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홀로 깨어나
홀로 깨어나 이 깊은 밤 지새게 하심도 당신의 뜻이거니 먼 곳에, 두만강 윗목에 얼음장 갈라 터지는 소리 듣게 하심이리라 별빛도 창유리에 지워지고 죽은 듯이 죽은 듯이 고요로운 이 적막에 가슴 뛰는 소리조차 두려운 이 밤 이 밤 홀로 깨어나 긴 시간 지새게 하심은 이제 열릴 별일 없는 하루가 죄 더 짖지 않는 하루가 되게 하시여 정말 별일 없는 하루로 보내게 하심이리다. |
해설
이시는 요란스런제 스처가 없으며 그저 시적대상이 포근한 그리움과 경건한 우러름에 싸여있을 뿐이다. 시적분위기는 매우 아늑하다. 그러나 그러한 고요로부터 드넓은 삶이 흘러나오며 그 흐름 위에 사색의무 늬가 조용히 수놓아진다는데 서시는 주목을 끌게된다. 시인은 “당신”에 대한 무한한 그리움과 경모 속에서 영원한 신적세계를 세우고 있다.
시에 나오는 “당신”은 육체를 낳은 인간으로서의 어머님이면서 또 인간을 깨우치고 이끄는 전지전능하고 지고무상한 영적인 존재이기도하다. 천리혜안을 갖고 있는 “당신”은 “별일 없는 하루” 속에 “별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언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지난날 우리들이 무지로 하여 “별일이 없는 하루”라고 착각했던 것이 사실은 별일이 있는 하루라는 것을 놀랍게 발견하게 된다.
알고 보면 인간이 아무리 행복하고 무탈하게 사는 것 같아도 그 속에 언제나 모순과 갈등이 있으며 그것이 곧 시에서 제기되는 “별일”이다. “별일”이 발전하면 “죄”로 된다. 아니, “별일” 자체는 이미 “죄”의 씨를 배태하고 있다. 이 시의 철학적 함량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는 또 “별일”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기에 불교적 열반이 있다는 것도 암시하고 있다. “죄 더 짓지 않는 하루”는 인류의 역사는 크고 작든 간에 종래로 죄짓는 역사였음을 반증해주고 있다. 이리하여 “당신”은 자식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묵시한다. 시적자아는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기에“ 죽은 듯이 고요한 이 적막에 / 가슴 뛰는 소리조차 두려운 이밤”이라고 설파한다. 시인은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으면서 죄의식에 젖어있으며 말은 없으나 철저한 참회자로, 경건한 신도로 충당된다.
“나”는 “당신”의 예시를 진리로, 부활의 금언으로 받아들이고 “홀로 깨어나” 무한한 사색을 씹으면서 “죄 없는 인간”으로 되는 길을 모색하며 여기에서 열반식의 인생감오를 줍는다. 이렇게 보면 “홀로 깨어 있는 나”는 육체적인 잠에서 깨어났다기보다 정신적 부활을 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 이다.(김룡운, “조용히 흐르는 사색의무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