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갰다 금새 비 오고 비 오다 다시 개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도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의 정이야 譽我便應還毁我(예아편응환훼아) 나를 칭찬하는가 했더니 곧 다시 나를 비난하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이름을 피하는가 하면 도리어 이름을 구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꽃이 진들 봄이 무슨 상관이며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 구름 가고 구름 옴을 산은 다투지 않도다 寄語世上須記憶(기어세상수기억) 세상에 말하노니 모름지기 기억하라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어디서나 즐겨함은 평생 득이 되느니라 이 시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지은 <잠깐 갰다 금세 비 오고(乍晴乍雨-사청사우)>란 제목의 한시다. 최근 우리나라의 날씨는 한 언론에 “사흘째 전국 비…내일까지 최대 300㎜ 물벼락”이란 제목이 말해주듯 온 나라가 큰물로 난리를 치르고 있다. 오죽하면 ‘극한호우’란 어려운 한자말까지 쓸까? 이번 큰물로 온 나라엔 많은 재산 피해가 났음은 물론 안타깝게 인명 피해까지 일어났다. 그런데, 곳에 따라 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반구천의 암각화(Petroglyphs along the Bangucheon Stream)」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습니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2010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이후 15년 만에 결실을 보았고,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반구천의 암각화」는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포함하는 유산입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모두 17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 15건, 자연유산 2건)을 가지게 됩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반구천의 암각화」에 대해 ▲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주고, 다양한 고래와 고래잡이의 주요 단계를 담은 희소한 주제를 선사인들의 창의성으로 풀어낸 걸작이며, ▲ 선사시대부터 약 6천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이면서 한반도 동남부 연안 지역 사람들의 문화 발전을 집약하여 보여준다고 평가하였습니다. 한편, 우리나라가 2026년 7월 열릴 예정인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개최국으로 뽑힌 것도 기쁜 일입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47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유상곡수(流觴曲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달) 붙쇠 기름에 꽃전을 띄우면 (빛) 시읊어 시름 달래는 풍류객 (돌) 시흥에 겨운지 절로 어깨춤 (심) ... 25.7.9. 불한시사 합작시 물에 쇠잔이 뜰 리가 만무한데, 이처럼 얕고 작은 도랑물에 술잔이 뜨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국민학생(지금 초등학생) 때 경주 수학여행 가서 포석정(鮑石亭)을 보고 든 의문이었다. 돌아와 할아버지께 여쭈었더니, "쇠잔이 아니고 뿔잔이란다" 하시며, 붓으로 '유상곡수(流觴曲水)' 네 글자를 한자로 써 보여 주셨다. 굽이친 물(曲水)에 술잔을 띄운다(流觴)는 뜻이었다. 잔이란 글자의 상(觴)에 뿔(角)이 들어가 있었다. 살펴보면 유상곡수의 풍류는 포석정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유상곡수 풍습은 삼월 삼짇날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그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은 풍류놀이었다. 우리말의 잔치가 잔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지만, 잔을 가리키는 한자어는 잔(盞), 배(盃, 杯), 상(觴) 등 재료에 따라 다양하다. 나무나 토기 대신 천연 그대로 잔을 깎아 만들기에는 뿔이 가장 쉬웠으리라. 가볍고 깨지지 않으며 갖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배달겨레 단군의 나라 그 자손들 오순도순 사는 곳에 늑대 탈 뒤집어쓴 왜놈 나타나 아마테라스 천조대신 믿으라 고래고래 소리 내지르며 조선 천지에 신사를 만들더니 고개 조아려 모시지 않는다고 잡아 가두길 벌써 여러 해 위 시는 이윤옥 시인의 《서간도에 들꽃 피다》 2권에 나오는 마산 김두석 지사를 기리는 시 <신사참배를 끝내 거부한 마산의 잔다르크 ‘김두석’> 일부입니다. 