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예, 사실인가 봐요. 본인이 스스럼없이 미스코리아라고 인정하던데요.”
“나이는 얼마나 됐나요?”
“1978년에 미스코리아였다니까 아무래도 40은 넘었을 것입니다. 직접 나이를 물어보지는 못했지요.”
“K 교수님이 20대로 보았다면 너무 후한 점수를 주신 것 같네요. 어떻게 사십 넘은 여자를 20대로 봅니까?”
“아니에요. 같이 있던 다른 두 교수도 동의했답니다. 얼핏 보면 20대로 보인다고.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30대 정도로 보이지요. 그러나 여자 얼굴을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안 믿어지네요. 어쨌든 나중에 한 번 보고 다시 토론합시다.”
교수들은 토론을 좋아한다. 식당 여주인이 20대로 보이는지 40대로 보이는지, 그게 무슨 토론거리인가? 사십 넘은 미인을 20대로 보건 30대로 보건 무엇이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교수들은 별것 아닌 주제를 가지고 토론만 길게 하는 이상한 존재들이다.
벚나무 그늘에서 스파게티를 먹으며 나누는 화제는 주로 원주 이야기였다. 지금은 춘천이 강원도 도청 소재지가 되었지만 원래 원주가 더 컸다고 한다. 기실 강원도라는 이름은 강릉과 원주의 앞 글자를 따랐다니 옛날에는 원주가 춘천보다 더 컸든가 보다. 현재의 도 이름을 보면 과거의 큰 도시를 알 수 있다.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에서 따왔고,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에서,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에서 각각 따왔다고 한다. 그러므로 부산, 대전, 광주, 대구 등은 지금은 큰 도시이지만 옛날에는 인구가 적고 작은 도읍이었을 것이다.
원주를 대표하는 산이 치악산이다. 치악산(雉岳山)에 있는 대표적인 절이 구룡사인데, ‘은혜를 갚은 까치’의 전설이 내려오는 바로 그 절이다. 그러나 전설의 주인공은 까치가 아니고 꿩이라고 한다. 치악산의 치(雉)는 꿩 치자이니,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
산 이름에 악(岳)자가 들어 있으면 흙산이 아니고 돌이 많은 돌산을 의미한다. 치악산을 비롯하여 관악산, 월악산, 감악산, 황악산 등은 등산로에 돌이 많아서 걷기에 불편한 산들이다. K 교수는 대학 다니던 옛날에 치악산에 갔다가 정상 근처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돌길을 걸으면서 고생을 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ㄷ 교수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미스 K가 이화여대를 자퇴했다고 하던데 왜 그랬나요?”
미스 K에 관한 정보를 많이 수집한 K 교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1978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미스 K는 수영복 심사가 포함된 미인대회에 대학원생 신분으로 참가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당시 이화여대는 재학생의 연예 활동을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에, 그녀의 출전은 충격적이었고 결국 자퇴를 선택해야 했다. 이 시절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아있던 때였고, 사회 분위기가 지금보다 훨씬 권위주의적이고 경직되어 있었다. 이화여대는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로서 매우 보수적인 교풍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화여대에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이상한 학칙이 있었다. 1946년부터 성문화 되었다고 하는 금혼 학칙이 있었다. 학칙 제14조에 신입생의 입학 요건을 ‘미혼일 것’으로 규정했고, 제28조에서 재학 중 혼인을 금지했다. 이러한 학칙의 도입 목적은 “과거에 성행했던 조혼 풍습으로부터 여학생들의 교육권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1990년대부터 이러한 학칙에 대한 반대 여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총학생회장 선거 때에 선거 공약으로 내거는 후보까지 나타났다. 지속적인 투쟁으로 금혼 조항이 학칙에서 사라진 것은 2003년이었다. 이화여대 개교가 1887년이니 개교 이후 116년 만의 일이다. 학생들의 ‘연예 활동 금지’는 학칙에 성문화된 것이 아니고 관습적으로 유지되던 규제였다. 1990년대 이후 이러한 규제 역시 사라졌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학교의 정책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K 교수가 ㄹ 교수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총장님 특별 표창을 받으셨다는데, 축하드립니다. ㅁ 교수와 두 분이 상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홍보상이라고 했죠?”
“네, 엉겁결에 상을 받았습니다. 교무처장에게 왜 홍보상을 주느냐고 물어보니 저술 활동으로 학교의 이름을 널리 홍보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출판한 물리학 책 한 권이 조선일보에서 매월 발표하는 베스트셀러에 들어가서 홍보상을 준 거랍니다.”
“철학과 교수인 ㅁ 교수도 같은 상을 받았나요?”

“네, ㅁ 교수는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라는 책으로 홍보상을 받았습니다. 그 책은 무려 30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책을 사서 본 30만 명은 저자가 S 대 교수라는 것을 알게 되고, 따라서 학교 홍보 효과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날 상을 주는 자리에서 총장님이 교무처장에게 지시했습니다. 앞으로 어느 교수라도 저서가 조선일보 발표 베스트셀러에 들어가면 홍보상을 주고 교수 평가에서 총장특별점수 30점을 부상으로 주라고 말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