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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다시 끝자락에 서서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27]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마지막 달력 앞에 선다.

   회한과도 같은 바람이 분다

   한 해의 시간들이 얼어붙는다

   12월!

   12월은 빙화(氷花)처럼 결정(結晶)한다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결정의 달

                           이어령 / 증언하는 캘린더

 

 

저도 올해 마지막 달 시간의 끝자락을 잡고 다시 섰습니다.

 

10월 한 달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11월도 휩쓸려 지나갔군요. 미처 한국의 가을, 기온이 높다가 갑자기 영하가 되어 가을의 잎들이 미처 단풍도 못 들고 다 얼어서 말라버린 이 가을을 느끼기 전에 초겨울로 접어들었지요. 올해의 끝 달을 맞아 서른한 칸이 그어진 12월 월력의 5간을 이미 보내고 이제 26간을 곧 채우면 훌쩍 2023년을 과거로 보내버리는 거지요.

 

서울의 가을을 보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후회는 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서울에 있었다면 잘 보지 못하고 지나갈 일상들, 올해는 다른 데서 가을을 보고 온 셈이니 나중에 생각하면 올해 가을이 더 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한 해가 다 끝나 가니 다시 후회가 오는 거지요.

 

뭔가는 꼭 할 수 있었던 것 같은 올해 초의 기분을 시간이 안 맞춰준 것이지요. 결국 다시 빈손이 되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지난 시간을 열심히 살았느냐고 다시 자문해 보는 것이고, 남들처럼 치열하게, 후회 없이 살지 못했다는 일말의 자책감으로 스스로 내려다보는 것이지요.

 

 

 

이럴 때, 무언가 평상시와 다른 생각이나 느낌이 들 때를 맞으면 저는 시인을 찾습니다. 시인들이 이러한 순간에는 가장 깊은 생각을 끄집어내 주니깐요. 시인들은 열심히 살아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안쓰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 같습니다. 적으나마 위안이 되는 순간이지요.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 오세영 / 12월

겨울은 어둠입니다. 차가운 공기가 심장을 얼어붙게 하고 달력에 그려진 마지막 장의 칸들이 우울하게 합니다. 뭐 하고 보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아도 이미 지나간 시간의 뒤끝은 잡히지 않아 시간이라는 요물이 어떤 표정을 하고 지나갔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새로 오는 시간은 아직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이런 깊은 어둠, 이런 심연(深淵)에 허우적거리게 되는데, 시인들이 그런 우리를 건져줍니다.

 

그렇습니다. 너무 시간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잡지 못하고 보내버린 것에 대해, 이른바 잃어버린 것에 대해, 낭만에 대해 미련을 두지 마십시다. 대중가수들의 가요 가사들이 절절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때 그래도 우리는 소망의 빛을 다시 켜고, 삶의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가십시다. 우리 기도의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삶을 위해 오늘 기도를 하십시다.

 

 

   주님! 12월에는

   먼저 한해를 뒤돌아보게 하셔서

   가정마다 행복의 이야기꽃이 피어

   사랑의 물결이 넘쳐흐르게 하소서​

 

   욕심과 고집을 거두어 주셔서

   참음으로 사랑을 나누게 하시고

   겸손하고 온유한 삶으로

   일상이 성실한 삶이 되게 하소서​

 

   불신을 거둬 신뢰의 삶 주셔서

   고운 언어가 삶의 통로가 되어서

   따스한 손길로 정이 흘러 사람마다

   희망의 눈빛이 빛나게 하소서

                              ..... 김덕성 / 12월의 기도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