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경운박물관(관장 조효숙)은 지난해 9월 26일(목)부터 오는 2월 28일(금)까지 경운박물관에서 《기억하고 추억하는》 소장품 전시를 열고 있다. 경운박물관은 근대 복식 전문박물관으로 경기여고 동문의 자원봉사와 후원을 통해 그간 41회의 기획전시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경기여고 동문과 일반인의 유물 기증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4회의 기증전도 열었는데, 지난 20여 년 동안의 전시를 되돌려보고(Rewind)ㆍ다시 생각하는(Remind) 전시 곧 그동안 선보였던 소장품들 가운데 110여 점을 3개 주제로 나누어 기획전시실에 전시하고 있다. 전시 구성은 1부 ‘관람객이 사랑한 기증품’, 2부 ‘특별전을 빛냈던 재현품’, 3부 ‘박물관이 복원한 출토복식’이다. 박물관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박상진 학예사는 반갑게 맞아주면서 테블릿피시를 활용하여 상세한 설명을 이어나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큰 공부를 하게 되었다. 1부 ‘관람객이 사랑한 기증품’에서는 우선 박물관 대표 소장품인 오학병화도모담(五鶴甁花圖毛毯)을 소개한다. 우리에겐 ‘카펫’으로 알려졌고, 천일야화 가운데 ‘나르는 마법의 카펫(magic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02년 전(1923년) 오늘은 김상옥 의사가 천여 명의 일제 경찰을 상대로 싸우다 순국한 날입니다. 의사는 당시 일제 경찰력의 중심부이자 독립운동가 검거와 탄압의 상징이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뒤 신출귀몰한 모습으로 경찰을 따돌립니다. 그 뒤 삼판동(오늘의 후암동)에서 일전을 치른 다음 또다시 포위망을 뚫고 효제동 동지의 집에 숨었습니다. 이후 의사의 은신처를 찾은 일경은 경기도 경찰부장의 지휘 아래 시내 4개 경찰서에서 차출한 사백여 명의 무장경찰을 동원하여 1월 22일 새벽 5시 반 무렵 김 의사가 숨은 집을 겹겹이 포위하였지요. 이에 김상옥 의사는 양손에 권총을 들고 인근 집들의 지붕을 타고 넘나들며 무장결찰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습니다. 조국독립의 염원을 담은 의사의 총구는 쉴 새 없이 불을 뿜었고 대한 남아의 기백을 여지없이 떨친 의사에게 일경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3시간여의 치열한 전투 끝에 10여 명의 일경을 사살하였으나 탄환이 떨어지자, 마지막 탄환이 든 권총을 머리에 대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결 순국하였지요. 당시 나이 34살이었던 김상옥 의사는 일제 경찰과 총격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장상훈)은 2025년 을사년(乙巳年) ‘뱀의 해’를 맞이해 《한국민속상징사전》 ‘뱀 편’을 펴냈다. 무서운 동물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많은 사람이 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뱀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함께 살아왔으며,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사전은 한국 민속문화 속에 담긴 뱀에 대한 다양한 관념과 의미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ㆍ해설했다. □ 뱀의 생태적ㆍ문화적 이해를 위한 종합해설서 뱀은 다른 동물에 견줘 친근하게 여겨지진 않지만, 풍요와 다산, 재물을 상징한다. 이번 사전은 뱀에 대한 두려움, 호기심, 경외심 등 뱀의 다양한 상징과 의미를 민속문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게 구성했다. 그래서 생태부터 설화, 민속신앙, 세시풍속, 민간요법, 생업, 풍수, 문헌자료로 범주를 나눠 뱀과 관련한 흥미로운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와 함께 사진, 유물, 그림 등 시각 자료도 수록해 내용의 깊이와 이해를 높였다. □ 뱀의 상징 이해를 위한 생태적 특징을 정리 뱀의 상징을 이해하려면 뱀의 생태적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전은 한국에 서식하는 구렁이, 누룩뱀, 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예조에서 아뢰기를, "중국어를 배우는 것은 큰 나라를 대하는 데 있어 먼저 처리해야 할 요긴한 일지만 책이 드물어 학자가 쉽게 얻어 보지 못하니, 청컨대 우선 《박통사(朴通事)》와 《노걸대(老乞大)》를 각각 1벌씩 황해도와 강원도에 나누어 보내어 판각하게 하고, 교서관(校書館)에 보내어 찍어서 널리 반포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는 《세조실록》 세조 4년(1458년) 1월 19일 기록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외교관의 한 사람인 역관이 있어서 외국과 교역하고 소통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인 사역원(司譯院)에서는 4대 외국어인 중국어,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를 가르쳤고 외국어 학습교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조 4년 당시 외국어를 가르치는 책이 드물어 이에 대한 대책을 낸 모양입니다. 