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낙중)은 10월 6일(일) 낮 2시부터 박물관 강당에서 스물다섯 번째 ‘책사람’ 강연을 진행한다. ‘책사람’은 책을 대출하고 열람하듯이 사람의 지식과 지혜를 강연 형식으로 열람하는 국립한글박물관의 정기 프로그램이다. 이번 책사람은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5주년과 제573돌 한글날 기념 강연으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김주원 교수가 진행한다. 김주원 교수는 훈민정음학회 초대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훈민정음》, 《알기 쉽게 풀어 쓴 훈민정음》(공저) 등의 책을 펴냈다. 이번 강연에서는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1446년 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이하 한글)을 세상에 반포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한문으로 적은 책이 바로 《훈민정음》(해례본)이다. 이 책을 통해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 창제자, 창제 원리 등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서문〉과 〈예의〉, 집현전 학자들의 〈해례〉, 정인지의 〈서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예의〉에서는 한글의 발음과 운용 방식을 〈해례〉에서는 한글의 제자 원리 및 실제 예시를 보여준다. 곧 세종대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추강이 적막어룡냉하니 인재서풍중선루를 매화만국청모적이요 도죽잔년수백구를...“ 무대에서는 젊은 예인 유지선이 ‘관산융마’를 잔잔히 소리하고 있다. 서도소리에서는 유일한 시창(詩唱) ‘관산융마’, 부르기가 난해하다는 소리다. 동정호 악양루에 오른 두보를 상상하며 두보의 입장에서 전란에 휩싸인 나라의 불행과 두보의 불우한 처지, 그리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고 있는 수준 높은 소리를 류지선은 온몸으로 토해내고 있다. 부르기도 쉽지 않지만 흔히 들을 수도 없는 ‘관산융마’에 객석은 숨을 죽인다. 어제 9월 27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종로구 ‘JCC아트센터’에서는 김지원, 장효선, 김유리, 류지선, 전소현, 조현정, 박지현, 김초아의 “서도소리 젊은 예인전”이 열렸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이 애지중지 키워온 제자들의 무대를 만들어준 것이다. 작은 극장이긴 하지만 개석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청중들의 수준도 일품이다. 물론 공연자들이 혼신을 다해 부르기도 하지만 여느 공연장과 달리 숨소리도 삼가는 청중들의 몰입도는 다른 공연장과는 견주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다. 더구나 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해마다 광주에서는 8월 29일 국치일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주최로 그 어느 곳에서도 생각 못 한 친일ㆍ항일음악회를 열고 있습니다. 올해는 광주광역시 남구가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주관하는 8월 15일, “일 역사왜곡ㆍ경제보복” 항일 음악회로 열렸습니다. 이 음악회는 지난 1910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의 치욕적인 역사를 기억하고,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날에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만행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90여 분간 진행된 이 음악회에서는 우리가 익숙하게 불러왔던 동요와 대중가요, 가곡 가운데 친일 음악인이 만든 노래의 실태를 확인한 것은 물론 민족정신을 실천한 음악가들이 만든 노래를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일음악회에서 확인되는 단골 노래는 일제에 부역한 정황이 알려진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는 조두남의 ‘선구자’, 홍난파의 ‘희망의 아침’, 현제명의 ‘희망의 나라로’ 등입니다. 나라 행사 때마다 모두 함께 부르는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가 일제에 부역한 것은 물론 친나치 행적도 있다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 말기 즈음 청나라는 양무운동(1861~1894), 일본은 명치유신(1853~1877)을 펼치면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화를 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동안 조선은 무엇을 했을까요? 