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滿堂歡樂不知暑 왁자지껄 떠드는 이들 더위를 모르니 誰言鑿氷此勞苦 얼음 뜨는 그 고생을 그 누가 알아주리. 君不見 그대는 못 보았나? 道傍갈死民 길가에 더위 먹고 죽어 뒹구는 백성들이 多是江中鑿氷人 지난겨울 강 위에서 얼음 뜨던 자들이란 걸.” 위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얼음 뜨는 자들을 위한 노래(鑿氷行)”이란 한시 일부입니다. 입추가 지났지만, 말복이 아직 남아 불볕더위가 여전합니다. 예전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엔 냉장고 대신 얼음으로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한겨울 장빙군(藏氷軍)들이 한강에서 얼음을 떠 동빙고와 서빙고로 날랐는데 이들은 짧은 옷에 맨발인 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저장된 얼음은 한여름 궁궐의 임금과 높은 벼슬아치들 차지였는데 그들은 얼음을 입에 넣고 찌는 듯한 여름에도 더위를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때 길가에는 굶주리고 병들은 채 죽은 백성들의 주검이 나뒹굽니다. 그리고 그 죽은 백성은 지난겨울 맨발로 얼음을 뜨던 백성이었음을 그들은 알 리도 없고 관심도 없음을 시인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김창협은 숙종 때 대사성 등의 관직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국의 전통 목조건축물에 여러 가지 색으로 무늬를 그려 아름답고 장엄하게 꾸미는 ‘단청(丹靑)’이 있습니다. 단청하는 주목적은 건물이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궁궐, 절, 서원 건축 등 공적이고 권위를 살려야 하는 건축물에 많이 쓰였습니다. 실용적인 측면에선 나무에 벌레가 먹거나 썩지 않게 하려는 것과 또 한국에서 건축재로 흔히 쓰이는 소나무의 균열이나 흠을 가리기 위한 것으로 대체로 30~40년 정도마다 다시 그리곤 하였지요. 단청의 종류에는 가칠단청, 긋기단청, 모로단청, 금(錦)단청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칠단청’은 무늬 없이 단색으로만 칠한 것으로 꾸밈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종묘와 남한산성 행궁 등에 쓰였지요. 또 ‘긋기단청’은 검은색인 먹과 흰색인 분을 복선으로 그어 마무리한 단청입니다. 직선으로 인해 훨씬 곧은 느낌이 나며, 가칠단청과 함께 검소한 느낌을 주는데 사당이나 부속건물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로단청’은 목재 끝부분에만 단청을 그리고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합니다. 모로단청은 나무가 썩지 않게 하려는 목적 말고도 방화나 벽사의 상징적 의미와 함께 건물을 화려하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도깨비와 함께 막거리를 - 함민영 꿈에서 도깨비가 나랑 씨름하자고 하네 아홉 번 지고 할머니가 일러준 게 생각나서 열 번째 왼발로 감아 넘기니 넘어갔네. 그 도깨비 막걸리를 좋아하고, 메밀묵과 수수팥떡도 좋아한다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절대 해코지하지 않으며 도깨비는 오히려 사람에게 신통력을 부려 도와준다네 그런데 문득 내 앞에 도깨비가 나타나 함께 막걸리를 마셨으면 좋겠네. 열대야에 잠 못 드는 한여름이다. 이때쯤이면 어릴 적 긴긴 여름밤에 모깃불 놓고, 옥수수를 쪄먹으며 옛날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따위를 듣던 일들이 생각난다. 그때 들었던 도깨비는 '키가 팔대장 같은 넘', '커다란 엄두리 총각', '다리 밑에서 패랭이 쓴 놈', '장승만한 놈'이라고 했다. 도깨비는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전한다. 심술을 부리기도 하는 데 힘이 장사며, 신통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거나 망하게 하기도 한단다. 이렇게 신통력을 가졌음에도 우직하고 소박하여 인간의 꾀에 넘어가는 바보 같은 면도 있다. 또 사람의 간교함에 복수를 하기도 하지만 되레 잘되게 도와주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제가 8년 전에 펴낸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 책에는 명재 윤중 선생도 있습니다. 선생은 가을걷이한 뒤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며칠 동안 나락을 쌓아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곤 밤에 마을 사람들이 가져가도 일부러 모른 체 했지요. 