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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비구니 스님이 명성을 떨친 나라(奈良) 흥복사

[그린경제/ 얼레빗 = 이한꽃 기자] 13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나라의 흥복사(興福寺, 고후쿠지)는 나라현 나라시 노보리 오오지쵸에(奈良県奈良市登大路町)에 있는 유서깊은 절이다. 경내를 입장권 없이 자유롭게 드나 들 수 있어 나라시내에 묵는 경우 저녁식사를 마치고 산책 겸 거닐어도 좋은 곳이다. 경내의 5중탑 주변에는 동대사 앞뜰에 노니던 사슴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슴의 무리를 볼 수 있고 조명을 밝힌 5중탑은 고색창연한 그 자태를 더욱 아름답게 드리워준다.

 법상종의 대본산인 흥복사는 나라시대 권력을 쥐고 흔든 후지와라 씨 집안의 보리사(氏寺)로 한국계 스님들이 주석하던 유서 깊은 절이다. 흥복사는 고도 나라의 문화재로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록된 절이기도 하다.

   
▲ 야간 조명을 한 5중탑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탑이다

 흥복사는 후지와라노가마타리(藤原鎌足)의 치유를 위해 세운 절로 후지와라 씨는 천지왕(天智天皇)왕의 오른팔로 조정에서 큰 역할 하던 호족인데 백제 출신 비구니인 법명(法明)스님과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12세기에 완성된 일본 최대 설화집인 《곤쟈쿠이야기》12의 3화에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이 절에서는 해마다 유마회가 전해오는데 유마회는 후지와라 씨의 제삿날 행해오는 풍습이다. 이 법회의 기원은 후지와라 씨가 중병에 걸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약이 무효한 후지와라 씨는 백제에서 온 비구니 법명 스님을 초대하여 백제국에도 자신과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법명 스님이 백제에도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하자 후지와라 씨는 그 병을 어떻게 해서 치료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법명 스님은 이 병은 약으로도 안 되고 의사도 치료 할 수 없는 병으로 오로지 한 가지 방법은 유마거사 상을 만들어 봉안한 뒤 유마경을 독송하면 나을 수 있다고 말해준다. 이에 후지와라 씨는 즉시 법명 스님 말대로 했더니 중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에 후지와라 씨는 크게 기뻐하며 백제 스님을 극진히 모셨다”는 이야기이다.

   
▲ 동금당 안의 국보급 불상들

   당시 천지왕의 오른팔이던 후지와라 씨의 중병을 놓고 조정에서 얼마나 큰 근심걱정을 했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하고 많은 승려 가운데 백제의 비구니 스님 법명이 뽑힌 것도 흥미로운 이야기일뿐더러 더 흥미로운 것은 후지와라 씨의 후손 이야기이다. 《곤쟈쿠이야기》를 더 살펴보자.

 “백제 비구니 스님 법명의 기도로 병이 씻은 듯이 치유된 후지와라 씨는 법명스님을 극진히 모시면서 유마회를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하다가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가 죽자 유마회는 그만 단절 되어 버렸다. 후지와라 씨의 아들은 아직 어렸으므로 유마회를 계속해서 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이 커서 아버지에 버금가는 지위에 오른 어느날 그만 손이 말을 듣지 않는 병에 걸렸다. 약을 써도 차도가 없자 점장이 한테 물으니 유마회를 중단한 탓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이에 다시 유마회를 재개하려고 뛰어난 승려를 찾은 결과 신라출신으로 당 유학승인 관지법사(觀智法師)가 천거되었다. 후지와라 씨의 아들은 관지법사를 정중히 초대하여 흥복사에서 유마회를 개최하게 되는데 이 날은 관내의 승려들과 학자들을 대거 초청하여 성대한 의식을 치루고 참석자들에게 후한 보시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국보관에 전시 중인 역동감 넘치는 금강역사상

