람들이 사람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호명초등학교 입구를 지나 계속 둑길 따라 내려갔다. 왼쪽으로 잘 지은 전원주택 두 채가 보인다. 나는 이 두 집의 주인장을 잘 알고 있다. 첫 번째 집의 주인장은 박영범 사장님인데, 미국령 태평양 섬인 사이판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다가 접고 진부에 귀촌하였다. 두 번째 집의 주인장은 진부 토박이 출신인 원 사장인데 인도네시아에서 아직까지도 사업을 잘하고 있다. 나는 몇 년 전에 여행사 따라서 북유럽 여행을 하다가 이분들을 만났는데, 같은 평창군에 살기 때문에 여행 뒤에도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다.
나는 박영범 사장님과 이날 오전에 통화를 했었다. 그런데 바쁜 일이 있는 것 같아서 집을 방문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고 조금 아래에 있는 엘림 커피솝에서 중간 휴식을 가질 계획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박 사장 집 입구에 도착하자 박 사장의 차가 후진하여 입구로 내려온다. 내가 아는 체를 하자 박 사장은 반가워하면서 우리 일행에게 집에 들어가서 차 한잔하자고 권한다. 와아, 이거야말로 우연 중의 우연이다. 우리가 1분만 빨랐어도 박 사장을 만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연한 만남이야말로 영어로 표현하면 kismet(운명, 알라신의 뜻)이다.
우리는 2시 15분에 박 사장 저택으로 들어갔다. 사모님은 너그러운 분이었다. 처음 만나는 답사객 아홉 명에게 처음에는 커피, 그다음에는 참외, 그 다음에는 뻥튀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쑥떡을 먹으라고 계속 내놓는 것이 아닌가! 일행 모두는 이러한 환대는 난생처음이라고 칭찬과 고마움을 아끼지 않았다.
박영범 사장 역시 보통 남자가 아니었다. 그분은 대기업에 다니다가 중간에 나와서 사이판으로 건너가 개인 사업을 하여 돈도 많이 벌었단다. 사이판에서 28년 동안 열심히 일한 뒤 60살 되던 해에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완전히 손을 떼었다. 그리고는 진부면 송정리에 귀촌하여 노년을 즐긴다고 한다. 그분은 돈 버는 일에는 일절 관심을 끊었단다. 그가 열심히 하는 일은 여행 가기, 색소폰 불기, 기타 치기, 골프 하기, 텃밭 가꾸기, 맛집 방문하기 등등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