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제 11월 13일 저녁 6시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아뜰리에에서는 <신영희 명창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가 열렸다. 이는 지난주인 11월 6일에 이은 공연이다. 100여 석의 작은 공연장임에도 객석을 꽉 채우고도 서서 관람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로 송파구민들의 국악에 관한 사랑은 대단했다. 아니 어쩌면 신영희 명창에 대한 인기가 대단했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신영희 명창은 “복된 땅 송파에 터를 잡은 지 어느덧 40년이 가까워집니다. 지난 70여 년 세월 동안 우리 소리를 지켜오며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현장 곳곳에서 많은 보람도 느꼈습니다. 아름답게 물든 석촌호수에서 우리 가락의 멋과 흥을 함께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라고 모시는 말씀을 했다. 이영태 명창의 구수한 해설과 함께 무대는 먼저 신은지ㆍ김현실ㆍ황애경ㆍ홍설희ㆍ유태겸 5인의 앉은반 사물놀이로 시작했다. 이어서 소리꾼 김명희ㆍ김혜영ㆍ김백송ㆍ이주은ㆍ노은주ㆍ한아름ㆍ김란이ㆍ김지현 등이 동백타령, 들국화, 풍년가 등 남도민요를 불렀다. 시작을 흥겨운 사물놀이와 민요로 풀고 난 다음 드디어 신영희 명창의 시간이다. 원래 신영희 명창은 판소리 춘향가 대목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요즘 서울 시내에는 갑자기 “오적회관”이란 간판이 등장했습니다. 생소한 말이라 자세히 보았더니 오징어 그림이 그려졌고, 돌판오징어, 오징어튀김 전문점이란 글이 있어 오징어 요리를 전문하는 음식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다양한 요리법으로 오징어를 즐겨 먹는데 회, 조림, 국물 요리, 젓갈, 마른오징어까지 그 쓰임새가 다양합니다. 특히 마른오징어는 전 세계에서 일본과 한국 사람들만 먹는 것으로 알려졌지요. 그런데 왜 갑자기 ‘오적’이란 말이 등장했을까요? 오징어의 한자말은 오적어(烏賊魚)입니다. 오징어란 녀석은 물 위에 죽은 듯이 떠 있다가 날아가던 까마귀가 이를 보고 죽은 줄 알고 쪼려고 할 때 발로 감아 잡아서 재빨리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다는 설화가 있는데 이를 따 까마귀 ‘오(烏)’ 자와 도둑 ‘적(賊)’ 자를 써서 오징어도둑이라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또 다른 별명 묵어(墨魚)는 먹물을 지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오징어와 관련된 말에는 ‘오징어묵계’라는 것도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 이시필(李時弼)이 쓴 요리서 《소문사설(謏聞事說)》에 보면 바로 오징어묵계 얘기가 나옵니다. 이 책에 보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제(11월 11일) 저녁 7시 30분,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네오트레디셔널 그룹 '매간당(대표 유예진)'의 신작 <초면인 세계에 눈 뜨다>가 공개됐다. 2단 무대가 열리고, 무대에는 국악에 현대(컨템포러리) 발레와 매체예술(미디어아트)을 융합한 종합예술 그 자체였다. "왜 가야금은 손으로, 대금은 숨으로, 해금은 활로, 그리고 거문고는 술대로 연주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이번 공연은, 연주의 근본적 의미와 방식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한다. 이들은 연주자와 악기, 연주 도구에 관한 깊은 탐구를 통해 기존 연주법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음악적 표현을 찾아 나섰다. 한 대의 가야금에 세 연주자가 함께 앉아 혼연일체가 되어 연주한다. 동시에 정가 목소리로 담아내는 구음은 저 가슴 깊은 곳을 요동치게 했다. 그리고 무대를 감싸는 현대 발레의 몸짓은 관객의 눈을 떼지 못하도록 한다. 무대는 패션쇼의 런웨이를 연상케 하면서 연주자가 춤꾼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연주하고 춤춘다. 하지만, 각자 다른 것이면서도 그 런웨이 위에서 그려지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려는 일치된 모습으로 나간다. 사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磻溪隨錄)》을 펴내되, 단지 3건만 인쇄하여 바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1건은 곧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보내어 판본(板本)을 새기게 하고, 다섯 군데 사고(史庫)에 간직할 것도 또한 남한산성에서 인쇄해 가지고 오게 하였다.” 