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78.2”와 “173”이 네가 아니냐? “1,2,3,4,5,6,7,8,9,10” 이 차례로 나와서 “너는 수자다”라고 한다 나는 “아니다”라고 했다 “22401580704***”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0433-256-2191”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78.2와 173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계속 아니라고 한다면 “78.2”에서 한 “10”쯤 덜어 내겠다고 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면 “173’에서 한 “10”쯤 낮추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허참 “10,9,8,7,6,5,4,3,2,1”이 거꾸로 나와서 ‘너는 수자다”라고 한다 이제는 “아니다”라고 못 하겠다 그러면 영영 지워버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0.0…” < 해 설 > 시인이 문명에 대한 회의와 비판은 기술문명의 발전에 따라 인간이 점점 왜소해지고 소외되어 설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인간의 소외는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공동이 앓고 있는 치유되기 어려운 병이다. 인간의 소외는 여러 가지 양상을 띠지만 시인은 “협박(1996. 11. 10) ―작품39”에서 나름대로 숫자에 의한 인간의 소외를 심각하게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지금 회계일은 보통 계산기로 하지만 나는 오랜 습관으로 주산으로 하는 것이 편하다. 나는 퇴직 전까지 향병원의 회계업무를 주산으로 했는데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주산은 바로 남편이 향진재정소일 그만두면서 나에게 물려준 것이다. 이 주산은 어찌 보면 남편이 순박한 사업심을 물려받은 것 같아서 남편이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주산이다. 남편이 땀과 노력 정직함과 성실함이 숨어있는 이 주산은 늘 내 곁을 지켜주었다. 퇴직하고 초빙 받은 새 회사에서 회계업무를 할 때도 이 주산으로 매달 수입, 지출, 재무분석 등 업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여 회사 일을 항상 제집 살림처럼 알뜰히 했고 회사운영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요즈음 문학공부를 하면서 이것저것 뒤지다 서랍 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이 주산을 보게 되었다. 남편이 떠나고 나서 혹시 이 주산을 보게 되면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 아픈 추억이 되살아날 것 같아 서랍 속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것이다. 이 주산은 남편이 청춘을 그려볼 수 있고 남편의 손때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유일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주산을 마주하고 보니 잊은 줄 알고 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한줌의 흙 조국이란 이 한줌의 흙으로부터 시작된 것 땅김이 서리고 흙냄새 훈훈한 이 한줌의 흙! 루루천년 조상들의 뼈와 살로 기름지고 선렬들의 피와 땀으로 꽃을 피운 이 한줌의 흙이 모여 조국땅 이뤄졌노라 그렇다 밟고선 이 땅이 없다면 그대 어찌 저 하늘에 웃음 날리며 자유로이 두발 옮겨 디딜 수 있으랴… 따스한 해살이 고맙거든 시원한 바람결 즐겁거든 그대여 먼저 밟고 선 이 땅을 살찌우자 다시는 몰아치는 허풍에 이 땅에서 쭉정이만 날리지 않게 하자 우리 모두의 피와 땀을 쏟아 이 한 줌의 흙부터 알뜰히 가꾸자 조국이란 이 한줌의 흙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1983년2월2일) < 해 설 > 석화시인이 외친 “자아의식”, “주체의식”은 결코 이 세계와 사회를 외면한 폐쇄되고 협애한 “나”가 아니다. 인간은 패쇄적이 아니고 언제나 모든 사회관계의 총합으로서 인간의 의식은 시대와 민족과의 관련 속에서 생성된다. 그는 바로 “자아”를 시대의 거대한 교향곡에 넣어 저기가 밟고선 땅과 맥박을 같이 해왔던 것이다. 시인은 격변시대와 발밑의 토양에 두터운 애착을 안고 삶과 인간에 뜨거운 애정을 보이고 있다. 그의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이모!"