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충남 보은의 동광초등학교가 지난 5월 보은군 수한면에 있는 보은대추한과 만들기 체험장에서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통한과 만들기 체험을 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학생들은 앞치마를 입은 뒤 개인 틀 위에 바삭한 쌀과 조청을 섞은 덩어리를 골고루 펴고 눌러서 틀에 맞게 채운 후 밀대로 납작하게 밀어 굳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과를 떼어 식히는 과정으로 한과를 만들며 즐거워했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우리 겨레의 큰 명절 한가위가 다가옵니다. 그래서 명절 선물로 한과가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과는 흔히 유밀과(油蜜菓)를 뜻하는데 유밀과는 한과 가운데 가장 사치스럽고 귀한 것으로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튀긴 다음 다시 꿀을 바르고 계핏가루를 뿌린 과자입니다. 그런데 유밀과는 각종 과일이나 생강ㆍ연근ㆍ당근ㆍ인삼 따위를 꿀이나 설탕에 재거나 조려서 만든 ‘정과(正果)’, 차를 마실 때 곁들이는 ‘다식(茶食)’, 밤ㆍ대추와 같은 과실을 꿀로 달게 하여 만든 ‘숙실과(熟實果)’, 신맛이 나는 앵두ㆍ모과ㆍ살구 따위의 과육에 꿀을 넣고 졸여서 굳힌 ‘과편(果片)’ 따위를 포함한 전통과자를 함께 말합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은은한 달빛 아래 한 선비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거문고를 탄다. 달빛이 거문고를 타는지 거문고가 달빛에 빠졌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바로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로 잘 알려진 이경윤(李慶胤, 1545~1611)의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 풍경이다. 달빛은 아니고 조명 불빛이었지만 어제 9월 1일 낮 3시에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극장에서는 제16회 이선희 거문고 독주회가 <월하탄금도>를 연상케 하는 순간을 그려주었다. 연주회는 맨 먼저 이선희 연주가가 거문고 앙상블 ‘라미’ 이진경, 차은선, 이아람, 고지영, 김희영 단원과 함께 이아로 작곡가의 “균열”로 막을 연다. ‘라미’의 한층 성숙해진 연주에 청중들은 아낌없는 손뼉을 친다. 이어서 이선희의 독주로 제럴드 레드몬드(Jared Redmond) 작곡가의 여백(餘白, he Space Between)이 이어진다. 음악은 작곡가의 의도대로 청중들에게 음악 사이사이 여백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다음 연주는 이선희 작곡의 “거문고와 타악의 대화 ‘부르다’가 타악 연주가 최영진을 만나 신명을 부른다. 경기도당굿 장단을 바탕으로 한 이 곡은 역동적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의령보천사터 삼층석탑 - 이 달 균 절터에 흩어진 기와는 말한다 이름은 숭엄사(嵩嚴寺), 봉림산문(鳳林山門)의 말사(末寺) 해질녘 고려 노을이 산 그림자 끌고 온다 때로는 기와 하나가 역사책 한 권이 되기도 한다. 이 폐사지의 경우, 기왓장 하나로 단절된 역사를 이었다. 2018년 의령군에서는 석탑 사지를 조사했는데, 흩어져 있는 기와에서 축조연대와 절 이름을 알려주는 글씨를 발견한다. 그 내용은 ‘통화 29년 숭엄사(統和卄九年嵩嚴寺)’, ‘봉림하(鳳林下)’로 되어 있다. 통화는 요나라(거란) 성종(983~1011)때의 연호이며, 통화 29년은 고려 현종(1010~1031) 2년(1011)에 해당하기에 늦어도 고려 현종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발굴단은 이때 비로소 보았으나 탑은 늘 고려의 별들과 놀고 있었다.(시인 이달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 4월 3일 문화재청은 ‘전통어로방식(고기잡이) - 어살(漁箭)’을 국가무형문화재 제138-1호로 지정했습니다. 이 ‘전통고기잡이 - 어살(漁箭)’은 어촌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어업문화로서, 대나무 발 등을 치거나 돌을 쌓아서 밀물 때 몰려들었다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는 물고기를 잡는 고기잡이 도구[漁具] 또는 고기잡이 방법을 말합니다. ‘어살(漁箭)’은 《삼국사기》, 《고려사》 등의 고려 시대 문헌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단원 김홍도(金弘道)의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보물 제527호)에 실린 ‘고기잡이’에 나타나 있듯이, ‘어살’은 조선 시대까지 연안어업(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서 하는 고기잡이)을 대표하였지요. 그러나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어살’의 사례로는 남해군 지족해협과 사천시 마도ㆍ저도 같은 곳에 설치된 죽방렴을 이용한 멸치잡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 ‘전통고기잡이 – 어살(漁箭)’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던 것은 자연과 생태환경에 대한 이해, 물고기의 습성, 계절과 물때를 살펴 물고기를 잡는 어민들의 경험에서 나온 지식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
