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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백성은 먹는 것이 하늘이다

민위방본(民爲邦本)-②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4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시인발정(施仁發政)’에서 시작하는 세종의 구체적 정치사상들을 보자.

 

먼저 세종의 정치에서 나타나는 민본(民本)의 모습이다. 민본 가운데는 예나 지금이나 제일 중요한 것은 ‘먹고 입는 것’이다.

 

먹는 것 :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 되고, 먹는 것은 백성의 하늘이라, 심고 가꾸는 일은 정치의 먼저 할 바이나, 진실로 단비[甘雨(감우)]가 아니면 이를 어찌 성취하리오.(세종 7/6/25)

 

옷 : (수령이 재물을 사용해도 가한 조목을 나열하여 법을 제정하는 방안을 논의하다) 경내의 인민 중에 만약 환과고독(鰥寡孤獨,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처지인 사람)과 병든 자가 있으면 모두 장부를 만들어 두고 구호하며, 길거리에 굶주리고, 옷 없고, 늙고, 병든 자가 있으면 역시 다 구호해야 하며, 호랑이를 잡는 사람까지도 혹 쌀ㆍ무명ㆍ염장(소금과 간장) 등을 주게 됩니다. (세종 7/11/14) ·

 

의식(衣食) : 의식이 넉넉하면 백성들이 예의를 알게 되어, 형벌에서 멀어질 것이다. 그대들은 나의 지극한 마음을 본받아 백성들을 편안하게 기르는 일에 힘쓰라. (세종 7/12/10)

 

생활 풍족 : 교서에 이르기를, 임금은 이르노라. 백성은 오직 나라의 근본이요, 정치는 백성을 기르는 데에 있으니, 백성의 생활을 풍족하게 하여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급선무다.(세종 12/윤 12/9)

 

백성은 먹는 것이 하늘이다. 정치란 백성에게 밥을 주고 다음에 입을 옷을 주어야 한다. 한두 끼 굶어도 죽지는 않으나 옷이 없으면 나라에서 주는 구휼미를 받으러 관가에 갈 수도 없는 것이다. 벗고 다닐 수는 없으니, 여자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에 앞서 추운 날씨에 벗고 있으면 병들어 죽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의식이 넉넉해지면 자연스레 예의도 알게 되어 억울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정치란 백성이 먹고, 입고, 예의를 알게 해주게 되면 나라 전체가 튼실해진다는 논리 위에 있다.

 

 

직접적인 한 예로 사간원에서 흉작의 정도가 심한 주군의 조세를 면제할 것 등을 상소한 일이 있다.

 

사간원에서 상소하여 아뢰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먹는 것은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제 흉년을 만나 민생이 염려되오니, 각 군의 조세를 경창(京倉, 서울 한강가에 있던 각종 관곡 창고)에 바치는 것을 제하고는, 곡식으로 거두어 각기 그 고을에 두었다가, 내년의 씨앗으로 예비하게 하고, 그 농사를 그르침이 더욱 심한 주군(州郡)은 한(漢) 문제(文帝)의 고사(古事)에 따라 조세를 전부 면제하시기를 청하나이다. 그리고 ... 지금 우리는 기근으로 재물이 없어 교역하지 못한즉, 왜적이 의식을 얻을 곳이 없게 되면 반드시 도둑질할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옵니다. 전라도는 적이 들어오는 첫 길목이므로 방어가 매우 긴급하온데, ..., 청하옵건대 특별히 청렴하고 삼가며 백성을 사랑하고 무예가 출중한 사람을 골라 도절제사에 임명하여 보내고, 기타 모든 도의 무기도 잘 정비하여, 앞으로 뜻밖의 일을 방비할 수 있게 하라고 아울러 발령하소서. 각종 과전(科田, 지위에 따라 관원에게 나누어 주던 땅)은 3분의 1을 경기 밖의 외도(外道)에 주되, 수로가 가로막히고 거리가 먼 도에서는 모두 베와 비단으로 거두어 바치게 하되, 혹 과중하게 거두어 백성에게 큰 해를 끼치는 자가 있으면, 호조가 합당하게 헤아려 규정을 정하게 하고, 그 규정을 어기고 과중하게 걷는 자는 소작농민으로 하여금 관가에 고하게 하여, 그 밭을 거두어들임으로써 법을 어겨 거둬 받는 문을 막도록 하소서" 하여, 임금이 이에 좇아 그 과전의 포백으로 수납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원하는 바에 따라 그 지방의 시가로 바치게 하였다. 어기는 자는 수령이 꼼꼼하게 따져 조사하게 하였다.(세종 즉위년 10/3)

 

농사의 기본이 되는 비를 빌며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했다. 그 제문에 이르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 되고, 먹는 것은 백성의 하늘이라, 심고 가꾸는 일은 정치의 먼저 할 바이나, 진실로 단비[甘雨]가 아니면 이를 어찌 성취하리오... 생각하건대, 그대 용신(용왕)은 그 직책이 비를 주는 것이니,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려 부족함이 없게 하라. 삼가 예전 사실에 따라 그림으로 모습을 그리고 간략한 의식을 갖추어 드리면서 나의 작은 정성을 고하노니, 단비를 내려 신령한 혜택을 밝게 빛내 주기를 바라노라." 하였다. (세종 7/6/25)

 

또 다른 사례는 종교의 사치와 낭비의 문제였다.

 

집현전(集賢殿) 부제학(副提學) 김돈(金墩) 등이 상서하기를, "불교가 아직 오늘날의 백성을 미혹시키고 재물을 좀먹는 것을 가지고 예감(睿鑑)을 어지럽게 하나이다. 일을 주관하는 중을 죄주고, 우러러 받드는 사람을 금하며, 그 콩과 조를 거두어 굶주리는 백성을 진휼하고, 그 베와 비단을 몰수하여 관가의 용도에 보태어, 영구히 변방 오랑캐의 종교를 끊고 이 백성의 미혹(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함)을 끊게 하시면, 지극히 바라고 원하는 것을 얻겠나이다." 하였다.(세종 17/4/20)

 

임금이 불교를 금지하게 한 것도 불교집단의 사치와 낭비를 금한 것이지 개인적으로 믿는 것은 금지하지 못했다.

 

세종의 ‘민위방본’은 백성이 먹고사는 ‘삶의 질’을 높이려는 여러 정책의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