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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노래

[김동규의 음악에세이 3] ‘아들아 아들아 Dear My Son’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한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에게 지난 해 작곡하여 제작한 노래시 음반 한 장을 전해 주러 갔다가 오히려 최근 출판했다는 책을 다섯 권이나 선물 받았다.  고마운 마음으로 점심을 대접하며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다가 받은 책 3권이 이 윤옥이라는 시인이 쓴  서간도에 들꽃 피다라는 아주 특별한 시집임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시집을 읽어 보니 거기에는 많은 조선의 구국여성 60여분이 시를 통하여 소개되어 있었다. 

사실 내가 아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는 유관순 누나 밖에 없는데 한 장 한 장 넘겨 보니 가려져 있었던 많은 한국의 잔다르크들의 이야기가 나를 숙연하게 하였고, 시와 함께 곁들여 있는 그림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한국화가 이무성 선생님의 민속화여서 더욱 눈이 갔다.

... 일왕의 도쿄 황거를 폭격코자 장개석 휘하 혁명군이 되어 11년의 세월을 싸웠다는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 권기옥
... 학교에서 중국 아이들이 “나라도 없는 망국노”라는 놀림을 해대는 것을 참지 못해 그 길로 책상을 뒤 엎고 광복군에 입대하였다는 16살 소녀 오희영
... 허드렛일 하면서 밥을 얻어다 옥살이하는 아들 뒷바라지를 했고, 상해임시정부 시절 시장 골목을 헤매며 배춧잎을 주워다 수많은 젊은 독립운동가들을 먹여 살렸던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선생의 억척 어머니 곽낙원
... 읍내에 불꽃처럼 만세의 물결에 눈감지 않고 동료 기생 서른 세명 불러 모아 만세운동에 앞장 선 수원의 논개 김향화
... 평남도청에 폭탄 던진 당찬 임산부 안경신 /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피멍 든 동전을 모아 송금한 강원신

그 중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뭉클하게 했던 시는 바로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또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가 옥중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형식의 시화였다. 아들 둘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시를 읽으며 영웅을 만드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잠시 만감이 오갔다. 

   
▲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시화(이윤옥 시, 이무성 그림)

며칠 후 이 시집의 내용으로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을 인사동 갤러리<올>에서 한다는 소식에 뜻있는 일을 하시는 분들께 뭔가 도움을 드리고 싶어 부부가 기꺼이 개막식에 축가를 부르기로 하였다. 축하할 일이지만 내용이 독립운동에 관한 엄숙한 것이라 즐거운 축가보다는 부부가 함께 부르는 겨레의 서사시 <아리랑 아라리요>를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책상 위에 놓아둔 시집의 뒷 표지에 인쇄된 안중근 어머니의 편지시가 자꾸 눈에 들어와 자꾸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면 학생이나 부모들에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밤새 뒤척이며 비몽사몽 구상을 하던 며칠 후, 친분이 있는 종로의 한 치과에서 가족이 검진을 받는 사이에 나는 원장실에서 기다리며 메모지에 안중근 어머니의 편지시에 음율을 그릴 수 있었다.

바로 작업실로 돌아와 기타를 치며 직접 노래해 보면서 음역이 노래하기에 적절한지를 검토하며 약간의 수정을 보았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오케스트라 편곡을 하는데 안중근이 천주교인 임을 반영하고 또 하얼빈역 이등방문의 기차 도착을 암시하고자 종소리를 넣어 보았다. 간단한 노래녹음을 해서 들어 보면서 극적인 상황이 더 고조되도록 종소리에 총성을 추가하였고 전쟁을 암시하는 대포소리를 전반적으로 바탕에 깔아 보았다.

간신히 시화전 개막에 맞추어 반주가 완성되어 2월 27일에 이 노래를 초연을 할 수 있었는데 그날 독립유공자 가족들이 많이 참석하였고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의 노래에 부르는 우리 부부도 듣는 이도 함께 눈물바다가 되었다. 음악의 힘, 시의 힘을 느꼈다.