조선시대 중국어 교재는 《노걸대(老乞大)》와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가 있고, 일본어는 《첩해신어(捷解新語)》, 몽골어는 《첩해몽어(捷解蒙語)》,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 등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노걸대의 ‘노’는 우리말의 ‘씨’, 영어로 하면 ‘미스터’쯤 되는 말이고 ‘걸대’는 몽골인이 중국인을 가리킬 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다 지나간다 - 김용택 눈보라도 지나가고 추위도 지나가고 그렇게 우리의 아픔도 다 지나간다 그래서 오늘도 산다 얼마 전 섭씨 영하 10도가 넘는 혹한이 있었다. 지금 잠시 추위가 주춤하지만, 아직 이틀 뒤엔 절기 대한이 남아 있어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에 몸을 움츠리는 때다. 더구나 대한민국엔 계엄령 포고 여파로 온 국민이 움츠러든 삶을 살고 있다. 환율이 급등하고 주식장이 폭락하고, 장사가 되지 않는 등 경제가 엉망이 되었다고들 아우성이다. 이제 겨우 대통령이 체포 구금되었지만, 아직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욱 추운 겨울을 살았을 조선시대 선비들은 겨울을 어찌 났을까? 선비들은 여든한 송이의 매화가 그려진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에 색칠을 해가며 매화가 다 색이 칠해질 때쯤이면 입춘 곧 봄이 온다는 희망으로 살았다. 이렇게 옛사람들은 “아홉 번째 아홉 날이 지나면 농사짓는 소가 밭을 갈기 시작한다네.”라고 생각하며, 추위도 견뎌낸 것이다. 여기 김용택 시인은 그의 시 <다 지나간다>에서 “눈보라도 지나가고 / 추위도 지나가고 / 그렇게 / 우리의 아픔도 / 다 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적을 막는 도구는 염초(焰硝)보다 절실한 것이 없는데 성절사(조선시대 중국의 황제나 황후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던 사절)나 천추사(조선시대 중국에 파견되는 사신)가 모두 무역하여 오지 못하였으니 매우 염려스럽다. 이번에 무역해 오는 사람들이 마음을 다해 주선하여 많이 무역하여 오면 그 정성을 가상하게 여겨 각별히 상을 주어 타인에게 권면이 되게 할 것이다. 이언광(李彦光)은 본 아문의 정직을 제수하고 최의홍(崔毅弘)은 알맞은 직위를 내려서 모두 예외로 우선 중국에 가서 염초를 사오게 하라.“ 이는 《광해군일기[정초본]》 24권, 광해 2년(1610년) 1월 16일 기록입니다. ‘염초’는 고려ㆍ조선시대에 사용하던 화약의 핵심 원료로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심해지자, 나라에서는 이들의 배를 불태울 수 있는 화약의 제조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특히 최무선은 화약 제조의 핵심 기술인 염초 제조법을 원나라 기술자로부터 알아냄으로써 화약을 자체적으로 제조할 수 있게 되었지요. 하지만, 한국 역사상 처음 화약을 개발한 고려 후기의 무기 발명가 최무선은 1380년 왜선 500여 척이 침입해 약탈하자 심덕부, 나세와 함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장상훈)은 한국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한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해 《한류문화사전》을 펴냈다. 이 사전은 한국의 의식주 생활부터 주요 K-콘텐츠의 형성 배경과 주목 요인을 담아 한류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도록 453개의 올림말과 800장의 사진으로 구성한 첫 한류 전문 백과사전이다. 한류문화 이해를 위한 종합해설서 《한류문화사전》은 한류의 근원인 민속문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가 열광하는 K-팝ㆍ드라마ㆍ영화ㆍ웹툰에서부터 음식ㆍ패션ㆍ장소ㆍ정서ㆍ호칭까지 한류의 다양한 주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또한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이탈리아에서 온 요리전문가 파브리(Fabrizio Ferrari), 네덜란드 출신 한국 여행 전문가 바트(Van Genugtenbart) 등 나라 안팎 전문가 129명이 참여해 사전의 신뢰성과 학문적 깊이를 더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시각 자료를 제공해 대중적인 흥미를 끌어올리고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방탄소년단(BTS)>, <오징어게임> 등 ‘민속사전’에 수록 K-팝ㆍ드라마ㆍ영화ㆍ웹툰 등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한류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요즈음 기사나 글을 보면 기자나 교수, 작가 같은 지식인들이 국어를 배웠나? 