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직업의식을 가진 기생과 술집 아가씨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 카페는 평범한 술집이었다. 물수건이 나오고, 맥주가 나오고, 안주가 나오고, 웨이터 총각이 아가씨를 둘 데리고 들어오고. 이 자리를 빌려 토로하건대, 나는 술 따르는 아가씨들에게 불만이 많다. 조선시대에 기생은 나름대로 뚜렷한 직업의식을 가졌으며 엄격한 교육 과정을 거쳐 배출되는 떳떳한 직업인이었다. 기생은 대개 천민 출신이었는데, 정2품 이상의 관리에게 사랑을 받으면 신분이 상승하기도 했다. 기생의 딸은 자동적으로 기생이 되는 식으로 세습되었는데, 유명한 황진이는 그 어머니가 기생이었기 때문에 기생이 되고 만 것이다. 특히 관기(官妓)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기생으로서 말하자면 공무원 신분이었는데, 관기가 되기는 매우 어려웠다. 3년마다 전국의 관기 가운데에서 150명을 뽑아 시(詩), 화(畵),가(歌), 무(舞), 악(樂)의 다섯 가지 기예를 매우 엄격하게 교육시켰다. ‘기생은 재생(才生)’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온갖 재주는 오늘날의 전통예술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기생들이 국채보상운동에까지 대거 참여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기생들이 꼭 갖추어야 할 마지막 덕목은 지조였다. 이 덕
-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 2023-06-01 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