이는 《영조실록》 113권, 영조 45년(1769년) 11월 11일 기록입니다. 《영조실록》에도 오르고 임금이 직접 펴내도록 명한 《반계수록》은 조선 중기의 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쓴 책입니다. 유형원이 살았던 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나라 재정의 바탕을 이루었던 전정(田政, 토지에 부과되던 조세)ㆍ군정(軍政, 병역 대신 옷감을 대신 받던 일)ㆍ환정(還政, 흉년이나 춘궁기에 가난한 이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 때에 되받던 제도)의 문란까지 겹쳐 농민들의 삶은 피폐하였습니다. 유형원은 이러한 조선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그 폐단을 바로잡고자 노력한 책 《반계수록》을 쓴 것입니다. 책 이름에서 “반계”는 그의 호이고, 수록(隨錄)은 “붓 가는 대로 쓴 기록”이란 뜻이지만, 그는 결코 한가롭게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치열하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암자에서 종이 운다 - 함민복 종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는 것은 종이 속으로 울기 때문이라네 외부의 충격에 겉으로 맞서는 소리라면 그것은 종소리가 아닌 쇳소리일 뿐 종은 문득 가슴으로 깨어나 내부로 향하는 소리로 가슴 소리를 내고 그 소리로 다시 가슴을 쳐 울음을 낸다네 그렇게 종이 울면 큰 산도 따라 울어 큰 산도 종이 되어주어 종소리는 멀리 퍼져 나간다네 오래전 ‘한국의 범종’이라는 이름의 녹음테이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소리가 녹음돼 있었지만, 그 가운데 “성덕대왕신종”의 울림을 듣고는 다른 종소리는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성덕대왕신종’ 종소리는 장중하면서도 맑은소리와 유난히 길면서도 신비스러운 소리를 들려주어 듣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독일 고고학자 켄멜은 이 종을 일컬어 “한국 제일의 종이 아니라 세계 으뜸 종”이라고 평했다. 오직 우리나라 종에만 있는 독창적인 것이 바로 종 윗부분에 있는 음관(音管)과 종구(鐘口) 바로 밑에 파인 명동(鳴洞)이라고 한다. 음통(音筒) 또는 용통(甬筒)이라고도 하는 음관은 종의 음질(音質)과 음색(音色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중독, 파멸의 지름길’이라는 주제로 이야기주제공원(스토리테마파크) 누리잡지(웹진) <담(談)> 11월호를 펴냈다. 최근 연예인 마약 문제로 사회가 시끄럽다. 사회에 물의를 빚는 마약과 도박 중독에 대해 조선 시대에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살피고, 바람직한 현대 사회를 위해 작은 실마리라도 던져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공무원과 노름꾼의 결탁 <노름으로 패가망신한 양반과 청부업자로 전락한 수령>에서 전경목 명예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한 양반의 탄원서를 통해 조선 후기 노름으로 인한 폐해와 노름꾼과 수령의 유착 관계 등을 이야기한다. 전라도 장수현에 살던 양사헌(梁思憲, 1858~1888)은 노름에 손을 댔다가 가산을 탕진했다. 노름빚 때문에 양사헌은 감옥에 갇혔는데, 그는 문득 노름은 불법 행위인데, 노름빚을 받아달라는 청원을 올린 자와 이를 용인한 수령도 모두 이상하다고 여겼다. 양사헌은 수령이 도박꾼의 부탁을 받고 노름빚 상환 청부업자가 된 것으로 의심했고, 자신이 노름빚을 다 갚았다는 사실을 관에서 증빙해달라고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전 교수는 어느 시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완성되었다. 임금이 화성 유수(華城留守) 조심태(趙心泰)에게 이르기를, "성을 쌓는 데에 든 비용이 거의 80만에 가까운데, 소중한 역사를 조금이라도 구차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본래 생각이었다. 이 책을 펴내 모든 사람이 성의 공사에 관한 본말을 분명히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는 《정조실록》 45권, 정조 20년(1796년) 11월 9일 기록으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완성되었다는 내용입니다. 《화성성역의궤》는 조선시대 화성유수부 시가지를 둘러싼 성곽 ‘화성(華城)’을 쌓은 경위와 제도ㆍ의식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조 18년(1794) 1월부터 정조 20년(1796) 8월에 걸쳐 쌓은 화성성곽은 큰 토목건축 공사로서 많은 경비와 기술이 필요하였으므로, 그 공사 내용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겨야 하겠다는 뜻에서 정조가 김종수(金鍾秀)에게 명을 내려, 1796년 9월에 시작하여 그해 11월 9일에 원고가 완성되었고 1801년(순조 1) 9월에 인쇄하였지요. 