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국보 제166호 “백자 철화매죽무늬 항아리”가 있습니다. 이 항아리는 높이 41.3㎝, 입지름 19㎝, 밑지름 21.5㎝의 크기로 아가리 가장자리가 밖으로 말렸고, 목 부위의 경사면부터 풍만하게 벌어졌다가 서서히 좁아진 둥근 몸체의 멋진 항아리입니다. 매화, 대나무의 모양이나 밝은 유약색으로 보아 경기도 광주군 관음리 가마에서 빚은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짙고 옅음이 있는 검은 물감으로 목과 어깨 부분에 구름무늬와 꽃잎무늬를 돌렸고 아랫부분에는 연속된 파도무늬로 장식했습니다. 또 몸체의 한 면에는 대나무를, 다른 한 면에는 매화등걸을 각각 그려 넣었지요. 그림 기법은 윤곽을 그리고 그 가운데 칠하는 구륵법(鉤勒法)과 윤곽을 그리지 않고 직접 대상을 그리는 화법 몰골법(沒骨法)을 썼습니다. 유약은 푸르름이 감도는 유백색(乳白色)으로, 전면에 고르게 씌워져 은은한 광택이 납니다. 굽다리에는 모래받침을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지요. 이러한 항아리의 형태는 16세기의 분청사기에서 주로 보이며, 특히 중국 명나라 때의 항아리와 비슷한 모양입니다. 매죽무늬의 원숙한 솜씨로 미루어보아 궁중화원(畵員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일곱째 “입하(立夏)”입니다. “입하‘는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절기인데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으로 맥량(麥凉), 맥추(麥秋)라고도 하며, ‘초여름’이란 뜻으로 맹하(孟夏), 초하(初夏), 괴하(槐夏), 유하(維夏)라고도 부릅니다. 이때가 되면 흐드러지던 봄꽃들은 지고 산과 들에는 초록빛이 짙어지며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지요. 또 밭에는 참외꽃이 피기 시작하며, 모판에는 볍씨의 싹이 터 모가 한창 자라고, 밭의 보리이삭들이 패기 시작합니다. 한편 이때는 한창 찻잎을 따는 시기입니다. 일본에서 발달한 녹차는 곡우 전에 딴 우전차(雨前茶)를 최상품으로 치지만, 조선시대 차의 성인으로 불린 초의(艸衣)선사는 '우리의 차(茶)는 곡우 전후보다는 입하(立夏) 전후가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원래 쪄서 가공하는 우전차는 신선하고 향이 맑기는 하지만 우리의 전통 덖음차는 입하 때 딴 잎으로 덖었을 때 깊고, 구수하며, 담백한 맛을 내는 차입니다. 또 입하 때 세시풍속의 하나로 쌀가루와 쑥을 한데 버무려 시루에 쪄 먹는 떡, 이른바 쑥버무리를 시절음식으로 즐겨 먹습니다. 쑥은 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문화가 있는 날 등 다채로운 5월 문화행사를 연다. 문화가 있는 날 공연 <세종의 숨결을 노래하다> 5월 문화가 있는 날에는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담은 무대가 열린다. 우리나라 음악 발전에도 많은 이바지를 한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궁중에서 연주되었던 전통 음악부터 새롭게 창작된 국악 실내악까지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통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난감하네’, ‘쑥대머리’, 어린이 이중창과 국악실내악이 함께하는 ‘나랏 말씀이’, ‘한글 피어나다’, ‘용비어천가’를 통해 훈민정음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소개한다. 해설이 함께해 누구나 쉽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번 공연은 5월 29일(수) 낮 2시, 4시에 강당에서 진행되며 5살 이상 관람 가능하다. 토요 문화행사 <대왕의 꿈, 즐거움을 누리다> 5월 둘째 토요일에는 이야기가 있는 전통무용 공연이 열린다. 조선시대부터 이어 내려온 전통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이번 공연은 전통 타악기 꽹과리를 들고 추는 진쇠춤,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인 살풀이춤, 남사당패의 공연에서 보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종실록 4년(1422년) 5월 17일 기록에 보면 “진전(眞殿, 창덕궁에 있는, 역대 임금과 왕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과 불전(佛前) 및 승려 대접 이외에는 만두ㆍ국수(면-麪)ㆍ떡(병-餠) 등의 사치한 음식은 일체 금단하소서."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세종에게 아버지였고 든든한 후원자였던 태종을 위한 수륙재(水陸齋,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올리는 불교의식)였지만 진전과 불전, 승려 등의 대접 이외에는 ‘사치한 음식’을 내놓지 말라고 합니다. 이 ‘사치한 음식’에 국수가 한 자리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흔한 국수가 조선시대에는 어찌 ‘사치한 음식’이 되었을까요? 