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손현목 작가]
▲ <가시리 인출(인쇄)본> |
애절하고 간결한 가사로 이별가의 으뜸으로 손꼽히는 서정시 ‘가시리’는 작자와 창작 연대를 알 수 없으나, 가풍(歌風)이나 시정(詩情)으로 보아 고려가요로 추정된다. 현재 중․고등학교에서는 가시리를 고려가요(속요)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관심거리는 아마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것이리라. 그래서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는 항상 함께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사랑과 이별은 항상 기다림이라는 상황과 이어져 있다. 우리 시가문학 중에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기다림의 정서를 보여주는 작품은 많다.
몇 가지만 들어보면 ‘어져 내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다냐/ 이시라 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야/ 보내고 그리 정은 나도 몰라 노라.’고 한 황진이의 시조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고 하여 이별의 한과 기다림의 정서를 음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작으로 소월의 ‘진달래꽃’이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노래로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로 등록된 ‘아리랑’에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고 하여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애달파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이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이는 우리 문학 작품 중에서도 사랑과 이별 그리고 기다림의 정서를 가장 잘 형상화한 작품으로 ‘가시리’를 꼽는다. 가시리의 전문을 다시 한 번 보자.
작가의 말
우리의 수많은 문학 작품 가운데 하필 ‘가시리’의 목판(책판)과 인출(인쇄) 작업을 한 까닭이 있다. 첫째, 우리 글자의 원형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우리 한글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가시리의 글꼴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늘 사용하는 컴퓨터의 글꼴 중 목판체와 거의 닮았다. 가시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쇄본으로 전해지는 많은 작품들이 그렇다. 다음에 보여 드릴 ‘청산별곡’도 여기에 해당한다. 아마도 목판체 글꼴은 이런 자료를 보고 개발하였을 것이다.
둘째, 가시리는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이별가이다. 1회성 만남과 사랑이 넘쳐나는 현대인들에게 우리 선조들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은근하고 속 깊은 태도를 되새겨 보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한 마디로 우리글의 아름다움과 사랑과 이별 그리고 기다림에 대한 현대인의 태도를 되돌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아래 사진의 순서대로 이다. 먼저 영인본을 스캔해서 포토샾을 해서 일그러진 부분을 바로 잡았다. 그 후에 원본 보다 1.5배 정도 확대해서 뒤집어 새김질(반각)을 했다. 확대한 것은 큼직큼직하게 해서 시원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이다. 다시 정리하면 ‘가시리 영인(판하본)’, 포토샵으로 ‘가시리 영인본 뒤집기’, ‘가시리 뒤집어 새김질하기’(반각), ‘가시리 인출(인쇄)하기’의 순으로 한다. 글쓴이의 목판의 작업 과정은 대부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전통적인 목판 제작 과정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먼저 판각(목판에 하는 새김질)할 나무가 준비되면 판하본(목판에 새김질할 글)을 뒤집어 붙이고 그 종이(판하본)에 들기름을 바른다. 기름을 바르는 이유는 종이가 투명해 져야 뒷면의 글자가 선명해 지고 새김질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이다. 게다가 나무도 부드러워져서 새김질도 잘 된다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한국국학진흥원 유고문화박물관에서 펴낸 ‘나무에 새긴 지식정보 목판(2008년) 등 여러 책에서 찾아 볼 수도 있다.
이쯤에서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 있다. 어느 분야이든 간에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 점이 많다. 흔히 전통서각이라고 부르는 목판각도 예외가 아니다. 목판각에 대한 이론과 학문적 체계가 제대로 서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사용되고 있는 목판 관련 용어 중에는 심지어 국어사전에 나와 있지 않는 것이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어색하거나 너무 어려운 말, 특히 한자어가 많다는 점에 대한 양해를 구한다.
▲ <가시리 영인본> - 왼쪽, <가시리 영인본 포토샵>
▲ <가시리 뒤집어 새기기(반각)> - 왼쪽, <가시리 인출(인쇄)본>
‘가시리’ 작품 크기: 테두리를 중심으로 해서 20,5㎝×31.5㎝
다음에 소개할 작품은 글쓴이가 새김질하여 만든 목판과 인출(인쇄)한 고려가요 ‘청산별곡’이다. 여러분들의 아름다운 봄날을 간절히 바라며......
2014년 3월 16일 늦은 오후
손현목 쓰다.
(편집자 설명)이 글을 쓰고 가시리를 새김질하고 인출한 사람 손현목의 호는 남천(南川). 출생지는 경북 경산이다. 현재 경북 안동에 있는 북후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새김질 경력은 약 10여 년이 지났으며, 한 10년 동안은 동호회 활동(회원전 다수)과 새김질을 가르치는 활동만 하다가, 최근 한국각자협회 등에서 실시하는 공모전에 특선 다수가 있다. 새김질은 주로 전통서각 중에서 목판각에 관심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