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뒤편 종로구 내자동에는 종교교회가 있습니다. 처음 이 이름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교회는 당연히 종교 건물인데 웬 ‘종교교회’일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종교교회는 예전 그 앞에 “종침교(琮沈橋)”라는 다리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지요. 다리 “종침교”의 이름은 조선 성종 임금 때 재상인 허종(許琮, 1434년 ~ 1494년)과 동생인 허침(許沈, 1444년 ~ 1505년) 형제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입니다. 성종은 조선 10대 임금인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폐위를 논의하기 위한 어전회의를 소집했지요. 이 때 두 형제는 어전회의에 가기 전 누님에게 가 그 사실을 말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누님은 윤씨를 폐위한 뒤 연산군이 임금이 되면 화가 미칠 것이라며, 다리에서 낙마했다는 핑계를 대고 어전회의 참석하지 말라고 했지요. 결국 누님의 예상대로 연산군은 임금이 되었고, 연산군의 생모 윤씨 폐위를 위한 어전회의에 참석했던 대신들은 모두 화를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피했던 두 형제는 죽음을 모면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형제가 낙마한 다리 이름을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햇빛 쨍쨍 퍼부어 불아지랭이 어른어른거리는 하얀 신작로 길. 작은 미루나무만 뽀얗게 먼지 뒤집어쓰고 외로이 줄지어 서있는, 아무리 걷고 또 걸어가도 제 자리 걸음 하듯 늘 그대로 남아있었던 팍팍했던 머나먼 자갈길. (중간 줄임) 아버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 한 자 없는 내 아버지, 이 길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자꾸 내려가면 내 아버지 만날 수 있을까? 이 길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자꾸 가면 서울 우리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 먼 먼 신작로 길처럼 온 몸에 치렁치렁 감겨들었던 한없는 적막함, 외로움.“ 이는 양정자 시인의 “신작로 1”이라는 시로 신작로 풍경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시골에 가도 모든 길이 말끔하게 포장되었지만 예전 60년대, 70년대만 해도 웬만한 시골길을 차 한 대만 지나가도 뽀얀 흙먼지가 날리는 그런 신작로였지요. 그 탓에 길가의 가로수들도 온통 하얀 흙먼지 뒤집어 쓴 채였고, 그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은 돌아서 있다가 차가 지나간 한참 뒤에서야 다시 길을 재촉하던 그런 길이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제1호 신작로는 전라북도 전주와 군산 사이를 잇는 “전군도로”였습니다. 1906년 일제는 7개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바쁜 일상에서 여유 있게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데에는 부담이 따른다. 먼 거리 여행보다 가까운 곳에서 다정한 이들과 함께하는 맛있는 식사, 잠깐의 낮잠 등 짧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만족스러운 휴식을 하는 현대인들의 문화, ‘패스트 힐링’. 꼭 영어로 써야만 할까? 국립국어원은 불필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외국어를 알기 쉽게 다듬어 2019년 제1차 다듬은 말을 발표했다. 대상어(원어) 다듬은 말 뜻 패스트 힐링 (fast healing) 자투리 휴식 바쁜 일상 속에서 짧은 시간 간단한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자신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직장인들 사이에 새로운 휴식 문화로 정착되고 있음. 앵커 테넌트 (anchor tenant) 핵심 점포 상가나 쇼핑몰 등에서 고객을 끌어들이는 핵심 점포. 인포테인먼트 (infotainment) 정보 오락 프로그램 정보(inform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로, 정보, 지식, 연예, 오락 프로그램의 특성을 조합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상남도 진주를 가운데 두고 토박이말을 더 잘 알게 하고 더 잘 쓰게 하여 넉넉한 말글살이를 즐기는 참으로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마음, 슬기, 힘을 모으고 있는 (사단법인)토박이말바라기 모람 모두는 토박이말날 두 돌을 맞으며 밝힘글(성명서)를 내놨다. 