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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차마고도 여행기

라면맨, 고산증으로 라면을 먹지 못하다

양승국 변호사의 차마고도 여행기 11. 열한번째 날(시가체 → 팅그리)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시가체에는 타쉬룸포 사원이 있다. 포탈라궁이 달라이 라마의 상징이라면, 타쉬룸포 사원은 라마교의 제2의 지도자인 판첸 라마의 상징이라 하겠다. 타쉬룸포 사원 뒤의 헐벗은 니세리산은 타르초와 룽다로 길게 덮여있다. 티베트의 어디를 가나 타르초와 룽다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여기처럼 산꼭대기뿐만 아니라 아예 산 전체를 덮은 곳은 없을 것 같다. 타쉬룸포 사원은 단순히 사원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승려들이 거주 공간까지 하여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전성기 때에는 승려가 수 천 명이었다는데, 지금은 관리하는 승려들만 남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에도 조캉사원처럼 경배 드리려는 사람들이 어느 건물 앞에 길게 늘어서 있다. 이번에는 우리도 기다림의 줄에 합류한다. 이곳에는 판첸라마의 영탑들이 모셔지고 있는데, 5세부터 9세까지의 영탑은 합장탑이다. 원래 각각으로 모셔지던 것이 문화혁명 때 파괴된 것. 문화혁명의 광기는 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구나.


   
▲ 타쉬룸포 사원

   
▲ 사원에 경배드리러 온 신자들이 길게 줄을 선 사진

   
▲ 타쉬룸포 사원 경내 사진

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에서 오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지만, 11대 판첸 라마인 갼차인 노르부(Gyancain Norbu)는 현재 중국에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티베트인들이 옹립한 판첸 라마 게둔 쵸키 니마(Gedhun Chokyi Nyima)는 감옥에 가둬 두고 있는 체다. 사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입구에 나와 일행들을 기다리는데, 옆에 주차된 차가 나의 눈길을 끈다. 차의 문에는 法院이라고 크게 써놓았다. 법원의 공용차인가? 그런데 차 위에는 경광등이 달려있다. 법원차에 경광등이 달려있을 필요가 있을까? 법원의 기능이 우리나라와는 다른 모양이구나. 

이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마을 팅그리로 간다. 시가체를 벗어나기 전 슈퍼에 들렀는데, 내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신라면! ‘아니! 이런 깊고 깊은 오지의 티베트에서 우리나라의 신라면을 볼 수 있다니! 그동안 내 입에 맞지 않은 중국 음식을 억지로 먹고 여행을 하느라 내 입이 고생했는데, 신라면을 보자마자 당장 내 입은 군침을 질질 흘린다. 당장 오늘밤의 성찬을 위하여 신라면을 샀다. ! 그런데 나는 그날 밤 신라면을 한 젓가락 뜨다 말았다. 

시가체에서 팅그리에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5,248m의 가조납산(嘉措拉山)을 넘어야 하는데, 이날 나는 이 고개를 넘다가 그만 고산증에 걸리고 말았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라면을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심정이란... 사실 예전에 중동 여행할 때 나에게 붙여진 별명이 라면맨이었다. 그때도 입에 맞지 않는 중동음식에 고생하다가 요르단 가이드가 끓여준 라면을 6그릇이나 먹고 나니, 같이 여행한 일행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 바로 라면맨. 그때의 일행들은 요즈음도 나만 보면 라면맨이다. 그런 라면맨도 고산증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만 것이다. 


   
▲ 필자가 고산증에 걸린 가조납산 고개, 여기도 역시 옷감에 불경을 적어놓은 타르초와 룽다가 잔뜩 걸려 있다.

   
▲ 팅그리 가는 길에 만난 민둥산 - 나무가 없으니 비가 와서 침식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보인다.

시가체를 벗어나 팅그리로 가는 길은 시가체까지 오는 길보다 더 황량한 느낌이다. 산은 자신의 근육질 몸매를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지층마다의 알록달록한 모습이나 압력을 받아 지층이 구부러진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비가 만들어낸 깊은 고랑이 이리 저리 패여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이렇게 패인 흙이 좁은 골을 따라 흘러내려오다가 갑자기 좁은 골이 열리며 부채꼴 모양으로 퇴적되어 있는 모습도 보이는 것이 살아있는 지질 교과서라고 하겠다. 차가 가조납산 고개 위에 오니 해발 5,248m라는 붉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5,000m 고지를 넘었구나. 고소 적응도 없이 곧바로 차로 5,248m까지 올라왔으니 고산증 예방을 위해서는 빨리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처음으로 오른 5,248m 고개를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사진 찍기 바쁘다. 정 사진 찍고 싶어도 얼른 몇 장 찍고 빨리 내려갔어야 하는데, 여기서 어슬렁거리다가 끝내 나는 덜컥 고산증세가 오며 그 먹고 싶었던 신라면을 먹지 못한 것이다. 고개를 넘어와 도착한 팅그리도 4,400m의 마을이다. 나는 저녁도 거부하고 곧장 침대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