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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임금과 우애가 돈독했던 월산대군

[고양문화통신 15]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단지 하늘만이 조화(造化)를 만들고 선악(善惡)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늘이 덕(德)을 주셨다면, 마땅히 수명(壽命)도 주셔야 하거늘 덕(德)과 수(壽)가 일치하지 않고, 그 이치 또한 알기가 어렵네. 조선 개국(開國) 이후에 성자(聖子)와 신손(神孫)이 계승하여 왔고 훌륭한 왕족은 많았다.

그러나 월산대군처럼 재주와 덕을 겸비하였더란 말인가? 진실로 대군이었다. 몸가짐이 성결하였다. 근면 검소하였으며, 경적(經籍)과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읽고, 문장(文章))을 지으면、옥을 꿰고 구슬을 이은 듯 솜씨가 대단했다."
 

   
▲ 고양시 신원동의 아담한 사당

이는 월산대군 신도비에 있는 글의 일부이다. 월산대군 이정(李婷1454~1488)은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의 친형으로 두 분의 우애는 남달리 돈독했다고 전해진다. 성종은 예종이 즉위 1년 만인 1467년에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성종 나이 13살 때 일이다. 나이도 어리고 장자도 아닌 자을산군(성종)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실세인 한명회 때문이다.

   
▲ 월산대군 사당 표지석

흔히 왕이 되지 못한 형제들은 역적이 될 가능성이 많아 죽임을 당하곤 했는데 월산대군 역시 자신의 삶을 정치와는 먼 방향으로 돌리려고 노력했다. 월산대군은 그의 호 풍월정(風月亭)이 말해주듯 풍류객으로 평생을 시와 그림을 그리면서 살았는데 성격이 차분했다고 전해진다. 문장에도 뛰어나 동문선(東文選)에 실릴 정도였다. 사당이 자리한 이곳 신원동 일대는 월산대군이 별장을 짓고 머물던 곳이며 성종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 월산대군 사당 전경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는 월산대군이 지은 강호한정가(江湖閑情歌)로 왕위 서열 1위 자리를 동생에게 빼앗기고 외로운 심경을 노래 한 것이다. 35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 월산대군의 사당은 "문화재자료 79"로 지정되어 있다. 

처음 지은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숙종 19년(1693) 이전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지금 있는 건물은 정조 10년(1786)에 고쳐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위치: 경기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42 번지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