대부분 사람들은 이때 문을 꽁꽁 닫아놓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탓에 근대화의 기회를 놓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나름 고종 때 청나라에는 ‘영선사(領選使)’를 보내고, 일본에는 수신사(修信使)와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 미국에 보빙사(報聘使)를 보내는 등 노력을 한 흔적은 있습니다. 사실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 친정체제가 되자 고종과 온건개화파의 관심은 신무기를 비롯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있었지요. 1879년(고종 16) 8월 영중추부사 이유원이 청나라로 가는 사신 편에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에게 신식 무기의 학습 내지 수입 가능성을 타진했는데 이에 무기제조법을 배우고 군사훈련도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고종이 유학생 파견을 서두르자 일부 대신들이 "도리어 오랑캐를 불러들이는 매개가 된다."는 반대상소를 올렸으며, 일본도 시비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고종은 청ㆍ일 사이에 중립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13도 유생들이 조약 철회를 상소하고,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 放聲大哭)’을 썼으며, 참정ㆍ외무대신을 지낸 민영환ㆍ원임의정대신 조병세ㆍ 이조참판을 지낸 홍만식 등은 자결했지요. 이렇게 민심이 가마솥 끓듯 펄펄 끓을 때 청년장교 신규식(申圭植, 1879.1.13. ~ 1922.9.25)은 지방군대와 연계, 대일(對日)항전을 계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신 신규식은 계동ㆍ가회동ㆍ운니동 등의 솟을 대문들을 골라 몽둥이로 후려치며 미친 듯 소리 질렀습니다. “을사오적들은 나오너라!” 그러나 자신이 한낱 미약한 존재였음을 확인했을 뿐이었고 이에 음독자살을 하려했으나 문을 부수고 들어온 가족들에 의해 겨우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때의 독약 후유증으로 애꾸가 되었는데 거울을 들여다 본 신규식은 냉소를 지으며, “애꾸, 그렇다. 이 애꾸눈으로 왜놈들을 흘겨보기로 하자. 어찌 나 한 사람만의 상처이겠는가. 우리 민족의 비극적 상징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청년 신규식은 흘겨볼 예(睨)자, 볼 관(觀)자, ‘예관(睨觀)’으로 호를 지어 죽을 때까지 사용했습니다. 이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을사늑약(乙巳條約)은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압하여 맺은 것으로,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조약입니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명목상으로는 일본의 보호국이나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성판윤ㆍ참정대신(參政大臣)을 지냈던 한규설은 이 을사늑약을 끝까지 반대해 파면되었지요. 그 뒤 일제가 준 귀족의 작위까지 거부한 채 집에 묻혀 살았습니다. 그 한규설이 1890년에 지어 살았던 집은 중구 장교동에 있었는데 그 집터는 현재 중구문화원과 을지로2가 파출소가 들어서 있지요. 그 한규설의 집은 도시개발에 따라 철거 위험에 있던 것을 국민대학교가 이 학교 후문 건너편으로 옮겼습니다. 아름다운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한규설의 이 고택은 솟을대문ㆍ안채ㆍ사랑채ㆍ별채ㆍ행랑채ㆍ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쪽으로는 녹야정ㆍ초당도 함께 있는 원형이 잘 살아있는 아름다운 한옥입니다. 이 고택은 새롭게 <명원민속관>이란 이름을 붙였고, 2013년부터 전통문화 풍류를 체험하는 마당으로 재탄생시켜 “풍류나누기 명인시리즈”를 열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9일 이곳에선 국가문형문화재 제29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 이 달 균 눈 내린 날 절집은 이리 고요하다 흩날리는 눈발에 독경소리 그치고 멀리서 장부를 닮은 탑이 하나 걸어온다 장터에서 해장술 서너 잔 걸쳤는지 옥개석에 쌓인 눈을 훌훌 털어내더니 눈 속에 발을 파묻고 이내 탑이 되었다 눈 오는 날엔 석탑도 술 한 잔 생각이 나지 않을까. 스님 몰래 절집을 나와 읍내 장터에서 뜨끈한 국물에 막걸리 몇 사발, 시큼한 총각김치 씹으며 쓰윽 입을 닦는다. 그리곤 다시 돌아와 언제 그랬냐는 듯 눈 쌓인 절마당에서 수행자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상상. 죽장리 오층석탑은 이런 사내를 닮았다. 키 크고 훤칠한데 약간은 치기 어린 모습의 탑신이 그런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내 맘이 꼭 그래서인지 퍼뜩 절 구경 끝내고 뜨끈한 국물에 낮술 한잔 걸쳤다. (시인 이달균) ▶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키가 10m인 전탑형의 5층석탑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 바닥돌에서 머리장식에 이르기까지 100여 개가 넘는 석재로 짜여져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우고 그 위로 머리장식을 얹었다. 