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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직업의식을 가진 기생과 술집 아가씨

이뭐꼬의 구도이야기 11 (금산정사 방문기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 카페는 평범한 술집이었다. 물수건이 나오고, 맥주가 나오고, 안주가 나오고, 웨이터 총각이 아가씨를 둘 데리고 들어오고. 이 자리를 빌려 토로하건대, 나는 술 따르는 아가씨들에게 불만이 많다. 조선시대에 기생은 나름대로 뚜렷한 직업의식을 가졌으며 엄격한 교육 과정을 거쳐 배출되는 떳떳한 직업인이었다. 기생은 대개 천민 출신이었는데, 정2품 이상의 관리에게 사랑을 받으면 신분이 상승하기도 했다. 기생의 딸은 자동적으로 기생이 되는 식으로 세습되었는데, 유명한 황진이는 그 어머니가 기생이었기 때문에 기생이 되고 만 것이다.

 

특히 관기(官妓)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기생으로서 말하자면 공무원 신분이었는데, 관기가 되기는 매우 어려웠다. 3년마다 전국의 관기 가운데에서 150명을 뽑아 시(詩), 화(畵),가(歌), 무(舞), 악(樂)의 다섯 가지 기예를 매우 엄격하게 교육시켰다. ‘기생은 재생(才生)’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온갖 재주는 오늘날의 전통예술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기생들이 국채보상운동에까지 대거 참여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기생들이 꼭 갖추어야 할 마지막 덕목은 지조였다. 이 덕목을 지키는 기생들은 이른바 명기(名妓)로서 뭇 남자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처럼 수준 높은 기생이 따라 주는 술은 그 맛이 오죽이나 좋았을까? 그런데 요즘의 술집 아가씨들은 어떠한가? 기생의 다섯 가지 기예 중에서 겨우 두 가지 곧, 대중가요 몇 곡이나 부르고 엉덩이춤이나 추면 자격을 갖춘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노래는 나보다도 못하면서 몸매만 날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가씨도 많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기본적인 기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아가씨일수록 염치도 없이 비싼 안주는 왜 그렇게 많이 먹는지?

 

어쨌거나 지하로 계단을 내려가면서부터 기생다운 아가씨가 나타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앳된 모습의 아가씨들이 나타났다. 검정 원피스를 입고 내 옆에 앉은 예쁘장한 아가씨에게 나이를 물어보니 스물셋. 이름은 미스 한이라고 한다. 아가씨 나이에 2를 곱하여도 내 나이에 미달이니, 나는 순간 당혹감을 느꼈다. 어느 미술대학 교수는 73살에 30살인 여제자와 결혼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런 사람이야 특별한 사람이고. 아, 이제 나도 젊은 아가씨는 젊은 사람에게 양보하고 마담들하고나 사귀어야 할 나이가 되었나 보다. 나 자신을 알고 주제 파악을 해야지. 광주에 다시 와서 새삼 세월이 빠르게 흘렀음을 느꼈다.

 

술 마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집은 광주이고 어머니가 음식점을 한다나. 낮에는 음식점 일을 돕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로 나온다고 한다. 물론 어머니는 이 사실을 모르고. 술 마시며 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는 없다. 옛날과 달리 요즘에는 술집에서 아가씨를 구하는 데 애로가 없다고 한다. 옛날처럼 구인 광고를 내거나 시골에서 꼬셔오지 않아도 제 발로 걸어와서 돈 벌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한다.

 

신문을 보면 잘 알 수 있지만 그놈의 돈이 무엇인지 요즘에는 모든 사람이, 정치인이나 아가씨들이나, 돈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험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신문에 보도되는 온갖 비리 사건의 뒤에는 돈이 자리 잡고 있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돈의 위력을 믿고서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술집 풍속도 많이 바뀌었다. 술집 아가씨들의 인권이 향상되어 옛날처럼 함부로 만지고 주무르고 할 수가 없다. 그저 아가씨가 좋아하는 안주 시켜서 먹고 야한 농담 좀 하면서 손이나 잡고, 노래 몇 곡 부르고, 끝나면 5만 원이라는 거액을 팁으로 주어야 한다.

 

사실 5만 원이라는 돈은 적다면 적겠지만 대부분 봉급쟁이에는 적은 돈이 아니다. 더욱이 주어진 봉급의 범위 안에서 그 비싼 과외비를 지출하고 적금까지 들면서 생활을 꾸려가야 하는 주부에게는 큰돈이다. 만일 남편이 어느 날 공돈이 생겼다면서 5만 원을 봉투에 넣어서 아내에게 준다면 최소한 일주일 동안은 반찬도 좋아지고 좋은 남편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게 비싼데도 카페나 룸살롱이 번창하며 남자들은 속없이 술집에 가서 거액의 돈을 팁으로 아낌없이 주는 것일까? 우리나라 남자들이 특별히 못돼서 그럴까? 이러한 의문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는데, 얼마 전 재미있는 책을 읽고서 해답을 얻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마광수 교수가 쓴 《열려라 참깨》라는 평론집을 빌려 읽었는데, 뜻밖에 문장이 매우 유려하고 내용도 음미할 만한 것이 있었다. 마광수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서양에 견줘 엄청나게 술값이 비싸고 팁값이 비싼데도 수요가 계속 있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특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파티 문화가 발달하여 혼인한 사람들도 이성과 만나 건전하게 대화하고 사교춤도 출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혼인하게 되면 장례식이나 다른 혼인식 빼고는 공개적으로 이성을 가까이 만날 기회가 거의 없으며, 유일하게 부인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 대화하고 접촉할 수 있는 자리는 술집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쁘고 힘든 현대 사회를 살면서 쌓이게 되는 심리적ㆍ성적(性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비싸더라도 술집을 가게 된다는 매우 설득력 있는 설명이었다.

 

술집에 가면 아가씨들은 마누라와는 달리 바가지도 긁지 않고 남자의 기를 살려주기에, 집에서는 마누라에게, 직장에서는 상관에게 주눅 들어 지내던 남자들은 모처럼 신나는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덧붙여 마광수 교수는 이왕에 돈 들여 술집에 가면 ‘백디가 불여일부’라고 썼다. 무슨 뜻이냐면 백 번 디스코 추는 것보다는 한 번 부루스를 추면서 이성과 살갗이 접촉하는 짜릿한 맛을 즐기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맥주를 마시면서 마 교수의 충고대로 부루스를 몇 곡 추었으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12시가 되었다. 술을 거의 못 하는 연담거사는 12시에 혼자 숙소를 찾아가고, 모처럼 동창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 할 이야기가 많은 우리는 더 남아 있었다. 나는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돌아와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