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기섭 기자] 최근 《난중일기》를 읽으며, 마치 업무일지를 작성하듯 건조하게 일기를 쓴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에 젖습니다. 우선, 치열한 해전이 벌어지는 시기를 제외하고 7년간 꾸준히 일기를 쓴 성실함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기록이 후세의 사료가 되리라 마음먹지는 않았을 테지만, 자신을 성찰하려는 일관된 의지와 노력은 귀감이 되고도 남습니다.
무엇보다 일기에서 자주 언급하는 단어들은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이야기하다’ ‘의논하다’ ‘대화하다’ ‘논하다’ ‘약속하다’ 등의 단어와 ‘종일 이야기하다’라는 말은 전쟁 한 복판에서 이순신과 동료, 그리고 부하장수들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나누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이 단어들이 갖는 함의를 되새겨보게 합니다. 다시 말해 이 단어들은 이순신 장군의 면면을 확인하는 단서를 제공합니다. 먼저, 이순신은 원래 과묵한 사람이거나 말을 아끼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일기에서 그의 동료와 부하장수들은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이순신은 별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의 말을 평가합니다.
연전연승의 비결은 집단적 지혜 모은 ‘작전회의’
또한 일기에서는 이순신이 머무르는 운주당에 매일같이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얘기하고 의논하고 약속을 받아갑니다. 만약 이순신이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는 성격이거나 자기자랑만 일삼았다면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특히 왜적을 무찌르는 전술과 전략을 짤 때는 ‘논하다’ ‘의논하다’는 말을 빈번히 사용하는데, 이 말은 혼자서 독단적으로 처리하기보다 집단적 지혜를 모으는 데에도 열심이었다는 점을 반증합니다. 해군 충무공리더십센터의 제장명 교수는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45전 45승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로 작전회의를 꼽는데,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됩니다.
▲ 통영 한산도 세병관에 모셔진 이순신장군 영정
집단적 지혜를 모으는 도구로 토론만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토론은 상대의 동의를 얻고 반박을 받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이조차도 의심한다는 점이 토론의 묘미입니다. 물론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울 순 있습니다만 중요한 일일수록 더 필요한 것이 토론입니다.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인들이 중요 정책을 결정할 때 ‘3일 토론’이는 제도를 활용한다고 합니다. 정책을 발의한 사람이나 정책의 잘잘못을 파악하기 위해 3일 동안 토론을 거쳐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토론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현명합니다.
이 현명함을 일찍이 깨닫고 토론을 국정운영에 적극 수용했던 왕이 세종입니다. 세종 16년 신하들은 그를 일러 토론을 즐긴[樂於討論] 군주라고 부릅니다. 얼마나 토론을 자주 하고 많이 실시했으면 그런 말이 나올까 싶습니다만, 실제로 세종실록은 다른 왕들의 실록에 비해 분량이 많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32년이라는 세종의 재임기간도 한 몫 하지만, 그보다는 어전회의에서 토의와 토론한 내용을 상세하게 실록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세종시대의 어전회의의 풍경은 거리낌 없고 직설적이며,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 특색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세종의 노력이 없지 않습니다. 세종은 회의시간 때 ‘절실강직(切實强直)’(세종7년 12월 8일)을 강조합니다. 즉 절실한 의제에 대해서는 물러서지 말고 끝까지 주장을 관철하기를 요구합니다. 그 좋은 예가 세종 1년 1월 11일의 토론 사례입니다. 세종이 스물두 살에 왕위에 오른 지 다섯 달이 지난 뒤의 일입니다.
이 날은 새해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왕과 대신들이 편전에서 정사를 논의하고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졌습니다. 술잔이 여러 순배 도는 동안, 중국 경사에서 황제를 알현하고 돌아온 참찬 김점이 먼저 이야기를 꺼냅니다. 청년 군주를 향해 넌지시 자신의 뜻을 전하는 형식입니다만, 은근히 마음을 떠보는 수작일 수도 있고, 한 수를 가르치고픈 마음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국정을 운영하려면 중국의 황제[今上皇帝]의 법도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임금이 그 말의 진위를 묻기도 전에, 쓴소리를 잘 하는 예조판서 허조가 점잖게 반대를 합니다. “중국의 법은 본받을 것도 있지만 본받지 못할 것도 있습니다.”
