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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온계 선조를 다시 모셨습니다

선조의 유덕을 모든 이와 함께 나누고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7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상을 바로 모시고 그 유덕을 이어가는 것은 후손의 당연한 도리라고 들었습니다. 조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숨어있는 역사를 찾아내고 유적을 복원해서 조상의 생각과 일생의 업적을 드러내야 합니다. 효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대로 ​

 

"세상에 나아가 도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까지 날리면 그것이 곧 효의 마지막이다 立身行道揚名於後世 以顯父母孝之終也"​

 

란 귀절이 있습니다만 꼭 자손이 출세해서 이름을 날리지 않더라도 적어도 조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후세에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효도임을 부정하실 분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온계(溫溪) 이해(李瀣 1496~1550)의 자손입니다. 조선조 중종, 인종, 명종 때 대사헌, 황해감사, 청홍도(충청도)관찰사, 한성부 우윤 등을 지내시다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분이지요. 올해가 선조 돌아가신 지 472년입니다.

 

그동안 선조에 견줘 선조를 알리는 일에는 후손들이 제대로 못 해 죄송스러웠습니다만 선조의 행적을 알리는 온계평전의 발간, 신도비각의 중수, 묘소 가토중수 등의 일을 올해까지 끝냄으로서 선조를 알릴 최소의 준비를 후손들이 다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그것을 기념해서 안동 도산면의 종택에서 고유제를 겸한 묘사를 지내고 새로 꾸며진 신도비각과 묘소를 배향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억울하게 돌아가신 선조를 어두운 역사에서 불러내어 밝은 빛의 마당으로 모셔 온 것으로서, 결코 과장이 아닌 최소한의 신원(伸寃)이기에, 그동안 종손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일에 지원을 해온 입장에서 그동안의 과정을 고유한 글을 여러분에게 올려 선조의 유덕을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고유문 ​

 

온계선조시여​

 

선조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472년 만인 오늘 후손들이 부끄럽지만, 외람되이 선조 앞에 섰습니다. 선조께 보고드릴 좋은 일들이 좀 있어서입니다. ​

 

 

선조시여!

 

간신 이기와 윤원형 일파의 간계에 따라 누명을 쓰고 천추의 한을 남기신 후 17년이 지나 간신히 신원은 되셨지만, 선조께서 학문을 하며 세상에 밝히신 글들이 흩어지면서 선조의 면모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암흑한 시간이 마냥 흘렀습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6세손 읍지헌 현룡(見龍)과 7세손 농은 급(級)의 필생의 노력으로 220년 후인 1772년에 일고(逸稿) 형태로나마 문집이 세상에 나왔고, 그 이후 영남 유생들의 간곡한 청원을 받아 정조 대왕으로부터 정민(貞愍)이란 시호도 받음으로써 비로소 선조의 높은 일생이 우리 사회와 역사의 표본으로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만, 그 후 선조의 참된 면모를 후대에 전하는 데에 미진함이 많았음은 우리 후손들의 불민이기에 엎드려 참회합니다. ​

 

그런 가운데 선조의 빛나는 덕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일찍이 정조 대왕 때 중흥을 이룬 명신 번암 채제공(蔡濟恭)으로부터 받은 천9백여 자의 신도비문을 20세손 병칠(炳七)이 1889년에 높이 181센티의 돌에 새기고 번듯한 비각을 상량했을 때 준공식을 보려고 천 명이 넘는 유림들이 전국에서 오셔서 넘티재까지 긴 줄을 선 것은 선조의 유덕이 얼마나 컸는가를 웅변하는 전설이 되었습니다만 선조가 학행을 닦고 세상의 경륜을 키운 터에 전해오던 삼백당 종택이 1896년 왜병들에 의해 일시에 잿더미로 변한 다음 집안의 구심점이 없어져 후손들이 백 년 넘게 황량한 빈 땅을 바라보며 한탄을 했던 아픈 과거가 있었습니다.

 

 

온계선조시여!

 

그런 어둡고 슬픈 역사가 마침내 밝은 햇살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오늘 선조 영전에 고합니다. 

불에 탄 종택은 10년 전에 복원된 것은 아시겠지요? 복원에 앞서 학술세미나를 열어 선조의 면모를 확인하고 기적같이 남아있던 가도를 근거로 종택이 정부의 지원과 후손들의 정성을 모아 어렵게나마 복원됨으로써 이후 선조의 체취를 확인하고 전해주는 심장이 되었습니다. 또한 언론인으로 15세손인 동식(東植)이 흩어진 자료와 민간의 기록과 전설을 찾아내어 2020년에 선조의 평전을 펴냈습니다. 이는 1979년에 15세손 정식(庭植)에 의해 국역 온계집이 나온 이후 한문을 모르는 현 세대들에게 선조의 참 면목을 알리는 가장 핵심서가 되어, 이제 이 책을 통해 선조의 일생과 학문, 높은 뜻을 알려는 움직임이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선조께 고합니다.

 

 

또한 당시 종택이 불에 탄 후 외지를 전전하던 14세손 동기(東基)가 선조의 묘소로 올라가는 길목에 집을 짓고 선조께서 생전에 목멱산 기슭에서 걸었던 취미헌이란 헌액을 걸어 아쉬우나마 종택으로서 써왔는데 그 취미헌이 비비람 속에 무너지게 되고 인근의 신도비각도 건물은 퇴색하고 색칠이 벗겨져 참혹한 상태였는데 우선 이 신도비각을 올해 후손들이 다시 정성을 모으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번듯하고 튼튼하게 새로 옮겨 세웠습니다.

 

 

여기에다 마침 신도비각 공사를 하면서 선조의 묘소에 무너진 흙을 다시 쌓아 올리고 잔디를 새로 입히는 일을 함께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흙 속에 묻혀 있던 묘소의 원 석축기단이 다시 세상에 나와 선조의 묘소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선조의 면모가 더욱 높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선조의 뜻을 받아 학업을 이루고 바르게 세상을 살아온 우리 후손들이 모두 뜻과 마음을 모았기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부끄럽지만 자랑스럽게 선조께 고합니다. 이제 당신의 학행과 세상에 펼치려한 원대한 뜻은 당신의 원래 말하고 남기신 글과 말이 모여져 책으로 나오고, 그것이 돌에 새겨 똑바로 거듭 세워짐으로써 영원히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번암 채선생이 신도비문에서 밝힌 대로, ​

 

하늘에 있던 맑은 정기가 진성 씨에 모여 금 같고 옥 같은 형제의 자질로 세상에 드러나

상서로운 봉과 기린이 되었음에

그 훈향이 이 묘소와 비각, 종택을 넘어 세상으로 더 널리 전해져서

선조께서 그토록 갈망하시던 아름다운 도덕의 나라가 백대토록 전해지기를 우리 함께 기약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온계 선조께서 이루신 덕과 나라에 끼친 공이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튼튼한 말로 다시 세워져, 불후의 새 역사를 기약하는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그만큼 선조의 뜻은 높았고 목숨을 바쳐 이루려한 그 의(義)로움이 우리 후세인들의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

 

이 자리에 함께 한 후손들은 정성을 거들어주신 학계와 정부, 국민들과 함께

온계 선조를 기억하고 그 유지를 널리 함께 하겠습니다.

그러한 결심을 오늘 선조께 고유합니다.

 

                                                                                     2022년 11월 5일

 

                                                                                     17세손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