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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질투가 여자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4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음 날 오후, 강의 시간이 비는 틈을 타서 K 교수는 학교에서 가까운 봉담읍 장터에 나갔다. 모종과 묘목을 파는 가게에 가서 3,000원 주고 조롱박 모종을 3개 샀다. 모종을 차에 싣고 미녀식당으로 갔다. 마침 미스 K가 자리에 있었다. K 교수는 모종을 얼른 내려놓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서 차도 마시지 않고 식당을 나왔다. 미스 K가 문밖에까지 따라 나오며 정(情)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롱박을 잘 키우겠습니다. K 교수님, 정말 고마워요.”

 

 

계절은 이제 늦봄이 지나고 있었다. 미녀 식당의 베란다 밖으로 보이던 화려했던 봄꽃은 어느새 다 지고 이제는 잎이 무성해졌다. 개나리, 목련, 수수꽃다리, 장미에 이어서 향기가 진한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아카시아꽃은 꿀이 많아서 양봉업자들이 소중히 여기는 꽃이다. 아카시아꽃이 질 무렵이면 봄도 물러난다고 볼 수 있다.

 

며칠 뒤, K 교수는 공과대학의 나 교수와 점심시간에 미녀식당에 갔다. 나 교수 역시 미스 K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K 교수는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아마도 나 교수가 경쟁이 될지도 몰라. 나 교수는 서울 출신이어서 그런지 시골 출신인 K 교수에 견줘 매너도 세련되었고, 영어도 훨씬 잘 하였다. 또 그는 워낙 박식해서 K 교수는 은근히 기가 죽는 경우를 몇 번 경험한 바 있었다. K 교수는 소형차인 프라이드를 타는데, 나 교수는 쌍용에서 만든 고급차인 체어맨을 타고 다녔다. 그날도 두 사람은 나 교수가 운전하는 체어맨을 타고 미녀식당에 갔다.

 

나 교수는 특히 K 교수가 취약한 부분인 음악과 미술 부문에서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좋은 그림을 비싼 돈 주면서 살만큼 재력도 튼튼했고, 좋은 교향곡을 들으면 온몸으로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모은 음악 CD는 2,000장이나 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K 교수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그림은 그저 색의 집합일 뿐이며, 아무리 들어 보아도 음악은 음의 집합일 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K 교수는 지금까지 자기 돈으로 음악회 입장권을 사거나 미술 전람회 입장권을 사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K 교수의 연구실에는 그림 한 점 걸려있지 않았고, 오디오 시설도 없었다. 예술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K 교수의 예술 점수는 0점이었다. K 교수는 지극히 무미건조한 사람이었다.

 

미스 K가 다가오더니 두 사람에게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나 교수가 미녀식당에 처음 온 것은 아닌 듯하다. K 교수가 유심히 관찰하니 미스 K의 눈동자가 나 교수를 향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K 교수는 은근한 경쟁심 같은 것이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미스 K와 간단한 인사말을 교환한 뒤 두 사람은 스파게티를 주문하였다.

 

“영업은 날로 번창하지요?”

“그저 그래요. 교수님들이 이렇게 찾아 주시니 그럭저럭 운영이 되지요.”

“사업하는 사람은 엄살이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사업하면서 그저 그렇다는 것은 상당히 잘 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하던데요. 금방 부자 되시겠어요.”

“아니에요. 생각보다 손님이 많지 않아요. 큰길에서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면 홍보를 좀 쎄게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좋겠지요.”

 

그날 두 사람은 홍보 전략에 대해서 미스 K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길가에 펼침막을 내거는 방안, 벼룩시장에 광고를 내는 방안, 신문지에 전단을 끼워 돌리는 방안 등등. 두 사람이 머리를 짜내어 생각해 보니 근사한 홍보 방안이 여러 가지로 튀어나온다. 미녀식당은 음식 맛은 그런대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가 충분하므로 홍보만 잘하면 될 것 같다. 마침, 식당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미스 K는 테이블에 같이 앉아 커피를 마시는 짬을 낼 수가 있었다.

 

염려했던 대로 그날 화제는 주로 나 교수가 이끌어 갔다. 유럽 여행한 이야기, 호텔 이야기, 음식 이야기, 미국에서 살던 이야기, 음악가의 숨겨진 비사 등등 화제는 끝이 없었다. 평상시와는 달리 K 교수는 듣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K 교수는 나 교수의 풍부한 화제와 능숙한 화술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하였다. 미스 K가 두 사람을 견준 뒤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할까?

 

아무래도 K 교수는 나 교수와 견줌에는 자신이 없었다. K 교수는 열등감과 함께 솟아오르는 질투심을 느꼈다. 질투가 여자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은근하지만, 남자에게도 분명 질투심은 존재하는 것이다. 스파게티를 먹고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K 교수의 표정은 시무룩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K 교수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읽은 나 교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