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에 살다 보면 수시로 제주어가 들린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아니면 얼핏 들어서는 알 수 없는 말들. 제주어로 빠르게 하는 대화는 흡사 외국어나 다름없다. 분명히 한국어는 맞는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 ‘듣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한번 제주어에 눈을 뜨고 나면 제주어로 된 가게 이름이나 지명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제주어로 하는 대화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좀 어렵지만, 제주어를 조금만 알아도 버스정류장을 지나칠 때, 올레길 푯말을 볼 때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저자 현택훈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돌하르방 공장 한편에 버려져 있던 팔 하나 없는 돌하르방, 그 돌하르방을 품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 누군가 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잊히기 쉬운 어떤 것, 시인은 그것을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제주어도 시인에겐 그런 대상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제주어는 위기다.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했다. 제주어를 쓸 줄 아는 몇 세대가 사라지고 나면, 제주어가 더는 들리지 않게 된다. 그때는 제주어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귀양살이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사전에서 찾은 ‘귀양다리’의 정의다. 유배인은 세상의 업신여김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유야 무엇이든 거친 세파에 휩쓸려 유배형, 그 가운데서도 가장 죄가 중한 자만 보낸다는 제주도로 보내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배를 보낸 쪽, 승자의 시각에 가까웠다. 오히려 제주 사람들에게 유배인은 앞선 지식과 문화를 전수해줄 귀중한 전령이었다. 흔히 유배살이라고 하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는 답답함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생각보다 유배생활은 꽤 자유스러웠다. 그래서 제주에 온 선비들은 제자를 양성하며 학문을 전수하기도 하고, 시회(詩會)를 조직해 지역 문화계를 주도하기도 하고, 제주 여인과의 사이에 자식을 두어 입도조(入島祖, 섬에 처음으로 정착한 각 성씨의 조상)가 되기도 했다. 《제주도 귀양다리 이야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제주에 유배 온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쉬우면서도 학술적인 문체로 차분히 풀어낸다. 풍부한 자료조사와 제주 곳곳을 누비며 찍은 직접 찍은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이 한 권만 읽어도 제주에 유배온 사람들의 면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