[우리문화신문=한국인터넷기자협회 공동취재단] 김철관 인터넷기지협회장이 월드미스유니버시티(WMU) 한국대회 참가자 대상으로 ‘언론과 사회적 책임’이란 주제의 미디어포럼 강연에서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언론인의 사회적 책임이 매우 중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철관 한국인터넷기자협회장은 30일 오후 4시 충남 금산군 세븐레포츠 리조트에서 열린 ‘제32회 월드미스유니버시티(세계평화봉사사절단) 한국대회 2019’에서, 좌장을 맡아 ‘미디어포럼’에 이어 ‘환경포럼’을 진행했다. 먼저 ‘미디어포럼’에서 ‘인터넷언론과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강연을 한 김철관 회장은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권”이라며 “어쩌다보면 인권침해 등 오보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 오보가 확인되면 이를 즉각 사과하고 스스로 정정 보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을 두고 사회적 공기, 사회적 목탁, 감시견, 빛과 소금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우리 언론이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며 “현재 가짜뉴스, 기레기 등의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언론인들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언론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인권”이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 8월 31일 밤 8시,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연희마당에서는 밴드 ‘공양고주파’의 “우면산 별밤축제” 7차 공연이 열렸다. 최우영의 베이스 기타와 장도혁의 타악(퍼커션), 윤은화의 양금이 함께하는 파격적인 구성으로 동서양 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동양고주파’의 ‘틈’ 공연이 무대에 오른 것이다. 연주는 ‘파도’, ‘그때와 지금’, ‘노니’, ‘은하’ 등 실험적인 음악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문세의 ‘광화문연가’가 시작되자 귀에 익숙한 음악에 사람들은 들썩이고 환호의 도가니가 된다. 조금 음악이 어렵게 느껴졌던 것도 서서히 녹아들어 갔다. 그리고는 기타 정종하, 피리ㆍ생황ㆍ태평소의 천성대가 함께 하면서 공연장의 열기는 한층 무르익는다. 그렇게 진행되던 연주는 경기민요 소리꾼 여성룡이 등장하여 민요 ‘사설난봉가’를 부르면서 온통 소용돌이가 생긴다. 그렇지 않아도 ‘사설난봉가’는 해학적 사설로 분위기를 띄우는데 ‘동양고주파’ 연주에 맞춘 변형 창법은 청중을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특히 어린 청중들은 그저 앉아서 듣지 못한다. 손짓으로 타악기를 연주하는 흉내를 내보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마당을 깡충깡충 뛰어 다니기도 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판소리 “흥부가” 가운데 “화초장 타령”을 보면 놀부가 흥부네 집에 가서 화려한 모습의 화초장을 빼앗아 짊어지고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 겨레는 이렇게 판소리에 등장할 만큼 장롱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장롱(欌籠)이란 장(欌)과 농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여러 층이 있어 층별로 분리되는 농(籠)과 옆널이 하나로 붙어 있는 장(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의생활의 변화에 따라 농보다는 장이 널리 쓰이기 시작하였고, 뒤늦게 발달한 의걸이장의 예에서와 같이 수납가구가 장 중심으로 발달하면서 장ㆍ농의 구분도 모호해졌지요. 장롱의 종류를 쓰임새 별로 보면 버선장, 실장, 이불장, 의걸이장 등이 있으며, 재료에 따라서는 화류장(자단나무), 화각장(소뿔), 죽장(대나무), 자개장(나전), 비단장, 화초장, 주칠장(붉은빛의 물감), 삿자리장(갈대), 지장(종이), 먹감나무장, 용목장(느티나무나 물푸레나무), 오동나무장 따위가 있습니다. 