동아일보에서 펴낸 《일제침략하36년사》를 보면 1939년 7월 14일 “신사참배 거부한 마산 창신(昌信)ㆍ의신(義信)학교가 폐교됐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김두석 지사는 당시 일신학교 교사였는데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학교가 폐교됨으로써 학교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일제는 조선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세웠는데 신궁은 천조대신(天照大神, 아마테라스 오오카미), 명치왕 등 일본이 가장 큰 신으로 여기는 신들을 받들었지요. 조선총독부는 1945년 6월까지 신궁(神宮) 2곳, 신사(神社) 77곳, 면 단위에 건립된 작은 규모의 신사 1,062곳을 세워 조선 사람들의 혼을 말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제에 항거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공시인(貢市人)의 그전부터 남아 있는 빚은 탕감시키고 사서인(士庶人)으로 80살이 된 사람은 특별히 가자(加資, 정삼품 이상의 품계에 올림)할 것을 명하였다.” 위 내용은 《영조실록》 125권, 영조 51년(1775년) 7월 12일 기록입니다. 여기서 공시인(貢市人)이란 나라에 공물을 먼저 바치고 나중에 값을 타내는 계(契) 곧 공계원과 시전(市廛) 곧 시장 거리의 가게를 말합니다. 최근 정부는 전 국민에게 소비쿠폰을 지급하는 것과 함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일부 빚을 탕감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에 어떤 언론은 “혈세로 사적채무 탕감, 도박빚도 포함”이라며 부정적인 기사를 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영조 임금이 거리 가게의 빚을 탕감해 준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또 《세종실록》 106권, 세종 26년(1444년) 10월 9일 기록에는 세종 임금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은사라는 것은 임금된 사람이 전날의 죄악을 탕감해 씻어주어서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자는 것이니, 사소한 물건을 훔쳐 간 자까지 모조리 용서해 주지 아니함은 옳지 못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 자영업자의 빚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환상적 탁족 - 복효근 한여름 염천을 피해 지리산 뱀사골 계곡에 발을 담갔다 물에 잠긴 발을 사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쯤으로 보셨을까 이동순 시인께서 '환상적 탁족'이라 댓글을 달았다 기쁨의 상한선을 탁족에 두셨다니 시인이 누릴 수 있는 환상이 거기까지라는 듯 거기를 벗어나면 환상이 아닐 수 있다는 갓끈을 씻거나 발을 씻거나 그 어름까지가 시인이라는 뜻이었을까 지난 7월 7일은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한다는 소서(小暑)였으며, 오는 7월 20일은 초복(初伏), 7월 30일 중복이 다가온다. 삼복 때는 한해 가운데 가장 더운 때로 이를 '삼복더위'라 하는데 찬바람틀(에어컨)도 없고, 옷을 훌훌 벗어버릴 수도 없는 조선시대 선비들은 어떻게 가마솥더위를 견뎠을까? 우선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 내라는 뜻에서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표(氷票)를 주어 관의 장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 가게 하였다. 또한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하고 복날에 고기 따위로 국을 끓여 먹는 복달임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 내기도 하였다. 한편, 여인들은 계곡물에 머리를 감거나 목욕하면 풍이 없어지고 부스럼이 낫는다고 생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느 곳에서는 잡초 취급 받는다지만 우리나라에선 귀한 만큼 대접받는 큰바늘꽃 장마철 갑자기 불어난 급한 계류에 몸져누워서도 아름다운 자태 잃지 않고 아름다운 꽃 피워주니 강인한 생명력에 찬사를 보내며 바라다본다.” 위 시는 민경희 시인의 <큰바늘꽃 시찬(詩讚)> 일부입니다. 시인은 갑자기 불어난 급한 계류에 몸져누워서도 아름다운 자태 잃지 않고 아름다운 꽃 피워준다고 노래합니다. 지난 6월 12일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울릉군청과 함께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큰바늘꽃 200개체를 울릉도에 옮겨심는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울릉도는 도로와 시설물 건설 등으로 인해 서식지가 훼손되어 큰바늘꽃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곳이어서, 이번에 큰바늘꽃 200개체를 옮겨심기로 한 것입니다. 