아들아 / 옥중의 아들아 /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 칼이든 총이든 당당히 받아라 / 이 어미 밤새 네 수의 지으며 결코 울지 않았다 / 사나이 세상에 태어나 조국 위해 싸우다 죽는 것 / 그보다 더한 영광 없을 지어니 / 비굴치 말고 당당히 왜놈 순사들 호령하며 생을 마감하라 / 하늘님 거기 계셔 내 아들 거두고 / 이 늙은 에미 뒤쫓는 날 / 빛 찾은 조국의 푸른 하늘 새 되어 / 다시 만나자 / 아들아 / 옥중의 아들아 /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 아! 나의 사랑하는 아들 / 중근아.

       

시화전이 끝나고 서로간에 고마움을 표하는 자리에서 나는 노래 중에 어색했던 부분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왜놈 순사들 호령하며 생를 마감하라’ 부분의 시어가 너무 길어 내레이션 형식으로 처리했음에도 음악적인 맥락이 끊기는 점을 조심스레 털어놓았고 또 시어가 좋지만 너무 구체적으로 ‘왜놈 순사들’이라 호령하지 않고 차라리 이 부분을 삭제하여 이 노래시가 보다 보편적인 조국애의 노래로 세계인이 저마다의 상황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하면 더 좋겠다고 제안을 하였는데 의외로 쉽게 동의해 주어 무척 고마웠다. 그리고 같은 노래를 영어로도 녹음하여 세계에 알리기로 하였다.

요즘 필자는 이런 시도를 진정한 <K-팝페라>로 칭하고 있다. 곧 현재 널리 퍼져 나가고 있는 K-팝에 오페라적인 문학의 깊이를 더해 보자는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번역되어 있는 시가 대부분 직역이어서 역사적인 내용을 모르는 외국인이 들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수 있겠다는 고민하고 있을 때 미국 이민 2세로 영시번역에 문학적 깊이가 있으시다는 김현후 선생님을 지인 소개로 만나 천만다행이었다.

우리는 작업실에서 기타반주로 한 단어 한 구절 영어로 부를 때 언어의 억양 그리고 내용적 맥락과 운율이 자연스러운지를 체크하며 수정 보완을 거듭하였다. 또 마지막으로 안중근의 영어식 철자표기가 정확한지 몰라 확인해 보니 생각과 달라 표기를 수정하였다. 이렇게 Dear My Son (Song of Ahn Jung-geun’s mother, Jo Maria) 영어 노래시가 탄생 하였다. 

       Dear my son, oh my son in prison / my son who faces death
       Whether they use a sword or a gun / accept your fate with dignity
       Last night while sewing your burial clothes / I never shed a tear


       For a man, born into this world / there is no greater glory than to die 
       to die fighting for your motherland
       Show them your resolve with your head held high / greet your final 

        moment

Our merciful God up there will take you away
and the day when I follow you
Let’s meet again as birds in the blue sky of our liberated land

Dear my son, oh my son in prison / my son who faces death
Ah! My lovely son My Jung-geun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사형 집행일에 안중근기념사업회의 추모제에서 식전공연으로 이 노래를 부르기로 예정되어 의상까지 준비했는데 3~4일 전에 하지 않은 것으로 통보를 받아 너무나도 아쉬웠다. 결국 유튜브에 올려 공유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지나고 보니 비슷한 시기에 천안함사건이 있어 사실 안중근 의사의 존재는 뒷전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사실 나 자신도 이번에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노래를 만들었기에 이런 관심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죄송한 마음이 크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도 유튜브에서 안중근 어머니의 노래시를 들으며 잠시 나라사랑의 마음으로 울컥 해 질 수 있다면 나의 노래가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앞으로 이 노래를 공연할 때에는 간주부분에서 안중근 의사와 어머니께 큰 절을 두 번 올리기로 마음 먹는다. 


**김동규(예명 주세페김) :

   
▲ 주세페 김동규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팝페라테너, 예술감독, 작곡가, 지휘자, 예술감독)로 아내 김구미(소프라노)와 함께 듀오아임이라는 예명으로 팝페라-크로스오버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www.duoa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