 《곤쟈쿠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 만들어진 설화집으로 흥복사에서 거대하게 행한 유마회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이 유마회를 주도한 스님이 백제의 비구니 스님 법명과 신라 스님 관지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한국계 스님이 일본 절에서 대활약 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은 백제 비구니 스님 법명이 후지와라 씨를 위해 유마경을 독송한 절은 지금 흥복사의 전신인 672년에 세운 나라현 다케치군 우마사카(奈良県高市郡厩坂)에 있던 우마사카절(厩坂寺)이다. 이후 우마사카절은 710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흥복사로 이름을 고쳤다. 따라서 지금의 흥복사는 법명스님의 발자취는 찾을 수 없다. 하지만 후지와라 씨의 아들인 후지와라후히토(藤原不比等)는 훗날 지금의 흥복사에서 신라 스님 관지를 초청하여 유마회를 거행하게 되므로  이곳은 한국계 승려가 활약하던 곳으로 그 발자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010년에 창건 1300년을 맞이하는 흥복사는 국보 45개, 중요문화재 45개, 지정문화재 3개 외에도 많은 보물을 간직한 나라의 유서 깊은 절로 특히 눈여겨 볼 곳은 동금당(東金堂)이다. 금당이라 하면 한국의 대웅전에 속하는 것으로 이 건물은 여러 번 소실되어 현재 모습은 1415년에 재건된 건물이다. 동금당 안에는 1207년 작품으로 알려진 국보 목조십이신장입상(木造十二神将立像)이 있는데 약사여래를 지키는 12신상의 개성 있는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 참배객들이 줄을 잇는 남원당

 또한 5중탑(五重塔)은 1426년에 재건된 것으로 50.8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목조탑으로 동사(東寺)의 탑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탑으로 6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5중탑에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명치정부 때의 폐불훼석(廃仏毀釈)사건이다. 폐불훼석이란 말 그대로 불교를 탄압하는 정책으로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을 기억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명치 정부 때 흥복사는 절 이름자체를 사용하지 못하게 탄압받았으며 경내의 전각들은 모두 몰수 상태로 특히 5중탑과 3중탑은 목재이므로 땔감용으로 팔려나갔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에 의해 불쏘시개로 쓰일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이후 명치유신의 불교탄압 광풍이 몰아친 뒤 14년이 지난 1882년에 이르러 흥복사란 절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절 소유권도 다시 흥복사에 넘겨주어 폐사 직전의 절을 부흥하게 된 것이다.

 흥복사 안에는 여러 전각들이 있는데 이 전각은 창건 년대가 각기 다르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은 아담한 8각원당(八角円堂)모양의 북원당(北円堂)으로 국보인 이 전각은 721년에 세워졌으며 흥복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북원당에 이어 남원당(南円堂)은 813년이 지어진 건물로 서국33개 순례장소로 많은 참배객들이 찾는 곳이다.

팔각당 건물로는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마지막으로 들러보면 좋은 곳은 국보관으로 이곳에는 흥복사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국보급 불상조각을 비롯하여 회화, 공예품, 고고학 자료, 서적 등 나라시대의 뛰어난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 할 수 있다.

 13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흥복사는 나라지방을 찾는 사람들은 한번쯤 들러 볼만한 큰 절이다. 흥복사 경내를 걸으며 이곳에 초청되어 유마회를 주관하던 신라 스님 관지와 흥복사의 전신인 우마사카절에서 조정의 실력자 후지와라 씨의 중병을 낫게한 비구니 스님 법명을 떠올려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일본 최대의 설화집을 통해 두 명의 한국계 스님의 이야기는 오늘도 흥복사의 유래와 함께 전해지고 있으니 당대 고승으로 꼽아도 손색없는 분들이었음을 새삼 되새겨 보게 된다.

 

★찾아 가는 길

 *주소: 奈良県奈良市登大路町48 (興福寺, 고후쿠지)

*가는 길: 긴테츠(近鉄) 나라에키(奈良駅)에서 5분 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