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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귀뚜라미가 우는 밤에는

대자연의 섭리 앞에 인간의 왜소함을 느껴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1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 ‘별 헤는 밤’, 윤동주​

 

시인 윤동주가 밤하늘의 별을 세던 때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인 1941년 11월 5일이었다. 이때는 날이 제법 차가워졌기에 시인은 밤하늘 별을 다 세지 못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을 것인데 그보다 3년 전인 1938년 9월 초, 아직 여름 기운이 남아있어서인지 윤동주는 잔디밭 위에서 작은 생물과 대화를 한다;

 

 

   귀뚜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뚜라미와 나와

   달 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귀뚜라미와 나와’. 윤동주

 

​시인 윤동주가 듣고 이야기한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바로 얼마 전 여름의 전령사라는 매미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어느새 가을의 전령사인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구나. 계절이 가을로 줄달음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어느 시인은 귀뚜라미가 사람 냄새를 그리워하여 저리도 간절하게 운다고 하는데, 귀뚜라미만 그럴 것인가? 우리도 가을이 되면 사람이 그리운 것은 매한가지일세.​

 

“사람이 봄과 여름철에는 마음이 즐겁고 가을과 겨울에는 근심이 쌓이는데, 이는 계절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

 

한(漢)나라 장형(張衡)이 ‘서경부(西京賦)’에서 읊은 것처럼 굳이 이런 말을 멋진 척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근심이 생기고 뭔가 허전해지기에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오히려 초나라의 대부 굴원이 참소로 쫓겨나갔을 때 그의 제자 송옥(宋玉)이 쓴 ‘구변(九變)’의 시구가 더욱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슬프다, 가을의 절기여!

   쓸쓸한 가을바람에 초목이 떨어져 시들어가니,

   처량해라 먼 길 떠난 길손의 심정이라 할까

   높은 산 올라 물 굽어보며 귀향객 보내는 기분일세

   텅 빈 하늘은 드높고 대기는 청명하고

   고요히 흐르는 가을 물은 맑기도 하다.

   마음이 아파서 탄식하는데 차가운 기운이 내 몸에 스며든다.

   날이 밝아오지만 홀로 뜬눈으로 꼬박 새우니

   귀뚜라미만 밤길에 슬피 운다.

   세월은 쉼 없이 흘러 절반을 넘었건만,

   아, 머물려 해도 쓸데없구나.

 

 

여름 한 철 어느새 지나고 가을이 되니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론가 움직이는 길손처럼 변하고 그 상황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더욱 사람을 서글프게 하는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 무더위도 조금 물러간 사이에 구름에 덮여있던 하늘이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 중에 ‘가을의 손님’이 이제 나 왔다고 스스로를 알린다.

 

중국의 옛 시가집 《시경(詩經)》을 보면 “7월이 되면 귀뚜라미는 들에 있다가 8월이 되면 집으로 들어오고 9월이 되면 문안으로 들어오고 10월이 되면 내 침상 아래로 들어온다 온다”라고 했는데, 그때의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이제 귀뚜라미들이 집으로 들어올 때다. 집 귀퉁이 어느 기둥 밑에서 울어대고 있음이 틀림없다. ​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서글퍼지고 문득 사람이 그리워진다. 그것은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어 나뭇잎이 물들고 풀이 시들어 생명이 움츠러드는 것이 곧 이들 생명의 겨울을 예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곧 아침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출근하는 볼때기에 찬 바람이 몰아치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토해낸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가지에 잔뜩 매달려 웃을 때는 아름답고 멋있는 이 가을이 며칠 뒤 금방 추워지면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감사하던 마음이 어느새 쑥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귀뚜라미 소리는 그 모든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문득 한 해를 그냥 보낸 것이 아니냐며 낙담을 하고 그만큼 삶을 허비한 것이 아니냐며 마음이 처연해진다. 그리고는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마음은 좌표를 잃고 헤맨다. 그런데 이런 것을 3천 년 전 사람들도 알았을까? 이럴 때 정신을 차리라고 말한다;

 

​   귀뚜라미가 집안에 드니

   한 해도 어느덧 저물어 가네

   지금 내가 즐기지 않으면

   세월은 덧없이 지나가리

   그러나 지나치게 느긋하지만 말고

   항상 자기 주위를 생각해야지

   즐거워도 지나치지 않도록

   어진 사람은 항상 조심할지어다

               .....《시경(詩經)》 <당풍(唐風) 귀뚜라미 >

 

 

사족을 달아 보자면 귀뚜라미가 집안에 들어온 것은 이제 좀 있으면 한 해가 저물어 간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게으름 피우지 말고 겨울 준비를 하고, 그리고 조신하게 행동하고 올바른 마음가짐을 해서 한 해를 잘 마무리하라는 내용이다.

 

자연의 질서는 늘 아름답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온난화로, 기후변화로 올해 세계도 우리나라도 몸살을 앓았지만 그래도 더운 여름을 뒤로 하고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오고 있다. 사계절의 질서가 이렇게 아름답고 고마울 수가 없다. 대자연의 섭리 앞에 인간의 왜소함을 느끼며 숙연해지는 지금이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