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화도진도서관과 관동갤러리 도움 덕에 올여름 사진 전시회를 마치고 다시 사진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아내에게 아버지 얼굴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고, 옛 사진을 보고 즐거워하시는 어머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6남매 단톡방은 옛 사진을 소환해 가며 추억여행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런 좋은 경험을 더 많은 분이 갖게 되시길 바라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좋은 추억, 예쁜 사진 많이 남기시기를 바랍니다.” -수강생 김웅재- “‘한일(韓日) 어머니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나의 슬픔도 기쁨도 다 아는 인천과의 만남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습니다. 그동안의 세월을 다시 돌아보면서 제대로 정리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화도진도서관 관계자분들, 류은규 교수님과 도다 관장님을 비롯하여 함께해 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강생 야마다 다까꼬- 수강생들은 하나같이 지난 1년을 회상하며 ‘즐겁고, 행복했다’라고 했다. <사진으로 기록하는 아카이빙> 강좌는 지난 4월 14일부터 주 1회 모여, 사진 복원과 촬영 및 기억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방법을 모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27일) 낮 3시,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3층 대강당에서는 광복회(회장 이종찬)와 국립인천대학교(총장 박종태)간의 뜻깊은 업무협약식이 있었다. 이날 협약식은 발전적인 사업 부분의 협력자로서 ‘미서훈 독립유공자 발굴ㆍ포상신청 및 독립운동사적지 발굴ㆍ연구사업’ 분야에 서로 이바지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날 협약을 맺기에 앞서 박종태 국립인천대 총장은 인사말에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독립정신을 받들어 후손들의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애국 선양에 힘쓰고 있는 광복회야말로 민족대통합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있는 애국과 독립의 상징적인 단체입니다. 한편 국립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는 2023년 11월 현재 4,377명의 미서훈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국가보훈부에 서훈 신청을 해온 국내 유일의 연구소입니다. 앞으로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과 독립운동사적지 발굴사업에 관한 학술적 자료와 연구 등 상호 긴밀한 교류를 통해 발전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종찬 광복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이번에 광복회와 국립인천대가 업무협약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다년간에 걸쳐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에 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환국(1945년 11월 23일) 78주년을 맞아 나라 밖에서는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임시정부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국가보훈부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오는 11월 24일(금)부터 2024년 3월 6일까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주중한국문화원에서 ‘환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돌아오다’를 주제로 첫 나라 밖 순회전시회를 연다”라고 밝혔다. 주중한국문화원과 함께 여는 이번 전시회는 지난해 3월 1일 개관한 임시정부기념관의 개관특별전과 대통령기록관(세종시)에서 열린 국내 순회전시를 발전시킨 것으로,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임시정부 요인들의 귀국 과정, 그리고 서울운동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선 전국 환영대회 등과 관련한 유물 63점을 전시한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전시의 1부는 ‘승리하고 돌아가리라’라는 내용으로 임시정부의 수립과 수반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특히 1940년대 임시정부의 외교와 군사 활동을 전시한다. 주요 전시물로는 2대 국무령 홍진 선생을 소개한 독립신문 192호(1926), 김구 주석의 취임 선서(1944)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對日)선전성명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하였습니다. 화학공업 회사였는데, 회사가 사용하는 전력을 만들기 위해 중국과 조선의 국경에 있는 압록강에, 당시 제일이라고 알려진 커다란 댐(수풍댐)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은 모두 일본 효고현 아시야(芦屋)에서 살았고, 아버지 혼자 현지에 파견을 나가 일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집은 윤택하게 살았습니다. 1945년 한국이 광복을 맞자, 아버지는 실직했고, 9인 가족의 생활은 밑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1941년 태어나 일곱 형제의 막내였던 나는 철이 들면서부터 가난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한국 사람을 지배하고 그 덕분에 집이 부유하다는 게 왠지 떳떳하지 못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일본인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씨다. 나는 지난해(2022) 10월 하라다 교코 씨로부터 일본어로 쓴 책 《私と韓国、感謝と謝罪の旅》을 한 권 받았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이라는 책이다. 하라다 교코 씨는 '조선 침략 역사를 반성하는 대표적인 일본인들의 모임'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의 이사장을 지냈던 분(재임기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제84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워싱턴 회의’를 앞두고 만세 시위를 이끈 양일석 선생(애족장),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일본의 천황제와 식민 통치를 정면 비판한 민병구 선생(건국포장), 조선총독부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반대하다 옥중 순국한 최인규 선생(애족장) 등 67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 양일석 선생은 1921년 11월, 전남 목포에서 사립 영흥학교 재학 중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비 축소 관련 국제회의인 ‘워싱턴 회의’가 열리자, 한국 독립 문제의 상정을 촉구하기 위해 만세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징역10월을 선고받았으나, 법정에서 ‘독립운동은 평소 소신’이라고 당당히 밝혀 한인 청년의 넘치는 기개와 독립운동에 대한 변함없는 확신을 보여주었다. 