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한글문화를 통해 가족 간 소통과 화합의 계기를 제공하기 위하여 2019년 상반기 주말 가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자연 속에는 어떤 우리말이 숨어 있을까?, <자연 속 한글 탐험> <자연 속 한글 탐험>은 유아를 동반한 가족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가족이 함께 나무와 풀 등 자연물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글을 만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오감을 활용한 신체 활동을 통해 자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의성어, 의태어, 색채어 등을 배우고 능동적으로 탐구하는 자세를 기른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성큼 다가온 봄을 느끼며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자연 속 한글 탐험>은 4월 6일부터 6월 15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국립한글박물관 강의실과 용산가족공원에서 진행된다. 내가 심청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도란도란 고전 즐기기> <도란도란 고전 즐기기>는 초등학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한글 고전 소설 ‘흥부전’ 또는 ‘심청전’을 주제로 당시의 생활상을 만나보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어떻게 치러졌을까요? 여기 그 자세한 내용이 담긴 그림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한시각(韓時覺)의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가 그것인데 세로 57.9cm, 가로가 674.1cm로 아주 큰 그림입니다. 한시각은 조선 후기의 화원화가로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건너가서 대나무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송시열의 초상화도 그렸다고 전해지지요. <북새선은도>는 1664년(현종 5년) 함경도 길주목에서 있었던 무과 과거 시험 장면을 그린 기록화입니다. 이 그림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리는 방법 곧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렸는데 새가 높이 날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하여 조감법(鳥瞰法)이라고도 합니다. 함경도는 오래 소외된 땅이었는데 17세기 중반 청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하였지요. 그래서 조정에서는 이곳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변방 지역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그곳의 실정을 파악하려고 과거시험을 치른 것입니다. 따라서 그림의 이름을 북쪽 변방에 임금님의 은혜를 베풀었다는 뜻으로 ‘북새선은(北塞宣恩)’이라고 한 것이지요. 두루마리 형식의 이 그림은 크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쪽진 머리에 똬리 얹어 / 함지박 이고 어머니 우물 가는 길 / 누렁이 꼬리 흔들며 따라나서고 / 푸른 하늘 두레박에 넘실거릴 때 / 이남박 가득 하얀 햅쌀 / 일렁이며 돌 고르던 마음 / 아! 어머니 마음 신수정 시인의 '이남박'이란 시입니다. 시인은 “하얀 햅쌀을 이남박에 일렁이며 돌 고르던 마음”이 ‘어머니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남박은 예전엔 어느 집에나 있던 도구로 쌀, 보리 같은 곡식을 씻거나 돌을 일 때 쓰는 물건이지요. '이남박'을 북한에서는 '쌀함박', 강원도는 '남박' 또는 '쌀름박', 전라남도는 '함지' 또는 '함지박', 경상북도는 '반팅이'나 '쌀배기'라고 불렀습니다. 정약용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권11 가정편(家政篇)의 주중잡물(廚中雜物)에 보면 이남박을 ‘도미치표(淘米齒瓢)’라고 했습니다. 이는 ‘쌀을 이는 이가 있는 바가지’라는 뜻인데 이남박의 쓰임새와 모양을 얘기하는 이름입니다. 이남박은 통나무를 파서 만드는데 바가지 안쪽에는 돌을 일기 좋게 여러 줄의 골을 내었습니다. 새로 만들었을 때는 먼저 들기름을 바르고, 기름이 잘 밴 다음 마른행주로 닦아 길을 들인 뒤 썼는데 작은 것은 지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옛것을 좋아하여 이것을 구한다 師也過商也不及過猶不及 사(師, 子張)은 지나치고, 상(商, 子夏)은 미치지 못한다. 