웅장하고 세련된 남북국시대(통일신라) 석탑으로 우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고 서서히 음(陰)의 기운이 커진다는 24절기의 16째 ‘추분(秋分)’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추분을 그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옛 기록을 보면 한결같이 제사를 지낼 만큼 신성시 했던 날이지요. 특히 춘분과 추분 뒤에는 춘사일(春社日), 추사일(秋社日)이라고 해서 농사 시작 때는 농사가 잘되라는 마음으로 가을걷이 때는 오곡의 거둠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정종실록》 1년(1399) 3월 1일 기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중추원 부사 구성우의 처 유 씨는 계집종 영생을 죽이는 등 악행을 저질러 사헌부에서 유 씨를 죽이기를 청하였다. 이에 임금이 ‘범한 죄가 크기는 하지만, 봄ㆍ여름은 만물이 생장하는 때라, 옛 법에도 죽이는 것을 꺼렸으니, 추분(秋分) 뒤를 기다려서 단죄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했다.” 추분 때를 신성시했다는 얘기입니다. 추분은 해가 북에서 남으로 적도를 통과하는 때여서 낮밤의 길이가 같아지는데 이는 더함도 덜함도 없는 중용(中庸)을 뜻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중용을 지키기가 쉽지 않지만 중용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낙중)은 제573돌 한글날을 맞이하여 한글가족축제를 10월 5일(토)부터 10월 9일(수)까지 5일 동안 열며, 이와 더불어 문화가 있는 날, 토요 문화행사 등 10월 문화행사도 아래와 같이 연다. <박물관 정기 문화행사> 문화가 있는 날 공연 <신나는 우리의 전통, 우리의 탈춤> 10월 문화가 있는 날에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전통탈춤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강령탈춤 보존회의 <신나는 우리의 전통, 우리의 탈춤>은 민족 고유의 얼과 혼이 담겨있는 탈춤의 특색을 살려 재해석한 작품이다. 강령탈춤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황해도 지방의 탈춤으로 해서지방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대표적인 탈춤이며 동작이 활발하고 우아하다. 이번 공연은 삶의 희로애락을 탈춤으로 풀어보는 공연으로 춤과 음악을 통해 관객과 소통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탈춤 중 하나인 강령탈춤 공연을 통해 전통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공연은 10월 30일(수) 낮 2시, 4시에 강당에서 진행되며 5갈 이상 관람 가능하다. 토요 문화행사 <우리 함께 가자> 10월 둘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래된 유물들은 찢기고 좀이 슬고 온전치 못한 것들이 많다. 이를 박물관에서는 어떻게 복원하여 전시할까? 이에 대해 그 대강의 방법을 가늠해볼 수 있는 전시가 있다. 바로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지병목)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이 나라밖에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소장한 한국유물 가운데 국내에 들여와 보존처리를 마친 유물들을 한국관객들에게 공개하는 ‘우리 손에서 되살아난 옛 그림’ 전시를 오는 11일부터 10월 13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나라밖 문화재 소장기관 활용 지원 사업의 하나로 국내에 들어와 보존처리를 마친 뒤 다시 나라밖에 있는 소장처로 돌아가기 전에 복원된 모습을 잠시 선보이는 자리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미국의 클리블랜드미술관과 필라델피아미술관,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영국의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독일의 로텐바움박물관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 등 4개국 6개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회화와 자수 병풍 등 모두 12점으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국내로 들여와 2017년부터 보존ㆍ복원을 지원해왔다. 이 가운데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The Cleveland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