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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차례’와 ‘뜨레’

[우리말은 서럽다 53]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누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멈추지 않고 모습을 바꾼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은 그렇게 움직이며 바뀌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라 슬기와 설미(일의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를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렇게 움직이며 바뀌는 모습을 알아보려고 만들어 낸 가늠이 ‘때’와 ‘적’이니, 한자말로 이른바 ‘시각’이다.

 

또한 그런 가늠으로 누리가 움직이며 바뀌는 사이의 길이를 나누어, ‘참’이며 ‘나절’이며 ‘날’이며 ‘달’이며 ‘해’며 하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한자말로 이른바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때’와 ‘적’을 냇물이 흘러가듯 쉬지 않고 흐른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온갖 일이 그런 흐름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차례’는 이런 ‘때’와 ‘적’의 흐름에 따라 먼저와 나중을 가리는 잣대를 뜻한다.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먼저와 나중을 가려서 차례를 따지고 매기면 삶이 한결 가지런하다고 느끼며 마음을 놓는다.

 

‘차례’는 본디 한자말이었으나 이제는 그런 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지고, 본디부터 우리말인 줄로 알 만큼 되었다. 한자가 제 본디 소리를 허물어 버리고 우리말 소리에 안겨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자가 제 본디 소리를 지키려 들었으면 지금 이것은 ‘차제(次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제 본디 소리를 버리고 우리말 소리에 안겨 들어와야 참된 들온말이다.

 

‘뜨레’는 ‘차례’와 좋은 짝이 될 만한 우리 토박이말이다. 그러나 ‘뜨레’는 글말로 적힌 데가 없는 듯하고, 그래서 국어사전에도 오르지 못한 낱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우리 고향(경남 진주)에서 ‘뜨레’라는 낱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사람이면 모두 같은 사람인 줄 아느냐? 사람에게도 천층만층 ‘뜨레’가 있는 것이다.” 하는 말은, 사람답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려세워 놓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남은 사람끼리 서로 나누는 말로, 사람답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은 ‘뜨레’가 낮으니 본뜨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섞지 말고 ‘뜨레’를 가려서 담아라.” 하는 말은, 감자나 고구마를 캐어 그릇에 담을 적에 자주 듣던 말이다. 큰 것은 큰 것끼리, 작은 것은 작은 것끼리, 크고 작은 ‘뜨레’를 가려서 그릇에 담으라는 뜻이다. 이처럼 ‘뜨레’는 값어치의 무게, 값어치의 높낮이를 가늠하는 잣대를 뜻한다.

 

이래서 ‘차례’와 ‘뜨레’는 서로 잘 어우러지는 짝이 되는 낱말이다. 하나는 먼저에서 다음으로 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가늠하는 잣대로, 또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달라지는 값어치의 높낮이를 가늠하는 잣대로 서로 짝이 된다. ‘차례’는 가늠의 씨줄이 되고, ‘뜨레’는 가늠의 날줄이 되어 세상 만물을 헤아리며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