子曰吾非生而知者好古敏以求之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나면서부터 안 사람이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여 이것을 구하는 사람이다. 고 운암(雲庵) 곽영민(郭永敏) 선생은 일본, 미국, 중국 등에서 수십 차례의 전시회를열 었으며, 대한민국 동양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서예계 원로 작가였다. 그뿐만 아니라 2000년 이화문화출판사를 통해서 《갑골문집(甲骨文集)》을 펴낸 바 있는 갑골문(甲骨文)의 대가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천도교에서 실시한 제1세 교주의 추도이 끝나고 오후 9시경 군내 여러 곳의 산상에서 횃불이 오르고 많은 부락에서 만세의 함성이 메아리 쳤다.” 지난 3.1절 무렵 한 지방신문에 실린 기사 일부입니다. 여기에 보면 “부락”이란 말이 나옵니다, “부락(部落)”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시골에서 여러 민가(民家)가 모여 이룬 마을. 또는 그 마을을 이룬 곳‘이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쿠라 훈민정음 (이윤옥, 인물과사상사, 2010》에 보면 “부락은 부라쿠(部落)라는 일본말로 일본국어대사전 《다이지센(大辞泉)》에는 ’비교적 소수의 민가가 모여 사는 지역이란 뜻도 있지만 부락민이란 천시의 뜻도 있다. 일반적으로 비인간(非人間) 집단을 일컬으며 1922년에 대대적인 부락민 철폐운동이 있었다.”라고 풀이하고 있지요. 그러면 어찌해서 좋지 않은 말인 “부락”을 쓰게 되었을까요? 이는 아마도 일제강점기 잡지 《시인부락(詩人部落)》의 영향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인부락》은 1936년 11월 14일 창간 제1집을 낸 시 전문지인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서정주가 편집 겸 발행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오는 3월 15일(금) 낮 3시부터 소장자료 연계 강연회 <남과 북을 잇는 코드: 한글>을 국립한글박물관 강당에서 연다. 이번 강연회에서는 컴퓨터에서 한글을 사용하기 위한 남한과 북한의 다양한 노력의 과정을 다룰 예정이다. 강연은 30여 년 동안 한글 소프트웨어만 발전시키며 한 길을 걷고 있는 ㈜한글과컴퓨터 양왕성 부사장이 맡았다. 디지털 세상이라고 불리는 요즘, 컴퓨터에서 한글 쓰기는 아주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간혹 파일을 열었을 때 한글 문자열이 깨지거나, 엉뚱한 문자로 바뀌어 있는 경험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모두 한글 코드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한글 코드란 컴퓨터가 받아들이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 형태로 숫자 등으로 기호를 부여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컴퓨터가 들어왔을 때의 컴퓨터에서는 알파벳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다 점차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남한과 북한 양측 모두 컴퓨터에서 한글을 쓰려는 열망이 커졌다. 이에 따라 남한은 ‘한글 도깨비’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북한은 ‘붉은별’이라는 운영체제를 개발하여 그 속에서 한글을 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보물 제347호 “분청사기 상감어문 매병(梅甁)”이 있습니다. 이 매병은 조선 전기에 빚은 것으로 높이 30㎝, 입지름 4.6㎝, 밑지름 10.4㎝의 크기입니다. 고려 때 유행하던 청자로 빚은 매병들은 조선시대 백자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런 분청사기로 그 맥이 이어집니다. 아가리가 도톰하고 목이 짧으며 어깨부분에서 바로 부풀어 오르다가 다시 급격하게 줄어들어 몸체 가운데가 어깨보다 지름이 작아 잘록합니다. 병 아가리 둘레에는 흑백상감으로 꽃잎을 간단하게 표현했고, 그 아래에는 덩굴로 띠를 둘렀지요. 몸통의 4면에는 구슬무늬와 2겹으로 동심원을 그렸고, 그 안에 2마리의 물고기를 각각 흑백상감하고 물결을 흑상감으로 처리했습니다. 또 동심원 밖으로는 점을 가득 찍어 채웠으며, 위쪽 4곳에는 흑백상감으로 나르는 학을, 허리 부위에는 꽃과 풀을 추상적으로 묘사하고, 그 아래 연꽃이 보입니다. 이 매병의 중심 그림은 쌍어문(雙魚紋)으로 물고기 두 마리가 서로 배를 마주대고 있는 모양입니다.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는다 하여 다산과 풍요,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는데 특히 도자기 따위의 공예품에 나타난 어문은 쌍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올해는 3.1만세운동 100돌이 되는 해다. 