먼저 이들은 올해 1월 9일 빛그림(영화) ‘말모이’를 때로는 웃기도 하고 때로는 울기도 하면서 보았다고 하면서 바람과 달리 밑지지는 않을 만큼은 넘었지만 크게 길미(수익)를 얻지 못했다는 기별을 듣고 참 많이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올해 들어 두 번의 가슴 아픈 일이 있었음을 털어놓았다. 그것은 먼저 영어를 일찍부터 가르치겠다는 사람들이 많고 그 사람들의 뜻에 따라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 후 영어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는 것과 나라를 빼앗겼을 때 어쩔 수 없이 썼던 말을 나라를 되찾은 일흔 네 해가 되는 오늘날까지 쓰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면서 토박이말날 두 돌을 맞아 자신들의 바람을 힘주어 말하면서 부디 온 나라 사람들이 함께 힘과 슬기를 모아달라고 간절함을 얘기했다. 첫째, 말을 배우는 어린 아이 때부터 토박이말을 넉넉하게 배우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일본 도쿄에 가면 도쿄타워 가까이에 증상사(增上寺, 죠죠지)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증상사 안의 신(新)경장 건물에는 고려대장경이 소장돼있지요. 그러데 이곳에서 만난 한국의 한 대학생은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기야 증상사 측에서 꽁꽁 숨겨 놓고 공개를 하지 않으니 알기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곳에 고려대장경이 있게 된 것일까요? 《성종실록》 16년(148년) 9월 16일 기록에 보면 노사신의 상소가 나옵니다. “대장경은 이단의 책이므로 비록 태워버린다 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더욱이 인접한 나라에서 구하니 마땅히 아끼지 말고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장경 1건을 만들려면 그 경비가 매우 많이 들어서 쉽사리 조달할 수가 없습니다. 요전번에는 대장경이 나라에 무익하였기 때문에 왜인들이 와서 구하면 문득 아끼지 않고 주었으나 지금 몇 건 남아있습니까? 다 주고 나면 또 달라는 억지에 골치가 아플 것입니다.” 말하자면 싹 주어 버려도 아깝지는 않지만 한꺼번에 다 주고 나서 다시 달라고 떼를 쓰면 만드는데 돈이 드니까 대장경을 달라고 할 때마다 조금씩 주자는 말이지요. 이 무렵 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원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에 가면 사적 제421호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이 있습니다.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1224~1300)라 하면 고려 시대의 뛰어난 문인이자 정치가였는데 우리 겨레의 역사서에서 가장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쓴 사람입니다. 바로 이 책은 고려 충렬왕 13년(1287년) 무렵 이곳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에서 썼지요. 요동에 또 다른 천지가 있어서, 중국과 구별되어 나뉘어 있네 큰 파도 넓은 바다가 삼면을 둘러싸고, 북쪽은 육지와 실처럼 연결되었네. 가운데 사방 천 리가 조선이며, 강산의 아름다움은 천하에 이름을 떨쳤네. 땅 갈고 우물 깃는 예의바른 나라, 중국인은 소중화라 불렀다네 《제왕운기》 권하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제왕운기》는 우리 역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고 단군으로부터의 계승 관계를 체계화한 귀중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유교사관을 내세워 원나라에 대한 사대(事大)를 합리화하는 사대적ㆍ비자주적 성격의 저술이라는 비판도 있는 책입니다. 이승휴는 어렵게 벼슬을 얻었으나 강직한 성품 탓에 여러 번 좌천되었고 이에 이곳 두타산으로 돌아와 《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ㆍ이봉창 의사 등 조국 해방에 삶을 바친 7인의 독립운동가가 잠들어 있지만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용산구 ‘효창공원’(총면적 16만924㎡)이 오는 2024년 ‘독립운동 기념공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일제가 훼손한 ‘효창원’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고 노후되면서 주민들에게 외면받고 시민들에겐 낯선 공간이 된 ‘효창공원’의 위상을 바로 세운다는 계획이다.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같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마주하며 그 정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상 속 기념공원, 미래세대가 뛰어노는 새로운 명소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효창공원’은 원래 조선 정조의 장자 문효세자의 묘역인 ‘효창원’이 있던 자리다. 