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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꽃이 만발한 삼실호사와 백제 행표스님

[일본이야기 193]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아지사이(수국의 일종)꽃이 만개하여 일본 최고의 꽃동산 절로 알려진 천년고도 교토 이웃도시 우지시(宇治市)의 삼실호사(三室寺, 미무로토지)는 지금 아지사이꽃이 아름답게 꽃동산을 수놓고 있을 것이다.

전국 최고의 꽃절로 유명한 만큼 절 입구에서 비탈진 본당 앞으로 이어진 꽃동산은 이름처럼 전국의 신도와 관광객들로 꽃반 사람반의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삼실호사는 본존인 천수관음상의 효험이 크다고 알려져 있으며 서국33개순례사찰(西三十三箇所) 가운데 10번째 도량으로 많은 일본인이 순례하고 있는 절이다.


삼실호사는 백제계 스님 행표와 관계가 깊다. 행표스님의 아버지 히노구마(檜前, 檜熊)씨는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815년에 만든 고대씨족 족보)》에 따르면 그 출신이 백제계라고 명백히 나와 있는데 “히노구마 스구리(檜前村主)는 백제계 고조(高祖)”라고 표기된 것이 그것이다.



삼실호사는 사전(寺傳)에 따르면 “교토부 우지시 토도 시가다니(京都府 宇治市 道 滋賀谷)에 있는 본산수험(本山修險)의 본사. 산호(山號)는 명성산(明星山), 본존은 천수관음보살로 서기 770년 무렵 우소변견양(右少弁犬養)이 어실호산(御室戶山)속의 바위굴에서 번쩍거리는 금동천수관음상을 가지고 내려와 광인왕에게 전해주니 왕은 나라 대안사(奈良大安寺)의 행표스님에게 절을 지어 금동천수관음을 모시도록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간무왕(桓武天皇)은 백단나무로 만든 관음상을 만들어 대공양을 했으며 삼조왕(三條天皇)은 법화당을 지었고, 백하왕(白河天皇)은 상행당(常行堂)을 보시했다. 이후 삼실호사라는 이름은 세 명의 왕 곧 화산(花山), 삼조(三條), 백하(白河)왕의 이궁(離宮)으로 쓰여 이 절 이름을 삼실호사(三室戶寺)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야기가 좀 어렵겠지만 정리하면 이 절을 발원한 사람은 광인왕(光仁天皇)이고 광인왕은 백제출신 행표스님에게 절을 지어 금동불상을 안치하라고 부탁했으며 이후 일왕들이 줄줄이 참배한 절이라고 요약할수 있다.


우리가 여기서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이 절의 최초 발원자인 광인왕(光仁天皇, 709-782)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인왕은 하필이면 하고 많은  승려 가운데 왜 행표스님을 발탁했을까 궁금해진다. 당시 나라(奈良)에는 행표스님 말고도 많은 고승들이 주석하고 있었다.

이쯤해서 광인왕의 왕비인 백제여인 고야신립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고야신립(高野新笠, 다카노노니이가사, 720-790)은 제49대 왕인 광인왕의 왕비이자 그의 아들 간무왕(桓武天皇, 간무텐노, 737-806)은 50대 천황으로 나라(奈良)에서 수도를 교토로 옮기고 성덕을 베푼 성군(聖君)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당시 백제 행표스님이 머물던 대안사에는 인도에서 온 보리천나(菩提僊那), 당나라 출신 도선(道璿), 베트남 고승 불철(佛哲), 신라고승 심상(審祥), 보조(普照), 영예(榮叡), 영충(永忠), 공해(空海) 등 쟁쟁한 국내외 스님들이 주석하고 있었으나 광인왕이 특별히 행표스님에게 삼실호사를 맡긴 것은 왕비가 백제출신인 까닭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백제 출신 행표스님과 백제여인을 아내로 둔 광인왕의 합작품인 우지시의 삼실호사는 아지사이꽃으로 유명하여 해마다 꽃구경을 나선 일본인들로 바글대지만 정작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남편과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천황으로 만든 백제여인 고야신립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서 교토의 고야신립 무덤을 찾았던 분들은 발걸음을 한번 해도 좋은 곳이다.

돈독한 불교 신자였던 광인왕(49대, 光仁天皇)과 황후 고야신립은 행표스님으로 하여금 삼실호사를 지어 금동천수관음상을 모시는 화려한 공양의식을 올리도록 했을 것이다. 이때 고야신립은 멸망한 조국 백제의 부흥을 위해 부처님께 정성껏 제를 올렸을 것이고 그 곁에는 행표스님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삼실호사를 발원한 광인왕은 72살로 생을 마감하고 그 뒤를 이은 아들 간무왕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절을 수시로 드나들며 불공을 드리면서 아버지의 명복을 빌었다. 그때마다 어머니 고야신립도 동행했을 것이다. 간무왕은 아버지 사후 특별히 백단나무로 만든 관음상을 만들어 공양을 하는 등 삼실호사와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효자였던 간무왕은 왕좌에 오르자마자 백제출신 어머니 고야신립의 지위를 높여주는데 즉위 후 곧바로 황태부인(皇太夫人)으로 추대했으며 어머니가 죽자 황태후(皇太后)로 받들어 교토 천도(794년)와 함께 히라노신사(平野神社)에 모시면서 태황태후(太皇太后)라는 최고의 지위를 추증하기에 이른다.


백제 행표스님의 발자취가 물씬 풍기는 우지시 삼실호사는 행표스님이 주석했던 여러 절 곧 나라 대안사, 오우미 국분사, 오우미 숭복사 가운데서 규모로 보나 참배객으로 보나 이름 난 고찰이다. 이 절은 특히 경내에 심어둔 수만송이 아지사이꽃으로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아지사이가 만개하는 6월 한 달 동안은 인근 역에 임시 셔틀버스를 운행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절이다.

일본 각 지방에서 아줌마 부대가 삼삼오오 꽃구경을 나서고 있는 삼실호사를 돌아 나오면서 사라진 백제가 아니라 부활하는 백제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찾아 가는 길
*주소 :京都府 宇治市 道 滋賀谷21 (0774-21-2067)
*가는 길: 교토에서 케이한 우지선(京阪宇治線)을 타고 미무로토지에키(三室)에서 내려 약 15분 정도 걷는다. 또는 JR케이한우지에키(JR京阪宇治)에서 내려 케이한우지버스(京阪宇治バス)를 타면 바로 미무로토지(三室寺)에 내리는데 버스가 드물게 다닌다.
*아지사이정원 개원(開園) 6월 1일 ~7월15일 ( 오전 8시30분 ~ 오후 16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