싶을 정도로 엉터리로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하면 될 것을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라고 씁니다. 여기서 ‘불구하고’는 일본말에서 가져온 것으로, 없으면 더 명확한 글이 되는데도 쓸데없이 붙이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에 위치하고 있다.”라고 씁니다. 하지만 여기서 ‘위치’는 뱀을 그리고서 있지도 않은 발을 그려 넣는 ‘사족(蛇足)’이 됩니다. 그저 “~에 있다.”라고 하면 되지요. 한 기관이 보내온 보도자료를 보면 “이외에도, 거주하다, 개최하다, 외부, 전했다, 게시한다, 휴관한다”와 같이 버릇처럼 한자말을 씁니다. 이는 “이 밖에도, 살다, 열다, 바깥, 말했다, 올린다. 쉰다”처럼 바꿔 쓸 수 있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외면 합니다. 특히 ‘전한다’는 다른 사람 말을 옮길 때 써야 함에도 직접할 때 써서 잘못된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이 잘못 쓰는 말에 ‘너무’도 있습니다. ‘너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해진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고 풀이하여 부정적인 상황을 꾸며주는 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경북 문경에 있는 ‘문경옛길박물관’에 가면 국가민속문화재 <문경 최진일가묘 출토복식>이 있습니다. 이 유물은 지난 2006년 경북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전주최씨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최진(崔縝)과 그 부인, 그리고 후손으로 추정되는 3기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은 중치막, 액주름(겨드랑이 아래 주름이 잡혀 있는 곧은 깃의 옷), 족두리형 여모, 저고리, 바지 등 모두 65점이지요. 특히 ‘중치막(中致莫)’과 ‘족두리형 여모(女帽)’는 지금까지 발굴된 출토복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치막은 사대부가 사람들이 나들이할 때 입던 옆트임이 있는 곧은 깃의 도포(袍)로,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의 것이었으나 이 중치막은 임진왜란 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시기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문경 최진 일가묘 출토복식’은 16세기 중후반기 남녀복식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 이미 지정된 국가민속문화재 '문경 평산 신씨묘 출토복식'과 함께 당시 지역의 사회문화상을 엿볼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문경옛길박물관”은 과거길로 유명한 문경새재를 조망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금 해가 새로 바뀌어 낮이 점점 길어지고 양기가 돌아와 만물이 화기를 머금고 있는 이때 만백성을 위해 자나 깨나 말없이 축원하는 것은 농사가 잘되라는 것이다. (가운데 줄임) 세자는 나라의 근본이고 백성도 나라의 근본이며 백성이 편안해야만 나라가 편안한 법이다. 이것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이치로서 혼연일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나라의 영원한 운명을 비손하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정조실록》 32권, 정조 15년(1791) 1월 1일 치 기록으로 정조 임금은 “백성이 편해야 나라가 편하다.”라고 강조합니다. 이어서 정조는 “농사철을 빼앗지 말고 생업을 흔들지 말며 수시로 살펴서 도와주는 것은 지방관의 직분이고, 볕이 나야 할 때는 볕이 나고 비가 와야 할 때는 비가 와 낮은 데는 습하지 않고 높은 데는 메마르지 않게 되는 것은 나 한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라며 지방관을 독려하고 자신에게도 다짐합니다. 지난해 연말 우리는 갑작스러운 계엄령과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로 인해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고, 내일을 확실히 알 수 없는 그 고통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