또 꾸밈에 따른 장으로는 원앙삼층장, 나비삼층장, 난초장 같은 것들이 있지요. 한편 장롱은 남성들이 쓰는 장과 여성들이 쓰는 장으로 나눌 수도 있는데 사랑방에서 주로 남성들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05년 11월 17일, 일제는 고종을 협박하고 매국노들을 매수해 을사늑약을 강제로 맺었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국권을 강탈당해 형식적인 국명만을 가진 나라로 전락하였지요. 그 뒤 고종은 이와 같은 을사늑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한국의 주권 수호를 호소할 목적으로 1907년 6월 헤이그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몸부림을 쳤습니다만 일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케 합니다. 그리고 한국 식민지화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킵니다. 그리고는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의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제1조)"는 조항이 담긴 합병조약을 통과시키고, 8월 29일 순종으로 하여금 나라를 넘기는 조칙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국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피눈물의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것이지요. 8월 28일 치 노컷뉴스에는 “경술국치 조기게양 운동 확산”이라는 기사가 올랐습니다. 한일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가운데 우리의 주권을 빼앗긴 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一園春色紫薇花(일원춘색자미화)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피니 纔看佳人勝玉釵(재간가인승옥채)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莫向長安樓上望(막향장안누상망)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 滿街爭是戀芳華(만가쟁시연방화) 거리의 사람들 모두 다 네 모습 사랑하여 다투리 위는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이 ‘강아(江娥)’를 위해 지은 한시 ‘영자미화(詠紫薇花)’ 곧 “자미화를 노래함”이란 한시입니다. 자미화는 무려 100일 동안이나 핀다는 배롱나무, 곧 ‘목백일홍’이지요. 강아는 송강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남원의 어린 기생으로 본명은 자미(紫薇)였고, 원래 이름은 ‘진옥(眞玉)’이었으나 정철의 호인 송강의 ‘강(江)’자를 따라 ‘강아’라고 불렸습니다. 송강은 강아를 만나 머리를 얹어주고 하룻밤을 같이했으나, 사랑스러운 딸같이 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송강이 도승지로 임명받아 강아 곁을 떠나 한양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때 강아에게 석별의 시 “영자미화”를 지어준 것입니다. 송강은 아마도 이별 뒤에 뭇 사내의 눈길이 그녀에게 머물까 두려워 이런 한시를 썼던가 봅니다. 그 뒤 강아는 정철을 향한 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천도(天道)가 순환하고 민심이 응합하야, 아(我) 대한독립을 세계에 선포한 후 상(上)으로 임시정부가 유하야 군국대사를 주하며, 하(下)로 민중이 단결하야 만세를 제창할 새 어시호(於是乎) 아(我)의 공전절후(空前絶後)한 독립군이 출동되었도다(…)당당한 독립군으로 신(身)을 탄연포우(彈煙砲雨) 중에 투하야 반만년 역사를 광영케 하며, 국토를 회복하야 자손만대에 행복을 여(與)함이 아(我) 독립군의 목적이오 또한 민족을 위하는 본의라.” 이는 대한독립군 사령관 홍범도(洪範圖) 장군이 1919년 12월 대한독립군 대장으로서 공포한 유고문(諭告文)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151년 전인 1868년 오늘(8월 27일)은 홍범도 장군이 태어난 날입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 “봉오동전투”에서 그린 것처럼 대한독립군 홍범도 장군은 최진동과 안무 장군의 대한북로독군부군, 그리고 이흥수가 이끄는 대한신민단과 연합하여 대승을 거두었지요. 1920년 12월 25일치 <독립신문>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157명이 사살되고 수많은 인원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독립군측은 4명의 전사자에 2명의 중상자만을 내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홍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