일제는 울창한 송림으로 사랑받았던 효창원에 골프장과 유원지를 지었고, 해방 직전에는 묘역을 서삼릉으로 이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규모는 1/3로 축소됐고 도로로 단절되면서 섬처럼 폐쇄적인 공원이 됐다. 해방 뒤 백범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했고 그 자신도 1949년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현재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을 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순글기획(대표 고나윤)은 한국인들의 영어발음 개선을 위한 방법으로 훈민정음 창제원리를 활용한 발음법 ‘글퍼블릭(guelpublic, 글로 하나되는 공화국)’을 자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다고 11일 밝혔다. 글퍼블릭은 훈민정음 창제의 소리글자 표기 방법을 바탕으로 현재의 한글로 표기하지 못하는 영어발음에 일대일 표기를 구현하여 영어발음을 보다 쉽게 익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순글기획의 유튜브 채널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글퍼블릭을 알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순글기획은 1992년부터 진행된 한글현대화 작업-한글영어와 새한글(고제윤, 도서출판 아거스 간)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영어교육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재를 개발하고, 이를 활용하는 학습센터(전문고대영어학원)를 통해 전수해 왔다. 순글기획은 학원에서의 실험과 적용을 거쳐 보다 많은 이들이 쉽게 영어발음을 한글로 익히는데 유용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글퍼블릭은 훈민정음 창제 정신인 애민 정신, 음양오행의 원리, 그리고 소리를 글로 완벽하게 표현하려는 염원을 이어받아 현재의 발음 원리에 적합한 글퍼블릭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발음도 익히고 소리를 완벽하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돌이 되는 날입니다. 나라안팎에서 3·1만세운동이 전 겨레의 운동으로 퍼져나갈 때, 독립정신을 집약하여 우리 민족이 주권국민이라는 뜻을 표현하고, 독립운동을 능률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웠던 것입니다. 물론 3·1만세운동 앞뒤로 나라안팎에 7개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이들은 1919년 9월 모두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초창기엔 여러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 뒤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활로를 찾게 되었지요. 이후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일제의 반격으로 상하이를 떠나게 되었고, 뒤이어 일어난 중일전쟁(1937)으로 상하이[上海, 1919]→항저우[杭州, 1932]→전장[鎭江, 1935]→창사[長沙, 1937]→광둥[廣東, 1938]→류저우[柳州, 1938]→치장[綦江, 1939]→충칭[重慶, 1940] 같은 곳으로 옮겨가며 험난한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지요. 특히 임시정부는 충칭시기에 광복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주 강원도 고성, 속초, 강릉, 인제, 동해 등에 큰 산불이 났었지요. 사망 1명, 부상 1명 등으로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임야 530ha와 주택 516채는 물론 가축 4만1천520마리가 불에 타 결국 정부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번 산불은 태풍에 버금가는 큰 바람 탓에 불이 급격하게 번져갔다고 하지요. 이렇게 거센 바람으로 불이 난 것은 《태조실록》 3권, 태조 2년 2월 20일 기록에도 “큰 바람이 부는 데 성중(城中)에서 잘못하여 불을 낸 사람이 많았다. 강릉도(江陵道) 양주(襄州)에서 한 집이 잘못하여 불을 내어, 불길이 이웃으로 번져서 관사(官舍)와 민가(民家)가 거의 다 타버렸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세종 때 한성에 큰 불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세종실록 31권, 8년(1426년) 2월 15일 기록에 보면 “한성부에 큰 불이나 행랑 1백 6간과 중부 인가 1천 6백 30호와 남부 3백 50호와 동부 1백 90호가 불에 탔고, 남자 9명, 여자가 23명이 죽었는데, 타죽어 재로 화해버린 사람은 그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당시에는 한성의 집들이 목조건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