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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은 21세기 기준으로 ‘간 큰 남자’

효석문학100리길 제5-1구간 답사기 (16)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4년 6월 24일(월)

답사 참가자: 김수용 김혜정 송향섭 윤석윤 윤희태 이상훈 전선숙 황병무 (8명)

답사기 쓴 날자: 2024년 6월 29일

 

효석문학100리길의 제5구간은 평창 용항리 경로당 ~ 평창바위공원 ~ 평창 전통장(평창초교)까지 걷는 길로서 소책자에서는 ‘마을길 따라 노산가는 길’이라고 이름붙이고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강, 들, 숲과 역사 그리고 옛 정취가 남아있는 평창 전통장 등 다양한 테마를 가진 그림처럼 아름다운 평창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간이다.

 

5-1구간은 용항리 경로당에서 평창바위공원까지의 거리 7.5km 구간이다. 5-1구간은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숲길을 따라 작은 고개를 넘고 마을길을 걸으며 시골의 정취를 느끼고 평창강과 기암절벽, 임진왜란 때 격전지였던 노산성을 둘러보고 평창강변에 위치한 평창바위공원에 이르는 길이다.

 

 

용항리 경로당에서 아침 9시 30분에 8명이 출발하였다. 이날 날씨는 여름이지만 구름이 끼고 흐려서 덥지 않았다. 기온은 25도 정도로서 답사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용항리 안쪽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길은 원래는 4구간에 포함되어 있으나 지난번에 일행 모두가 피곤하여 걷지 않아서 이번에 걸었다.

 

우리는 평창강을 오른쪽에 두고 서쪽으로 걷는다. 강너머 북쪽에는 푸르른 산과 가파른 절벽이 펼쳐져 있어서 경치가 빼어났다. 길의 왼쪽으로는 근사한 시골집이 군데군데 나타나는데, 주말에만 이용하는 전원주택인가보다. 마당에 차가 없는 것을 보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가다 오른쪽을 보니 건너편 강가에 나룻배 한 척이 떠 있다. 배 위쪽으로는 줄이 연결되어 있다. 나는 3년 전(2021/4/20) 친구들과 평창강 따라 걸을 때 저 배를 보았었다. 배 옆에 사람도 보였다. 그때의 답사기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은곡(隱谷, 내 친구 이규석의 호)이 나룻배를 바라보더니 동경하는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아, 막걸리 한 통 짊어지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가 저 사람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싶네요.”

내가 거들었다.

“나도 따라가고 싶네요. 내가 소리북 메고 가서 판소리 한마당 펼치면 참 좋겠네요.”

“언제 한번 그래 볼까요?”

“네, 좋지요. 얼씨구나 좋~다!”

 

그때의 꿈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안타깝게도 은곡은 올해 3월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은곡과 함께 보았던 배를 이날 다시 보니 그가 몹시도 그립다. 그를 생각하니 아래와 같은 옛사람의 글귀가 더욱 실감 나게 느껴진다.

 

生也一片 浮雲起 (생야일편 부운기)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死也一片 浮雲滅 (사야일편 부운멸)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전원주택의 마당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있다. 이날도 송향섭 선생이 여러 가지 풀꽃의 이름을 많이 알려주었다. 고구마꽃은 이날 처음 보았다. 원래 한반도에서는 고구마꽃을 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고구마꽃이 피면 방송이나 신문에 보도가 되기도 했단다. 최근에 지구온난화로 한반도가 아열대로 변하면서 고구마꽃을 본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열대 지방인 중남미가 원산지인 고구마는 연중 날씨가 따뜻한 중남미 현지에서는 꽃을 잘 피운다고 얘기해준다. 고구마꽃의 꽃말은 행운이다.

 

 

용항리 길은 다른 마을로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꽃구경하면서 용항리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출발한 지 30분이 지나 10시에 경로당에 다시 도착하였다. 우리는 이제 평창강을 왼쪽에 두고 동쪽으로 걸어갔다. 평창강을 따라서 제5-1구간을 걷기 시작했다.