송나라 서긍의 고려견문록 《고려도경》에서 “고려에는 밀이 적어서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 잔치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라고 나옵니다. 그러기에 국수는 혼례 때나 되어야 맛볼 수 있었던 귀한 것이었지요. 판소리 춘향가 사설 가운데 “얼맹이 쳇궁기(체구멍) 진가루 새듯”이란 대목이 있습니다. 얼마나 귀했으면 밀가루를 ‘진가루’라고 불렀을까요? 그래서 이 ‘사치한 음식’ 국수를 먹고 싶어서 밀가루 대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田家聞布穀(전가문포곡) 농가에 뻐꾸기 울음 들리니 耒耜日就治(뇌사일취치) 쟁기 들고 날마다 밭 갈러 가네 相呼種春麥(상호종춘맥) 봄보리 심으라고 서로 부르니 東作自玆始(동작자자시)봄 농사 지금부터 시작이로다 而余長京洛(이여장경락) 그런데 나는 서울에서 자라 生不識田事(생불식전사) 날 때부터 농사일을 모른다네 明農古有言(명농고유언) 농사에 힘쓰겠다던 옛 성현의 말씀 素食詩人恥(소식시인치) 공밥을 먹는 것은 시인의 수치라네 今我不努力(금아불노력) 지금 내가 농사에 노력하지 않으면 歲暮將何俟(세모장하사) 해 저물 때 장차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 시는 조선 후기 예조참의와 대사간을 지낸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년 ~ 1708)이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목흔향영(木欣向榮) 천연시류(泉涓始流)’ 구절을 써서 지은 시로, 귀양 온 아버지를 따라 세상을 멀리 하려는 뜻을 읊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봄이 와 뻐꾸기 노래 들리므로 이제 봄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지요. 비록 서울에서 자라 농사일을 모르지만 공밥을 먹는 것은 시인의 수치라면서 지금 농사를 게을리 하면 노년에 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10년 전 오늘은 “나는 죽을지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긴 어네스트 토마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한국 이름 배설-裵說)이 숨진 날로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5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한 영국인입니다. 베델은 1904년 3월 10일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Daily Chronocle)』의 특별통신원 자격으로 한국에 왔고, 코웬 ・ 양기탁 등과 1904년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 창간호를 발행하였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무자비한 조선침략에 대해 강력한 조선인의 저항을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힘썼습니다. 또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부터 일제의 부당한 침략 사건을 예로 제시하며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한편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직후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이날을 목 놓아 크게 통곡하노라”라는 명 논설을 게재하자 일제가 장지연을 체포하고 신문을 정간시켰는데 이후 <대한매일신보>가 <황성신문>의 역할을 대신했지요. <대한매일신보>는 의병전쟁에 대한 상세한 보도를 한 것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에굽고 속 휑덩그려 빈 저 오동나무 바람 받고 서리 맞아 몇 백 년 늙었던지 오늘날 기다려서 톱 대어 베어 내어 잔 자귀 세 대패로 꾸며 내어 줄 얹으니 손아래 둥덩둥당딩당 소리에 흥을 겨워하노라 위 시조는 조선 후기의 문인 신헌조(申獻朝, 1752~1807)가 쓴 《봉래악부(蓬萊樂府)》라는 시조집에 있는 것으로 오동나무가 악기가 되는 과정을 단 한 편으로 시조로 표현해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전통악기 가야금이나 거문고는 오동나무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보물 957호 “김일손 거문고”는 100년 된 헌집의 오동나무 문짝으로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심지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심의겸은 거문고를 만들려고 향교의 오동나무를 베었기에 탄핵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서양의 악기 바이올린은 오동나무가 아니라 가문비나무로 만든다고 합니다. 