그것은 밤에 가져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인데 혹시 머슴들이 누가 가져갔는지 말하면 모른 체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선생은 부자가 양잠까지 손을 대면 가난한 사람이 먹고살 일이 막막해진다는 생각에서 자기 집안에서는 양잠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선생의 지론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 윤증 선생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로서 이름이 높았으며, 당시 노론의 영수 송시열과 대립해 소론의 영수로 추앙을 받았던 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종과 숙종으로부터 지평, 호조 참의, 대사헌, 이조 판서, 우참찬, 좌찬성, 우의정 등 20번이 넘게 관직을 제수받았지만, 그는 한 번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아 ‘백의정승(白衣政丞)’ 곧 관복을 입지 않은 정승이라고 불렸을 정도입니다. 그런 선생은 책력 앞머리에 《주자대전(朱子大全)》의 목차 편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사단법인 한국연기예술학회가 주최하고 가프(Glocal Acting Fstival) 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제11회 가프(Glocal Acting Fstival) 공연예술제가 8월 16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9월 2일 폐막식까지 금천뮤지컬센터에서 열린다. 가프(Glocal Acting Fstival)는 연기로 공연예술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세계화의 방향성 모색을 통해 글로컬(Glocal)시대 공연예술(연극ㆍ무용ㆍ뮤지컬ㆍ마임 등)의 융합으로 한국연기예술의 새로운 활로 개척을 목적으로 둔다. 이번 공연예술제에서는 20개의 팀(장막극 8팀, 단막극 12팀)이 뽑혀 다양한 장르의 연기 기반 공연예술이 8월 17일부터 9월 2일 폐막식까지 열띤 향연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특히, 이번 11회 가프(GAF)공연예술제에서 뽑힌 팀은 서울특별시장상, (사)한국연극협회 이사장상, 서울연극협회 회장상, (사)한국연출가협회 이사장상, 한국문화에술회관연합회장상, (사)한국연기예술학회장상, 가프(GAF)조직위원회 위원장상, 가프(GAF)예술감독상을 줄 예정이다. 이신영(가프(GAF)조직위원회 위원장, 성결대학교 교수)은 "공연자와 관객 모두에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당신은 나를 만남으로 편한 것보다 고(苦)가 많았고 즐거움보다 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속히 만날 마음도 간절하고 다시 만나서는 부부의 도를 극진히 해보겠다는 생각도 많습니다만 나의 몸은 이미 우리 국가와 민족에게 바치었으니 이 몸은 민족을 위하여 쓸 수밖에 없는 몸이라 당신에 대한 직분을 마음대로 못하옵니다.”- 1921년 7월 14일 당신의 남편 (안창호) - 이는 도산 안창호(1878~1938)선생이 부인 이혜련(1884~1969) 지사에게 쓴 편지글 일부다. 안창호ㆍ이혜련 부부는 혼인 생활 35년 가운데 함께 산 기간은 13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 안창호 선생이 집을 떠나 중국 등지에서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동안 부인 이혜련 지사는 다섯 자녀 양육과 동시에 가정의 경제는 물론 대한여자애국단 등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남편 못지않게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부인 이혜련 지사와 같은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숱한 부부독립운동가들이 안창호ㆍ이혜련 부부처럼 시련을 극복해나가면서 조국 광복의 찬란한 꽃봉오리를 피웠지만 이들을 다룬 변변한 책도 없다. 그동안 여성독립운동가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五六월 또약볕에 살을 찌는 한 더위로 뭇인간은 어쩔 줄을 모르고 허덕이더니 오늘이 립추(立秋), 제 그러케 심하던 더위도 이제부터는 한거름 두거름 물러가게 되엇다. 언덕우 밤나무가지와 행길옆 느티나무위에선 가을을 노래하는 매암이 소래도 차(寒)가고 아침저녁 풀숲에는 이슬이 톡톡하게 나려 인제 먼 마을 아낙네의 옷 다듬는 소리도 들려올것이요. 삼가촌(三家村) 서당아해들의 글읽는 소리도 랑낭히 들려올 때다. (가운데 줄임) 오늘 아침쯤 그 어느집 우물가에 오동잎새가 떨어젓는지 정히 궁금하다." 위는 동아일보 1938년 8월 9일 “지하의 궁음(窮陰)이 나와 염제(炎帝,무더위)를 쫓는다” 기사 일부인데 마지막 단락의 “어느집 우물가에 오동잎새가 떨어지는지 궁금하다”라는 말이 참 정겹습니다. 아직 불볕더위가 극성이지만, 내일은 24절기의 열셋째 입추(立秋)입니다. 이제 절기상으로는 가을철로 들어서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 절기로 봅니다.