큰바늘꽃은 바늘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7~9월에 키 100cm~200cm 꽃을 피우고, 울릉도를 비롯해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의 하천 또는 계곡 주변에 제한적으로 자라며, 나라 밖에서는 러시아,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합니다. 하지만, 큰바늘꽃은 꽃이 아름다운 까닭에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채취하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장영실(蔣英實)은 그 아비가 본래 원(元)나라의 소주(蘇州)ㆍ항주(杭州)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 (가운데 줄임) 이제 자격궁루(自擊宮漏))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마는, 만약 이 사람이 아니더라면 암만해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들으니 원나라 순제(順帝) 때에 저절로 치는 물시계가 있었다 하나, 그러나 만듦새의 정교함이 아마도 영실의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위는 《세종실록》 61권, 세종 15년(1433년) 9월 16일 기록된 세종의 말로 세종이 기생의 아들 장영실을 쓰게 된 얘기를 하고 있으며, 장영실이 원나라 것보다 훨씬 정밀한 저절로 치는 물시계를 만들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세종의 용인술은 뛰어난 과학 영재 장영실을 발탁하고 장영실이 세종시대의 과학화를 이끌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종의 뛰어난 지도력은 ‘집현전’에서 그 상징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종은 자신도 학문이 뛰어난 지도자였지만, 홀로 결정하려고 하지 않았음은 물론 집현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송곳으로 자기의 눈을 찔러 애꾸가 된 화원 최북의 그림 가운데는 ‘풍설야귀인(風雪夜歸無人)’이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겨울밤, 귀가하는 나그네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헤치고 의연히 걸어갑니다. 어쩌면 가슴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저 흉흉한 바람이 최북의 고달픈 인생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 그림이 거칠게 보이는 것은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닌 손가락에 먹물을 묻혀서 그린 그림인 ‘지두화(指頭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두화는 손가락만 쓰는 것이 아니라 손톱, 손바닥, 손등을 써서 그리는데 털로 만든 붓인 전통적인 모필화(毛筆畵)와는 달리 파격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독창법인 화풍입니다. 지두화는 원래 8세기 중국 당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며, 18세기 초에 청나라의 화가 고기패(高其佩)에 의해 크게 유행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화가로는 강세황(姜世晃)ㆍ허필(許珌)ㆍ심사정(沈師正) 같은 이가 있습니다. 원래 조선시대 묵화를 그리는 도구로는 붓을 썼는데 흔히 쓰던 붓으로는 염소털로 만드는 양호필(羊毫筆)이 있었지요. 그밖에 아기가 태어난 6달쯤 뒤에 처음 자르는 배냇머리로 만드는 ‘태모필(胎母筆)’이 있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가유산청은 공주시와 함께 지난 6월 14일 충남 공주시 마곡사에서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의 국보 승격 지정을 기리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은 고려후기에 조성된 5층 석탑으로, ‘풍마동(風磨銅)’이라고도 불리는 길이 1.8m의 금동보탑을 옥개석 위에 올려 이른바 ‘탑 위에 탑’을 쌓은 매우 특수한 양식을 갖췄습니다. 특히, 금동보탑은 중국 원나라 등에서 유행했던 불탑 양식을 재현하고 있으며, 제작기법이 정교하고 기술적,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석탑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당시 불교문화의 국제적인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서 값어치가 매우 크다는 평가입니다. ‘풍마동(風磨銅)’은 금보다 귀하고 바람에 마모되면 더욱 빛나는 까닭에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조선후기 문신 이의봉(1733~1801)이 1761년 북경의 궁궐을 방문한 뒤 쓴 《북원록(北轅錄, 북경 견문록)》에는 “십자각에는 금정(金頂, 금빛으로 빛나는 정수리)을 더해 놓아 빛이 유난히 찬란했는데, 이는 금이 아니요 이른바 풍마동(風磨銅)으로 외국의 소산이었다. 우리나라 마곡사(麻谷寺)에도 그러한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