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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이제 정말 봄이 왔으니

서로 아름다운 인사말을 나누어도 좋은 때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86]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며칠 전 도자기를 하는 작가의 집을 방문했더니 응접실 나지막한 옛 가구 위 화병 속에서 맑은 매화꽃들이 보시시 웃으며 인사를 한다. 뒤에 걸린 화가의 검은 색 바탕의 그림에 어울려 마치 영창(​映窓)에 비치는 듯한 선명한 아름다움을 풍겨준다. 작가의 작업장이 있는 부산 기장 쪽에서 핀 매화란다. 꺾어 와서 작가가 만든 달항아리 옆 화병에 꽂힌 것인데 고결한 자태로 겨우내 잊고 살았던 화신(花信), 곧 꽃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입춘이 지나고 계절이 우수를 넘고 있으니 이제 봄이라 해도 누가 시비하지 못할 때가 되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 살았던 옛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간절히 기다렸다. 이즈음에 추위 속에서도 가장 먼저 피는 매화를 보면서 이어 다른 꽃들이 피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때에는 5일마다 꽃이 피는 것을 보고는 그 꽃을 몰고 오는 것이 바람이라는 생각에 일일이 이름을 붙이며 반겼다는 것이 아닌가?

 

이름하여 ‘이십사번 화신풍(二十四番 花信風)’, 그것이 줄어서 ‘화신풍(花信風)’이라는 것인데, 양력 1월의 소한에서부터 5일마다 기후가 바뀌고, 그것을 일후(一候)라 계산하면 4월의 곡우까지 4달 120일에 24개의 후(候)를 맞아 24번의 꽃바람이 불어온다고 했단다. 그 이름을 보면 ​

 

1월 소한(小寒)부터 5일마다

매화(梅花)ㆍ산다(山茶)ㆍ수선(水仙)이, ​

 

대한(大寒)부터는

서향(瑞香)ㆍ난화(蘭花)ㆍ산반(山礬)이, ​

 

2월 입춘(立春)부터는

영춘(迎春)ㆍ앵도(櫻桃)ㆍ망춘(望春)이, ​

 

우수(雨水)부터는

채화(菜花)ㆍ행화(杏花)ㆍ이화(李花)가 각각 꽃바람을 타고 차례로 핀다고 한다. ​

 

이러한 꽃바람이 경칩, 춘분, 청명을 지나 4월의 후반 곡우(穀雨)까지 또 세 번씩 12번 바람이 불어 마지막 연화풍(楝花風, 멀구슬나무꽃이 피는 바람)에 가서야 꽃바람이 끝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절후마다 피는 꽃 이름들이 있는데, 중국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이라 우리나라에 없는 꽃도 있고 또 우리가 일일이 보지를 못한 것도 있어 그것이 정확히 어떤 꽃인지를 헷갈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입춘이 지난 요즈음 절기에 핀다는 영춘(迎春)ㆍ앵도(櫻桃)ㆍ망춘(望春) 세 꽃 가운데 앵도화는 앵두꽃이거니와 영춘과 망춘이라는 두 꽃 가운데 어떤 것이 개나리꽃인지 서로 사람마다 다르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맨 처음 시작이 되는 매화꽃을 일단 실내에서 만났으니 나도 꽃 마중길에 들어선 것이고, 이제 입춘이 지나 우수로 가는 이 시절에는 개나리나 앵두꽃들이 곧 필 것이므로 바야흐로 봄의 꽃 잔치에 우리 모두 정식으로 초대받아 즐길 일만 남았다고 하겠다. 마침 코로나로 막혔던 우리들의 입과 코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뚫리고 마음 놓고 말도 하고 냄새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시간이 바뀌고 좋은 계절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감사하고 그 초대에 기꺼이 응해야 할 터다. ​

 

동지섣달 언 물줄기 터져

막혔던 숨구멍 탁 트이니

와우~ 생그러움 출렁이고

간밤, 봄비 내린 시냇가의

조아림과 산새들 하모니에

청아한 행복 물결 일렁이매

 

              ... 오애숙, ‘그리움의 사모곡’

 

양지쪽 서릿발 녹이는

포근한 햇살 한 줌에도

설렘이 가득한

화사한 봄 꿈이 살아나고

새하얀 솜털로 중무장하여

엄동설한(嚴冬雪寒)의

혹독한 추위를 털어내는

봄의 전령사 버들강아지

그 신비로운 숨결 따라

성급한 봄은

그렇게 소리 없이 오고 있었다.

 

                         ... 문재학, ‘봄소식’ ​

 

주말 오후 따스한 햇살 아래 청계천 변을 거닐다 보니 진객이 찾아와 봄을 즐기고 있다. 해오라기 같기도 하고 쇠백로 같기도 하다. 이들에게도 봄이 온 것이다.

 

 

 

그러나 눈을 조금만 멀리 들어보면 멀리 터키, 요즘 ‘튀르키예’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는 곳에서 지진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폐허 속에 갇혀 있고, 집도 무너지곤 했다니, 6·25 때 우리를 도운 혈맹이라는 관계를 떠나서도 가슴이 아프다. 그러기에 우리 국민이 모두 몸으로 마음으로 그 국민을 돕는 데에 선뜻 나선 것이리라. 또 그 옆 우크라이나에서는 여전히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젋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살던 집은 포탄에 무너지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우리나라에는 봄이 온다고 기쁜 마음이지만 남의 나라를 생각하면 아직도 서글프고 안타깝다. 그러니 꽃바람이 불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냉기가 완전히 빠져나가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그런 것인가? 보건당국이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좋다고 해도 아직 입과 코를 가리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다. 그동안 마스크를 쓰다 보니 여성들은 굳이 정식으로 화장하지 않아도 좋았다고 하고 남자들도 회사 내에서 억지로 미소를 짓지 않아도 되고 귀찮은 인사를 하지 않아서 편했다는 말도 있던데, 이제 봄이 왔으니 우리들 얼굴을 가리던 마스크는 벗어도 되지 않겠는가?

 

그동안 마스크 속에서 우리의 입이 음식물을 받아 넣는 데에만 쓰이다 보니 정작 우리가 만나서 해야 할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지내온 셈이다. 그동안 우리들의 얼굴이 마스크에 가려져 정작 본 얼굴은 보여주지 못했다면, 이제 거리를 다니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본 얼굴로 웃으면서 서로 아름다운 인사말을 나누어도 좋은 때가 된 것이다.

 

 

인사동 어느 가게 앞을 지나다 보니 돌로 만든 얼굴상들이 길가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고 서 있거나 누워 있는데 그 얼굴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그동안 못 보던 웃는 얼굴이 이제야 눈에 띄는구나. 그동안 우리가 많이 찌푸리고 짜증 내고 지내왔음을 저 얼굴을 보면서 깨닫게 된다. 저 얼굴들처럼 우리 이제는 마스크 속에 더 이상 숨지 말고 우리의 본얼굴을 당당히 드러내자. 저 얼굴로 맑고 밝은 아침햇살 같은 아름다운 인사말을 해보자. 그러면 우리가 사는 이 거리가 더 정겹고 편안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 본래 얼굴은 웃는 얼굴이었음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