정겨운 시골집이 한눈에 들어오자 애들처럼 목청껏 웨치는 내 부름소리에 이모와 이모부가 부엌문을 왈칵 열고 급히 달려 나오신다. 어쩌다 찾아간 시골 이모네 댁, 삼십여 호되던 마을은 이제 달랑 세집뿐이다. 뜨락을 감싸고 있는 헐렁한 널바자*는 이제 조금씩 구부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모부가 힘이 딸려 대충 해놓은 듯한 창문의 문풍지는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채 제 구실이나 하나 싶게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 밑에는 가쯘하게* 패 놓은 장작들이 차곡차곡 곱게 쌓여져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의 환호소리와 그 구경에 신이 난 강아지와 병아리들의 요란스런 동참으로 조용하던 시골집 뜨락은 삽시간에 왁짝 끓어번졌다*. 동년시절, 대부분 방학시간을 나는 이곳 큰이모댁에서 보냈다. 이모네는 위로 아들 둘 아래로 딸 하나로 슬하에 이남일녀를 두셨다. 열한 살에 아버지를 여읜 내가 혹 주눅이라도 들까봐 이모는 나를 각별히 아껴 주셨다. 나보다 한 살 더 먹은 사촌언니가 엄청 질투할 정도로… 열두 살쯤 될 때의 일로 기억된다. 마을에 보따리옷장수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그 시절농촌에는 현금이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사는 법 능금나무 한그루 뜨락에 옮겨놓고 사는 법을 배운다 봄이면 지나가던 나비, 꿀벌도 화들짝 놀라게 꽃을 피우고 땡볕이 쨍쨍한 칠팔월에는 인내의 땀방울을 안으로 모아 알알이 열매를 무겁게 하고 마가을* 찬바람엔 남은 잎사귀마저 다 뿌려주고 함박눈이 쏟아져도 그런대로 칼바람이 불어와도 그런대로 맨몸에 빈가지로 말없이 서서 다시 올 봄의 꿈을 조용히 펼쳐가는 능금나무 한그루 뜨락에 옮겨놓고 사는 법을 배운다. * 마가을 : 늦가을 해설 시는 겉을 보면 붓으로 쓰는 것 같지만 실은 그건 시행 위에 흘러가는 마음의 시내이며 강물이다. 언제 가선 시는 또 마음의 격랑으로 사품치는(물살이 계속 부딪치며 세차게 흐르는) 바다로 될 수 있는 것이다. 매 시행에 박힌 글자글자마다에는 시인의 사상과 감정이 고여 있다. 석화의 시는 실은 그의 인생관념과 미학관념, 시창작관념의 시형식으로의 표현일 것이다. 염열한(炎熱, 몹시 심한) 더위에도 “인내의 땀방울을 안으로 모아 / 알알이 열매를 무겁게” 맺고 엄동설한에는 빈 가지에 겨울을 이기며 오는 새봄을 “조용히 펼쳐가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연길로 이사 온 나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어느 날 나는 집식구들과 함께 시장을 돌아보았다. 시장골목에서 사과를 보던 아들이 “엄마! 사과 사줘!”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농촌에서 가져온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생활을 안배하다보니 돈을 아껴 써야 했다. 아들애가 먹겠다고 하니 사과 한 알을 사서 두 쪼각을 만들어 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과일을 팔면 어떨까? 애들도 원 없이 먹이고 생계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굴리면서 다음날 나는 시장에 가서 다른 사람이 과일 파는 걸 한참 지켜보았는데 잘 팔렸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2000원을 투자하여 시장에 매대를 산후 장사를 시작했다. 남들이 장사하는 걸 보고 쉬운 줄만 알았는데 이 일을 어쩐담? 꿈에도 생각 못하던 장사를 시작한 나는 고객이 나보고 말을 건네면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면서 대답을 겨우 했다. 나는 자신에게 “제발 정신 차려! 너는 두 아이의 엄마야!”라고 수없이 타일렀으나 소용없었다. 련속 며칠째 수입은커녕 본전도 못하자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상황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홀로 깨어나 홀로 깨어나 이 깊은 밤 지새게 하심도 당신의 뜻이거니 먼 곳에, 두만강 윗목에 얼음장 갈라 터지는 소리 듣게 하심이리라 별빛도 창유리에 지워지고 죽은 듯이 죽은 듯이 고요로운 이 적막에 가슴 뛰는 소리조차 두려운 이 밤 이 밤 홀로 깨어나 긴 시간 지새게 하심은 이제 열릴 별일 없는 하루가 죄 더 짖지 않는 하루가 되게 하시여 정말 별일 없는 하루로 보내게 하심이리다. 해설 이시는 요란스런제 스처가 없으며 그저 시적대상이 포근한 그리움과 경건한 우러름에 싸여있을 뿐이다. 시적분위기는 매우 아늑하다. 