화성성곽은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장헌세자의 무덤을 1789년(정조 13) 10월 화산(花山: 지금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24절기의 열아홉 번째인 입동(立冬)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철로 접어드는 때지요.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놓고 한숨 돌리고 싶지만, 곧바로 닥쳐올 겨울 채비 때문에 또 바빠집니다. 입동 앞뒤로 가장 큰일은 역시 김장인데 예전 겨울 반찬은 김치가 전부일 정도여서 ‘김장하기’는 우리 겨레의 주요 행사였습니다. 이때쯤 시골에서는 아낙들 여럿이 우물가에서 김장용 배추를 씻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지요. 잘 담근 김치는 항아리를 땅에 묻어두고 위에는 얼지 않게 볏짚으로 작은 집을 만들어 보관했는데 여기서 꺼낸 김치의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입동 때는 김장 말고도 무말랭이나 시래기 말리기, 곶감 만들기, 땔감으로 장작 패기, 창문 바르기 등 집 안팎으로 겨울 채비로 바빴습니다. 하지만, 김남주 시인이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라고 노래했듯이 집집마다 겨울 채비로 바쁜 가운데도 날짐승들의 먹거리를 생각할 줄 아는 더불어 살려는 마음도 잊지 않았습니다. 농촌에서는 입동 전에 보리 씨를 뿌리는데 겨우내 땅속에서 추위를 견딘 보리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는 11월 11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네오트레디셔널 그룹 '매간당(대표 유예진)'의 신작 <초면인 세계에 눈 뜨다>가 공개된다. 현대(컨템포러리) 발레와 매체예술(미디어아트)를 융합한 이번 무대는 국악의 현대적 재해석을 기대하게 한다. 국악계의 신예로 주목받고 있는 매간당은 Neo(새로움)와 Traditional(전통)을 더한 '네오트래디셔널(NeoTraditional)'이라는 신장르를 개척해 온 3인조 그룹으로, 2023 전주세계소리축제 ‘소리프론티어’에 뽑히고 제16회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 대상(국무총리상)을 받은 바 있다. "왜 가야금은 손으로, 대금은 숨으로, 해금은 활로, 그리고 거문고는 술대로 연주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이번 작품은, 연주의 근본적 의미와 방식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담고 있다. 이들은 연주자와 악기, 연주 도구에 관한 깊은 탐구를 통해 기존 연주법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음악적 표현을 찾아 나선다. 런웨이를 닮은 무대에서 연주자와 무용수는 상호 소통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공간을 채운다. 하나의 가야금을 세 명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매간당의 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코끼리는 일본에서 바친 것인데, 임금께서 좋아하는 물건도 아니요, 또한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이 코끼리가 두 사람을 죽였기에 법에 따르면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마땅합니다. 또 한해에 먹이는 꼴은 콩이 거의 수백 석에 이르니, 청컨대, 주공(周公, 중국 주 왕조를 세운 무왕의 동생)이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낸 옛일을 본받아 전라도 섬에 두소서.” 이는 《태종실록》 제26권 태종 13년(1413년) 11월 5일 기록으로 이에 따르면 코끼리에 대해 병조판서 유정현이 임금에게 아뢴 내용입니다. 이에 임금이 웃으면서 그대로 따랐다고 하지요. 이 코끼리는 원래 태종 11년(1411년 ) 일본 왕이 우리나라에 없는 코끼리를 바쳐 이를 사복시(궁중의 가마나 말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서 기르게 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코끼리는 전라도 순천 앞바다의 장도라는 섬으로 귀양 갔다가 풀밖에 없는 섬을 떠나 다시 육지로 나와 전라도 관찰사의 책임으로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충청도로 옮겼는데 엄청나게 먹어대고 사람을 짓밟곤 하는 코끼리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동물원에서 잘 관리하고 있지만, 그때는 코끼리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