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입하(立夏)부터 입추까지 백성들이 조정에 얼음을 진상하면 이를 대궐에서 쓰고, 조정 대신들에게도 나눠주었다.”라고 나와 있는데 이를 보면 입추까지는 날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 열 치 열 - 곽병희 덥다고 나무 그늘에 숨었지 에어컨 이글루 속으로 선풍기 부채 속으로 피신하였지 하지만 용감하게도 땡볕의 여름을 혼자 대적하는 이 있어 이글거리는 정열로 스스로 불타오르는 이 있어 저 공사장에 흠뻑 젖는 등짝들같이 저 사무실에 바삐 전화 받는 손들같이 그 가로수의 백일홍들 있어 여름강을 건네주는 나룻배 있어 요즈음 우리는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를 알리는 기상청의 재난문자를 받는 날이 많아진다. 여기서 하루 가장 높은 기온이 33도 이상인 때가 이틀 이상 이어지면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인 때가 이틀 이상 이어지면 ‘폭염경보’를 보낸다. 지금처럼 불볕더위가 한창일 때는 복중(伏中)으로 중복이 지나고 말복이 눈앞에 다가온 때다. 그런데 최남선의 《조선상식》에는 이 복날을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서기제복’에서 '복(伏)'은 꺾는다는 뜻으로 복날은 더위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위를 꺾는 날이라고 보는 것이다. 에어컨은 물론 옷을 훌렁훌렁 벗어젖힐 수도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복달임’ 곧 이열치열로 더위를 꺾으려 했다. 특히 이 무렵 이열치열 음식으로 ‘용봉탕’이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6월 20일 문화재청은 종묘 신실에 봉안되어 전승된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御寶ㆍ御冊ㆍ敎命)」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습니다. 보물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은 조선이 건국한 1392년부터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이후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1910년까지 조선왕조의 의례에 사용된 인장과 문서입니다. 어보ㆍ어책ㆍ교명은 해당 인물 생전에는 궁궐에 보관하였고, 죽은 뒤에는 신주와 함께 종묘에 모셔져 관리되었지요. 어보란 임금ㆍ왕세자ㆍ왕세제ㆍ왕세손과 그 배우자를 해당 지위에 임명하는 책봉 때나 임금ㆍ왕비ㆍ상왕(上王)ㆍ왕대비ㆍ대왕대비 등에게 이름을 지어 올릴 때 만든 의례용 도장이며, 어책은 어보와 함께 내려지는 것으로 의례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의미,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교명은 왕비ㆍ왕세자ㆍ왕세자빈ㆍ왕세제ㆍ왕세제빈ㆍ왕세손ㆍ왕세손빈 등을 책봉할 때 내리는 훈유문서(訓諭文書)로 그 지위의 존귀함을 강조하며, 책임을 다할 것을 훈계하고 깨우쳐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습니있다.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가 없는 독특한 왕실문화를 상징하는 유물로서 500여 년 동안 거행된 조선 왕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벽 위에서 종소리가 사람을 대신 부르니 / 통속에서 전하는 말 조금도 어그러짐이 없네.” 위는 조선 후기 문인 김득련(金得鍊)이 쓴 한시집 《환구음초(環璆唫艸)》에 있는 내용으로 서구를 방문했다가 전화기를 보고 쓴 시입니다. 《환구음초》는 1896년 민영환 일행이 러시아황제 대관식에 참석하고 중국ㆍ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을 대한민국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돌아볼 때 참사관으로 따라간 역관 김득련(金得鍊)이 보고 들은 것을 쓴 책으로 ‘지구를 돌며 읊은 시’라는 뜻이 담겼지요. 이 책에는 “카나다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구천리를 가면서”, “뉴욕의 부유하고 번화함이 입으로 형언할 수 없고 붓으로도 기술할 수 없다”, “뉴욕 전기박람회에 가서 보니 세상의 많은 물건이 모두 전기 기계로 만들어졌다. 관현은 저절로 연주되고, 차와 떡도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가장 기이한 것은 오백 리 밖에 있는 큰 폭포의 소리를 끌어와 물그릇 속에 담아 놓은 것이다. 귀를 기울여 들으면 사람을 오싹하게 한다.”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민영환은 자결하기 9년 전 김득련, 윤치호 등 일행을 이끌고 일곱 달 동안 여덟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