그러나 그러한 고요로부터 드넓은 삶이 흘러나오며 그 흐름 위에 사색의무 늬가 조용히 수놓아진다는데 서시는 주목을 끌게된다. 시인은 “당신”에 대한 무한한 그리움과 경모 속에서 영원한 신적세계를 세우고 있다. 시에 나오는 “당신”은 육체를 낳은 인간으로서의 어머님이면서 또 인간을 깨우치고 이끄는 전지전능하고 지고무상한 영적인 존재이기도하다. 천리혜안을 갖고 있는 “당신”은 “별일 없는 하루” 속에 “별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언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지난날 우리들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담 배 아버지는 심심해서 담배를 피운다고 하셨다. (내 아이적 들은 말이다) 저 화장터도 심심해서 길다란 담뱃대를 하늘에 겨누었을까? (오늘 아버지를 화장한다) 그런데 나도 지금 심심해서 담배를 꼬나무나 (높다란 굴뚝에서 흰 연기 한 가닥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해설 시 “담배”(석화, 《흑룡강신문》1986년8월16일)는 얼핏 보면 순간적인 감수를 심상한 시행속 에서 펴보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심상한 시행의 리면에는 보다 복잡하고 곡절적인 과정적 느낌이 함축되어 있으므로 하여 서정시의 사색적분위기를 짙게 한다. 여기서 이 시의 함축적의미를 해독하는데 있어서 관건은 아마 “담배”란 단어의 상징적 의의를 벗겨보는 일일 것이다. 담배라고 하면 보통 위에서 언급한 시에서처럼 “심심해서 피우는” 심심풀이로, 또는 무슨 사색에 더 깊이 빠지기 위한 “윤활제”로, 아니면 어떤 고충을 잊어버리기 위한 “망각제”로 이밖에 많은 용처에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쓰이는 물건이다. 그런데 담배의 이런 일상적인 용처는 시 “담배”에서 거의 종합적으로 나타남과 동시에 담배의 본 의미를 벗어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우리 부부가 결혼한지도 어언간 27년이란 시간이 지나왔다. 서로 아끼기도 하고 서로 다투기도 하면서 꿈같이 흘러간 세월, 지금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간 이국땅에서 겪었던 그 고난의 시간들이 우리 부부, 우리 가정으로 하여금 더욱 튼실한 하나로 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연들이 있다. 금방 결혼하여 우리는 자그마한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였다. 시집의 가정형편과 서로간 생활습관의 차이, 그리고 남편이 단위일과 친구들 만남으로 매일 술과 동무하다 보니 우리 사이에는 충돌이 그칠 줄 몰랐다. 집에는 화약냄새로 가득하였고 다투기를 밥 먹듯 하였다. 나는 출근하면서 혼자서 애를 돌보는 형편이라 늦게 돌아오는 남편이 야속하여 집문을 잠근 채로 열어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탕, 탕…” 아무리 두드려도 안 되는지라 술김에 화가 잔뜩 난 남편이 발로 문을 걷어찬 탓에 집문이 망가지기도 하였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법원의 문턱까지 가기도 하였다. 지루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에서였던지 아니면 셋방살이를 면하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생활을 갈망해서였던지 병원에서 주원부주임 겸 의무과 과장직까지 맡아하며 잘 나가던 남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옥수수밭에서 옥수수밭머리에 멈추어섰다 시골길가다가 하나씩 둘씩 서넛씩 등에 그리고가슴에 아기를업고또안고있는 내엄마같은옥수수여 큰절이라도 드리고싶다 달구지바퀴에깊숙히패인 길한복판에 그대로넙적엎드려 절하고싶다 남들에게는 너무나도화사했던 그한시절도 있었던듯없었던듯… 눈에띄우는 꽃잎하나피우지못한채 벌써오늘의계절에 휘여질듯서있는 옥수수여 철없던시절의수수께끼가 언제나가슴을허빈다 잠자리무리지어날아오르는 이늦은여름의오후 그대의어느 푸른잎사귀한자락잡고 빨간댕기라도매여드리고싶다 내엄마같은 옥수수여. 해설 할아버지 대에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주한 중국 조선족 제3세대인 석화는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한 지식인으로서 20대(1970년대말)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이후 네 권의 시집을 냈다. “나”를 화자로 내세운 그의 초기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