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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봄날을 걷는다

마침내 우리 가슴에 봄날이 왔음을 알겠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9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길 떠나기야

봄날이 좋지

세포마다 꽃눈이 피어

온몸이 근질근질할 때

경산 지나 청도

운문사쯤으로 길 떠나 보라

                        ... 변준석 '봄길1' ​

 

 

 

복잡한 서울을 떠날 수 있다면 운문사 가는 길이 좋겠지만 우리네 서울에 매인 사람들은 거기까지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시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이 걷기 좋은 봄날에 어디 가까운 데가 없을까? 그렇구나! 봄바람이 잘 부는 강변으로 가보자.

 

한강 변 꽃바람이 가장 좋은 곳이 어디랴?

약간의 산이 있어야 바람을 느끼기 쉬울 것이다. 너무 낮은 바람은 일상에 피곤한 우리를 스르르 잠재우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디 그런가? 바람은 머리를 식히고 가슴을 열어주어야 제격이지... 그런 만큼, 가슴으로 불어와야 할 것이다. ​

 

그런 생각이 내 발길을 한 강변으로 끌고 왔을 것이다.

찻길 옆이라 자동차가 달리고 매연이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찻길 넘어 푸른 물에 가 있고

꽃바람을 맞으니 마침내 우리 가슴에 봄날이 왔음을 알겠다. ​

 

드디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목소리도 깨어난다.

 

"야! 봄이구나."

"야! 너희들 다시 왔구나!"

"다들 어디 갔다 왔는가? 다들 잘 계셨는가?"

 

 

 

길옆에 돌담이 없어도

발아래 잘못 던져진 곳에 피어난 작은 풀들이

흙먼지 사이에서 피어오른 작은 꽃들이

가지마다 방울방울 피어있는 샛노란 개나리꽃들이

저 멀리 반짝이는 강물의 물결들이

몸에 잠겨있던 겨울의 먼지들을 어느새 다 털어주고 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의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이제 길은 열리고 있다. 우리네 발길도 가벼워지고 있다.

사람은 봄이라는 이 길을 밟을 것이다.

이 길은 사람들이 움츠렸던 가슴을 열어주는 길이다.

길 위에 우리들의 사랑이 넘칠 것이다.

그리해서 우리가 모두 이웃이 되고 한동네 사람이 될 것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정호승 '봄길'

 

 

 

 

누구는 3월이 설렘의 달이고, 시작의 달이라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3월에는 자주 아프고 호되게 아프다고 한다.

먹은 것도 없이, 겨우내 버틴 몸으로 꽃까지 피워내야 해서 고단한 것인가?

연약한 몸으로 온 힘을 다해 흙을 밀어 올려야 했기 때문인가?

찬란한 봄날은 이렇게 새로운 탄생의 산통이 없을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네 이 아픔이 곧 새로운 힘이라는 것을,

다시 새날들을 살아갈 기운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기에

이렇게 봄날에는 봄을 맞으러 나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그 봄은 우리 앞에 있지 않고 이미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제 겨울 동안의 마른기침도 더는 없을 것이다.

몸속에는 생명의 수액이 돌 것이다.

그것들이 몸만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마음까지도

활기를 되찾게 할 것이다.

그건 정말이지 이 봄날에만 느끼고 가질 수 있는,

하늘이 주는 작은 축복일 것이다​

 

이 지구 맞은편에서도

그 누군가 나처럼

길 떠나고 있을까

짧기는 해도

길 떠나기야

봄날이 좋지

             ... 변준석 '봄길1'

쏟아지는 듯 반짝이는 하늘을

같이 올려다봐 줘

그럼 저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걸어가고 있을 너도

기분이 좋아질 텐데

                      ... 유혜빈 '다른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