예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거문고를 만드는 오동나무와 바이올린을 만드는 가문비나무의 울림을 과학적으로 비교 실험한 내용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세포구조가 촘촘한 가문비나무는 배음 구조가 규칙적이고 여음이 길며, 높은 음역대에 잘 맞기에 바이올린의 음색과 탄성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 목항아리”가 있습니다. 토우란 흙으로 만든 인형으로 어떤 형태나 동물을 본떠서 만든 토기를 말하지요. 토우는 장난감이나 애완용으로 만들거나 주술적 의미, 무덤에 넣기 위한 껴묻거리(부장)의 목적으로 만들어집니다. 물론 흙뿐만 아니라 동물의 뼈, 뿔, 나무, 짚, 풀 따위로도 만들지만, 많은 수가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토우라 일컫습니다. 경주박물관에 있는 이 토우장식 목항아리(장경호)는 2점으로 이 가운데 계림로 30호 무덤에서 출토된 것은 높이 34㎝, 아가리 지름 22.4㎝이고, 노동동 11호 무덤에서 출토된 것은 높이 40.5㎝, 구연부 지름 25.5㎝입니다. 특히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30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는 밑이 둥글고 아가리는 밖으로 약간 벌어진 채 꼿꼿하게 선 모습이고, 목 부분에 4개의 선이 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목에서부터 맨 아래까지 한번에 5개의 선을 여러 번 그었고, 그 선 사이에 동심원을 새겼지요. 또 어깨와 목이 만나는 부분에는 개구리ㆍ새ㆍ거북이ㆍ사람 따위 토우가 붙어 있는데 그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남녀가 성교하는 모양과 배부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개관 5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첫 번째 기획특별전으로 <공쥬, 글시 뎍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을 2019년 4월 25일(목)부터 8월 18일(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연다. 이번 전시는 2016년 기획특별전 <1837년 가을 어느 혼례날: 덕온공주 한글 자료>에 이어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온 집안의 미공개 한글 유산을 소개하는 두 번째 전시다. 지난 2019년 1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으로부터 이관받은 《ᄌᆞ경뎐긔》를 포함하여 국립한글박물관이 2016년부터 2019년 1월까지 수집한 400여 점의 유물 가운데 덕온공주와 아들, 손녀 3대의 한글 자료와 유품 200여 점을 처음으로 망라하여 공개한다. 특히 덕온공주의 《ᄌᆞ경뎐긔》, 덕온공주의 언니 복온공주의 글씨첩, 덕온공주의 아들 윤용구가 한글로 쓴 중국 여성 전기 《동사기람》 등 중요 유일본 자료들이 최초로 선보인다. 최초로 한자리에 모이는 덕온공주 가족과 후손들의 왕실 한글 유산 이번 전시에서는 덕온공주 가족과 후손들의 왕실 한글 유산을 최초로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876년 문호개방 이후 고종의 대한제국은 근대화 작업에 착수하였고 이때 의료근대화도 구상하였습니다. 1881년 일본에 파견한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을 통해 서양식 병원을 알아보았고, 1884년 정부신문인 <한성순보> 사설을 통해 서양의학 교육기관의 설립과 양의(洋醫) 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지요. 그 뒤 1884년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매클레이가 서양식 병원 설립을 제안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마침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일어났고,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 민영익은 심한 자상(刺傷, 칼로 난 상처)을 입고 조정 외교 고문이던 묄렌도르프 집으로 옮겨졌으나 사경을 헤맸습니다. 그러자 묄렌도르프는 의료선교사 호러스 알렌을 불러 치료하게 했지요. 알렌은 지혈과 봉합치료로 민영익을 살렸고 이를 계기로 왕실의 신임을 얻어 1885년 4월 10일 한국 첫 서양식 국립병원 광혜원을 개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4월 26일 광혜원은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지요. 알렌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하루에 많게는 260여 명의 환자를 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제중원은 여러 선교의를 거치다가 1894년 6월 갑오개혁의 행정관제개혁 때 정부 내무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