 

이효석 이야기를 이어가자. 봉평면에 있는 이효석 문학관에 들어가 보면 두 번째 방의 오른쪽에 이효석이 평양에서 살던 집의 응접실을 복원해 놓았다. 원래 응접실 사진이 한 장 남아있었는데, 이를 근거로 복원했다고 한다.

 

 

응접실을 살펴보면 효석은 꽤나 부유했던 것 같다. 피아노가 오른 쪽에 보이고, 크리스마스 트리와 ‘MERRY X-MAS!’ 글씨, 옛날 전축, 그리고 탁자도 보인다. 그런데 응접실 왼쪽 위를 보면 웬 여자 사진이 하나 걸려 있다. 해설사에게 사진에 대해서 물어보면 다니엘 다리외(Danielle Darrieux 1917~2017)라는 프랑스 여배우의 사진이라고 대답한다.

 

다니엘 다리외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다니엘 다리외는 프랑스의 보르도 출신 여배우로서 1931년에 영화 <르 바르>에서 주역으로 인기를 얻었다. 다리외는 <대장 브리바>(1936), <금남의 집>(1936)에 출연하여 당시 전 세계의 남성 영화 팬을 매료시켰다.

 

 

이효석은 함경북도 경성 주을온천 지구에서 평소 교류하던 러시아인의 초청으로 본 영화 속의 주인공 다리외에게 반했나 보다. 효석은 다리외의 사진을 구해 응접실에 액자를 만들어 걸어놓았다.

 

좀 더 알아보니, 효석은 《조광》 지 1938년 9월에 “Miss 다니엘 다리유”라는 제목의 편지글을 발표하였다. 나는 처음에 이 편지가 효석이 다리외에게 보낸 팬레터인 줄 알았는데, 찾아서 읽어 보니 팬레터가 아니었다. 효석의 편지글을 여기에 소개한다.

 

다리유! 나는 지금 할리우드 벨에어의 주택에서 자유로운 아메리카의 공기를 한껏 마시며 참새같이 기쁘게 날뛰고 있을 그대의 자태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적는다. (가운뎃줄임)

 

다리유! 지금 내 수중에 있는 그대의 몇 장의 그림 속에는 망측한 한 장이 있다. 벨에어의 주택 지붕 위에서 그대가 발가벗고 엎드려 일광욕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가운데, 줄임)

 

그러나 내가 대체 무어라고 그대에게 이런 싫은 소리를 쓰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편집 씨가 내게 그대에게 주는 편지를 쓰라고 분부한 것조차가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다. (가운뎃줄임)

 

그럼 내일을 위해서 편히 쉬라. 아침이 올 때 새로운 경영을 바라오며 기쁜 낯으로 잠을 깨어라. 동양식으로 키스를 보내지 않노라. 이만 아듀!

 

효석은 잡지 편집자의 요청으로 다리유에 관한 편지글을 《조광》 지에 투고한 것 같다. 내용으로 보면 다리외의 과다한 노출 사진을 꾸짖는 등, 영화배우 다리외에 관한 평론이지 팬레터가 아니다. 아마도 이 편지글은 다리외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리외는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오랫동안 프랑스 영화계를 빛냈다. 그녀는 매력적인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38살인 1955년에 빅트와르 여우상을 받았다. 그녀는 은막 활동을 계속하였는데, 놀랍게도 85살의 나이인 2002년에 제15회 유럽영화상 여우 주연상까지 수상하였다. 그녀가 은퇴를 선언한 것은 93살인 2010년이었다. 그녀는 장수를 누리다가 2017년에 향년 100살의 나이로 프랑스에서 사망하였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유명 여배우의 사진을 응접실에 걸어놓은 효석의 행동에 부인은 어떻게 반응했을까?”라는 점이다. 내가 만일 이런 행동을 한다면, 예를 들어 마를린 먼로나 오드리 햅번의 사진을 거실 벽에 걸어놓는다면, 나의 각시가 이를 용납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부인들 가운데서 남편의 그런 행동을 용인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효석은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돈키호테’, 또는 ‘간 큰 남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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