민병구 선생은 1933년 부산에서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총독부의 민족 차별적 학교 교육에 반대하는 동맹휴교에 참여하다 무기정학을 받았고, 1939년 일본 야마구치 고등학교 재학 중 비밀결사(‘여우회’) 활동으로 체포되는 등 식민지하의 억압적 교육 환경 속에서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학생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최인규 선생은 1940년, 강원 삼척군에서 천곡교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늘은 일본의 어린이날이다. 한국식 어린이날이 아니라 일곱살, 다섯살, 세살이 되는 어린이를 위한 날이라고 하는게 옳을 일이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는 생일을 한국에서는 ‘첫돌’ 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돌(생일)’이라는 뜻이다. 이듬해부터는 ‘두돌’, ‘세돌’...따위로 말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돌’ 보다는 ‘네살’, ‘다섯살’...이런 식으로 ‘살’을 쓴다. 돌 이전에는 ‘백일(百日)’이라고 해서 태어난 지 100일을 기념하기도 하지만 ‘돌’이 일반적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백일과 돌은 없으며, 다만 태어나는지 한 달이 되면 ‘오미야마이리(お宮参り)라고 해서 강보에 싼 아기를 안고 신사참배를 한다. 그 뒤 3살, 5살, 7살이 되는 해에 다시 신사참배를 한다. 이것을 시치고상(七五三)이라고 하는데 7살, 5살,3살 먹은 아이를 데리고 신사에 참배함으로써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풍습이다. 그런데 외국인의 눈으로는 3살부터 세어서 상고시치(三五七)라고 하지 않고 거꾸로 7살을 앞세우는 것이 흥미롭다. 일곱 살, 다섯 살,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있는 집안에서는 해마다 11월에 들어서면 어린이를 위한 ‘시치고상(七五三)’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경제적 후원과 외교 활동 등의 독립운동을 하고, 광복 뒤 세상을 뜬 독립유공자 정두옥 애국지사(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의 주검이 조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고국산천으로 돌아온다.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10일 “제84회 순국선열의 날(11.17.)을 앞두고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 정두옥 애국지사(1889.11.21.~1972.9.9.)와 배우자 이봉아님의 주검을 함께 국내로 봉환해 오는 15일(수) 낮 11시부터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을 거행한다”라고 밝혔다. 유해봉환식에 앞선 13일(월) 아침 9시(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현지에서 호놀룰루 총영사관 주관으로 유족과 교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리며, 국가보훈부는 정두옥 지사의 유해 봉환을 위해 11일(토) 유해 봉환반을 파견했다. 봉환반은 영현의 반출과 검역 절차 간소화 등 출입국을 지원한다. 정두옥 지사의 주검은 현지 추모식이 끝난 뒤 한국으로 출발해 14일(화)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고국 땅을 밟는다. 국가보훈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주검을 영접(18시 40분)한 뒤 국립대전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중일전쟁 이후 학생비밀결사를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이어간, 서상교(1963년 독립장), 최낙철(1963년 독립장), 신기철(1990년 애족장) 선생을〈2023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라고 밝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언론ㆍ집회ㆍ출판ㆍ결사가 금지되었으며, 일제의 감시와 탄압, 수탈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이어가다 모진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때의 대표적인 학생독립운동 인물이 서상교ㆍ최낙철ㆍ신기철 선생이었다. 대구 출생의 서상교(1923년) 선생은 대구상업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2년 5월, 김상길ㆍ이상호와 함께 항일비밀결사인 ‘태극단’을 조직, 민족의식을 드높이고 학술 연구, 체력 향상 등의 활동에 나서는 한편, 군사학에도 관심을 두고 관련 서적의 번역, 폭발물 제조에 관해서도 연구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밀고로 단장 이상호가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었으며, 그의 집에서 태극단 관련 문서가 발견되어 서상교 선생을 비롯한 26명의 단원 모두가 체포되면서 태극단은 와해 되었다. 선생은 1944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일본제국의 국시[國是]
[우리문화신문= 금나래 기자] 일본 작가 오가와 요코(小川洋子) 씨가 제50회 국제교류기금상을 받았다. 국제교류기금상은 국제교류기금이 해마다 학술, 예술, 그 외 문화활동을 통해 해외에 일본문화를 널리 알리고 국제우호친선에 공헌을 세운 인물(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올해로 50회를 맞는 2023년 국제교류기금상에는 연극연출가 미야자키 사토시(宮崎 聡) 및 페루 일본계인 협회(ペル一日系人協会)를 비롯하여 작가 오가와 요코(小川 洋子)가 선정되었다. 1988년 문예지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오가와 요코 작가의 작품은 절제되고 단정한 일본어를 통해 언어와 국경의 벽을 넘어 공감을 불러 일으켜, 2023년 현재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해 37개국어로 해외에 소개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문학과 일본어를 통해 국제상호이해 추진에 큰 공헌을 한 점이 인정되어 이번 국제교류기금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일본국제교류기금협회에서는 이러한 오가와 요코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하여, 그녀의 작품에는 어떠 한 매력이 있는지 다시 한 번 느껴보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작가 오가와 요코(小川洋子) 씨는 1962년 일본 오카야마현에서 태어나 임신 캘린더 (妊娠カレンダー, 아쿠타가와상 수상),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늦가을비가 추적거리고 내린다. 이런 날엔 시집이 읽고 싶다. 그 누구의 시집이라도 좋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권의 시집이 배달되었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일까? 《예순 한살 인생 그래프》를 쓴 사람은 손선아 시인이다. 아! 벌써 그녀가 환갑의 나이를(?) 하며 책장을 연다. “침묵을 깨고 시인의 소임을 완수한다” 라는 머리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침묵이 길었던 이유에 대해 “첫 시집을 낸 이후....사느라 바빠서, 개점휴업, 장기간의 코로나, 게으름의 늪, 갑작스레 닥친 친정어머니의 죽음, 다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졌던 일” 등의 사연이 있어 두번째 시집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하나같이 공감 모드다. 친정어머니의 죽음까지 어쩌면 그렇게 내가 걸어온 길과 같을 수가 있을까? 듣고보니 손선아 시인의 ‘개점휴업’ 이유가 명색이 시인인 내 삶과 닮은 것 같다. 그래, 누구든 비슷한 삶을 사는 게 틀림없어...라고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시를 읽어 나갔다. 행간을 살피며 시를 감상해 나가는 동안, 나는 손선아 시인이 ‘명색이 시인’인 나와 다름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침묵을 깨고 시인의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글을 쓴 손 시인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