이에 김점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황제의 판결을 예로 들면서 주장을 계속합니다. “황제가 직접 죄수를 끌어내어 자세하게 심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하께서도 본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허조는 황제의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해당 업무를 맡아보는 관청을 두는 이유는 각각의 직무를 분담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무시하고 임금이 직접 죄수를 결제하고 크고 작은 국가 일을 가리지 않고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김점도 쉽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온갖 정사를 전하께서 친히 통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를 신하에게 맡기는 것은 부당합니다.” 이어지는 허조의 반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어진 신하를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인재를 얻으면 편안해야 합니다. 또 직임을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있으면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전하께서 대신을 선택하여 육조의 장을 삼은 이상, 책임을 지워 성취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몸소 자잘한 일에 관여하여 신하가 해야 할 일까지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김점은 또다시 중국 황제의 사례를 들면서 주장을 이어갑니다. “중국 황제는 위엄과 용단이 측량할 길이 없을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6부의 장관이 정사를 아뢰다 착오가 생기면, 즉시 금의(錦衣)의 위관(衛官)을 시켜 모자를 벗기고 끌어내립니다.” 허조는 반박 대신 신하를 쓰는 바른 원칙을 제시합니다. “대신을 우대하고 작은 허물을 포용하는 것은 임금의 넓은 도량입니다. 하물며 말 한 마디 잘못했다고 대신을 욕보이고, 조금도 두남두지 않는 것은 부당합니다.”
이에 김점은 또다시 중국황제의 권위를 끌어들여 주장의 정당성을 강조합니다. “시왕(時王)의 제도는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황제는 불교를 존중하고 깊이 믿습니다. 중국의 신하들은 《명칭가곡(名稱歌曲)》을 외우고 읽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중에는 어찌 이단이라고 배척하는 선비가 없겠습니까마는, 다만 황제의 뜻을 본받기 위해서 따릅니다.” 김점의 말은 그렇기 때문에 조선도 이를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합니다. 김점의 강변에 허조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칩니다. “불교를 존중하고 믿는 것은 제왕의 성덕이 아닙니다. 당연히 취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의 토론은 여기서 끝납니다. 흥미로운 것은 임금이 앞에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 이들의 언행입니다. 사실 이 토론주제는 왕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이니, 앞에 앉은 왕으로서는 옳다, 그르다를 논하는 이 자리가 망령되다고 할 수 있고, 심한 경우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종은 토론에 일체 개입하지 않고 끝까지 경청합니다. 그리고는 허조의 손을 들어줍니다. “허조를 옳게 여기고 김점을 그르게 여겼다”는 사관의 말이 이를 증명합니다. 아마도 소신껏 자신의 주장을 펴는 대신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종은 묻기를 좋아하여, 신하들을 토론의 장으로 초대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순신과 세종의 토론 경험에서 배워야
몇 년 전 1973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던 이바르 이에바 교수가 모 대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는 인터뷰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습니다. “(한국의) 교실에서 토론과 논쟁이 활발해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에 동의를 표했습니다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토론과 논쟁이 없다면 노벨상은 생각도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경고는 비단 학교 현장뿐이 아닐 것입니다.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조직과 기업은 물론 창조경제의 기치를 내세운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 말이 전적으로 옳다면 토론이 활발하지 않는 한 노벨상은 고사하고 창조경제 실현도 한계에 부닥칠 것입니다. 우리는 집단적 지혜를 소중히 여긴 이순신과 세종의 토론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 김기섭(세종연구가/한국형리더십교육센터 대표)
세종대왕의 능(영릉)이 있는 여주에서 태어나, 경희대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세종의 의사결정 연구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일선 학교와 교육청에서 교육토론과 고전읽기지도법을 강의하고,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며 한국적 회의와 소통문화, 한국형 토론과 리더십을 개발하고 보급하는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