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옛날 중국의 전국시대에 사광(師曠)이란 금(琴, 현악기의 하나)의 명인이 있었다. 그가 임금의 명을 받아 금을 타기 시작하니 검은 학(鶴)들이 궁문의 기둥에 모이기 시작하더니 8쌍을 이뤘다. 다시 연주하니 학들이 좌우로 8마리씩 늘어섰다. 3번째 연주하니 학들이 울어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예기(禮記)》 〈악기(樂記)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음악의 힘이 학(鶴)을 불러 모으고 춤을 추게 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일화로 자주 인용되거니와 이런 이야기는 먼 옛날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지난주 서울의 어느 가정집 방안, 거기에 첼로를 안은 여성 주자가 연주를 시작하자 곧 어디선가 백조가 날아들었다.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 음악을 듣는다. 사실 이때 연주가는 프랑스의 작곡가 생상스(1835~1921)의 '백조(白鳥)'를 연주한 것이지만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은 실제로 백조가 눈앞에서 유영하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져 있었다. 중국에서 금을 연주했다면 이날 연주한 첼로도 중국에서는 대제금(大提琴)이라고 하니 금이라 할 수 있고, 그러니 그야말로 '금주학래(琴奏鶴來)', 곧 금을 연주하자 학이 날아왔다는 옛 고사성어 그대로다
그동안 우리에게 제대로 된 음악 연주를 집에서 보고 들을 기회는 없었다. 집안에서 자녀들에게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우게 하는 집은 많아도 이들이 얼마나 배웠는지 그저 솜씨를 자랑하는 차원은 있었지만 이처럼 정식으로 연주를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름있는 교향악단의 정식 단원이 개인 자격으로 와서 좋은 악기로 최선의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가내음악회, 혹은 서양식으로 말하면 살롱 음악회가 된 셈이었다. 이날은 첼로 연주도 있었고 플루트 연주도 있었고 두 악기의 합주도 있었다. 연주가 끝난 뒤 방안의 청중들은 모두 넋을 주워 담기에 바빴다. 옛날 선비들이 방안에서 연주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는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음악에 관심이 커졌다. 그전까지는 주로 방송이나 음반을 듣는 차원이었다면 이제는 연주회장도 가곤 한다. 그런데 이런 그리 크지 않은 가정집에서도 음악을 듣고 즐기는 문화가 서서히 시작된 듯하다. 이날은 사실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의 생일축하 자리였다. 각자 작은 선물을 갖고 모여서 집주인이 마련한 간단한 주과를 나누며 축하해주는 자리였다. 당연히 청중들은 집주인이나 이날 생일을 맞은 사람의 친구, 친지들이었는데 이날은 음악을 하는 분들이 많아 자연스레 음악을 듣고 즐기는 자리가 되었다.
필자도 여기에 초대를 받은 것인데. 필자에게 감사한 일은, 필자가 노랫말을 쓰고 우리 회사의 선배가 작곡한 <생일축하의 노래> 음악영상을 집주인이 크게 틀어주어 마침 촛불을 앞에 놓고 우리 모두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며 생일을 축하해준 것이다.
손말틀(휴대폰)의 작은 영상과 소리로는 해보았지만 이렇게 큰 스피커로 제대로 들으니 (이런 자화자찬은 좀 곤란하기는 하지만) 이 노래도 제법 좋구나. 노래를 처음 접한 분들도 가사가 의미가 있고 멜로디가 부드럽고 편해서 생일 축하 선물로는 제격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실 2년 전쯤 영상으로 유튜브에 올라왔는데 그사이 조회수가 7만을 넘었으니 사람들이 제법 듣고 사랑해준다는 뜻이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필자는 생일을 축하하는 음악은 우리 노래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오래 전에 이 노래를 만든 것인데., 이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니 더없는 보람이다. 기왕이면 클래식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 서양악기를 쓰더라도 우리의 흥과 혼이 담겨 있는 노래나 곡들을 많이 써서 이런저런 자리에서 함께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 평소의 소원이다.
필자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편이고 바하에서부터 스트라빈스키, 빌라로보스 등에 이르는 음악가들의 작품도 즐겨 듣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명품 대열에 왜 우리 작곡가들의 것은 끼지 못할까, 하는 점이 늘 불만이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악적 재능은 전 세계에서 최고라고 믿고 있다. 조금만 사람들이 모여도 노래를 부르고, 노래방을 찾아서 목청을 마음껏 돋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런데 음반가게에 가보면 순수음악의 경우 온통 외국 작곡가들뿐이지, 우리나라 작곡가들의 작품은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악적 재능이 온통 외국의 것을 연주하는 데에만 몰려가고 있고 정작 곡을 만드는 데는 잘 쓰이지 못한 것 같은 생각에 안타까웠다.
음악 이야기는 그렇다고 치고, 사실 이날 행사가 열린 곳은 가정집을 화랑 형식의 공간으로 개조해 개방한 곳이다. 이곳에는 이 집 여주인이 유명한 서양화가인 부친 김용기 씨와 함께 살던 곳인데, 부친이 세상을 떠나신 뒤에 부친이 남기신 그림과 유품들을 각 방이나 마루, 계단 곳곳에 전시해서 마치 부친이 이곳에 와 계신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이곳을 찾는 분들이 그림만이 아니라 예술가 자체도 만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동대문 밖 숭인동 주택가에 있어서 대로변의 시끄러운 차 소리도 들리지 않고 해서, 차 한잔과 함께 그림을 감상하고 이런 음악도 감상하고 또 친구들이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서 음악이나 미술, 예술과 우리 인생을 이야기하면 그 얼마나 재미있고 뜻있는 일이 되겠는가?
옛날에 선비들은 집안에서 줄곧 책을 읽거나, 아니면 기생집에 가서 술을 진탕 마시며 기생들이 연주하는 가야금이나 노래를 듣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선비들 자신이 음악가가 되어 멋있는 즉흥 연주회를 하며 즐긴 기록이 많다.
당시 거문고를 잘 연주하던 음악가로 김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새로 조율한 양금을 즐기기 위해 홍대용의 집을 방문했다. 마침 김용겸이 달빛을 받으며 우연히 들렀다가 생황과 양금이 번갈아 연주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자 김용겸이 책상 위의 구리 쟁반을 두드리며 <시경>의 한 장을 읊었는데 흥취가 한참 무르익을 즈음, 문득 일어나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홍대용과 연암은 함께 달빛을 받으며 그의 집을 향해 걸었다. 수표교에 이르렀을 때 바야흐로 큰 눈이 막 그쳐 달이 더욱 밝았다. 아, 그런데 김용겸이 무릎에 거문고를 비낀 채 갓도 쓰지 않고 다리 위에 앉아 달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다들 환호하며 술상과 악기를 그리고 옮겨 흥이 다하도록 놀다가 헤어졌다. 박종채 《과정록》
요즈음 사람들의 인생의 재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라고 한다. 최근에 나이 든 중년들이 색소폰을 배운다, 대금을 배운다고 하면서 재미있게 음악을 생활 속에서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번에 욘보스페이스라는 주택가 골목의 아담한 예술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느끼고 즐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의 중간중간에 추구하는 휴식과 여유와 정신의 재충전일 것이다. 그런 음악회에 초대받은 것이 무척 행운이면서, 이런 음악회가 가정으로 퍼져 나갔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음악을 즐기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더 아름다울 것인가?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