그래서 온 나라는 곳곳에서 기념행사에 여념이 없다. 여기에 은행들도 동참하느라 신문광고를 내기도 한다. 그런데 신한은행은 유관순 열사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를 여러 번 하고 있다. 3.1만세운동의 대표적 애국지사인 유관순 열사를 앞에 내세우는 것이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는 그렇게 드높이고 나머지 여성독립운동가 431명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이런 현상은 개탄해야 할 일이 아닌가? 10년에 걸쳐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책 《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을 완간하고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데 온 힘을 쏟고 있는 이윤옥 시인은 말한다. “그동안 유관순 한 분을 알려왔다면 이제 앞으로 100년은 이름조차도 모르고 있는 다른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기생의 몸으로 만세운동을 이끈 김향화, 임신부임에도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안경신, 핏덩이 안고 당당히 광복군에서 항일투쟁을 한 유순희, ‘안사람 의병가’를 만든 여자의병대장 윤희순, ‘남에는 유관순 북에는 동풍신’의 주인공 동풍신 애국지사도독립투사로 이름을 불러주고 드높여야만 한다.” 그렇다. 유관순 열사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흰 저고리 고름 날리며 / 일본 칸다구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칼 찬 순사 두려워 않고 / 2·8 독립의 횃불을 높이든 임이시여! 그 불씨 가슴에 고이 품고 / 현해탄 건너 경성 하늘 아래 모닥불 지피듯 독립의지 불붙이며 / 잠자는 조선여자 흔들어 깨워 스스로 불태우는 장작이 되게 하신 이여!“ 위는 이윤옥 시인의 《서간도에 들꽃 피다》 2권에 실린 <잠자는 조선여자 깨워 횃불 들게 한 ‘김마리아’> 시 일부로 오늘은 김마리아 애국지사가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한 날입니다. 입니다.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던 김마리아 애국지사는 동경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1919년 2월 8일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연 2·8독립운동에 가담한 뒤 〈독립선언서〉 10여 장을 베껴 옷 속에 숨기고 차경신 등과 2월 15일에 부산항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들여온 2.8독립선언서는 3·1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왜경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아무리 나를 고문한다 해도 내 속에 품은 내 민족, 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너희가 빼내지 못할 것이다.”라면서 당당히 맞섰는데 이때 당한 고문 탓으로 코와 귀에 고름이 생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 초기 안평체의 이용(안평대군), 중기 석봉체의 한호(석봉), 말기 추사체의 김정희와 더불어 원교체(圓嶠體)라는 독특한 필체의 이광사(李匡師, 1705~1777)는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입니다. 전남 구례의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에는 이광사가 물 흐르는 듯한 수체(水體)로 쓴 ‘智異山泉隱寺’(지리산 천은사)'라는 편액이 걸려있지요. 천은사는 원래 이름이 감로사(甘露寺)였는데 숙종 때 고쳐 지으면서 샘가의 구렁이를 잡아 죽이자 샘이 사라졌다고 해서 ‘샘이 숨었다’는 뜻의 천은사(泉隱寺)로 이름을 고쳤습니다. 그러나 그 뒤 원인 모르는 불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는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두려워했는데 스님들이 이광사를 찾아가 물 기운이 없어 도량에 화재가 잦다면서 일주문 편액에 달 글씨를 써주되 물을 담뿍 담아달라고 했지요. 그 뒤 물 흐르는 듯한 이광사 글씨 편액을 붙인 뒤로는 불이 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지금도 고요한 새벽 일주문에 귀를 기울이면 편액에서 물소리가 들린다고 하니 당시 이광사의 글씨는 신비스런 경지에 다다른 것이 분명하지요. 이광사의 글씨에 서린 또 하나의 이야기는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