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각과 함께보는 해수관세음보살상 ▲ 설악산이 병풍처럼 두른 해수관세음보살상 ▲ 하늘을 향해 본 해수관세음보살상 ▲ 소나무와 함께 본 해수관세음보살상 ▲ 밤에 보는 해수관세음보살상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양양 낙산사에는 다양한 모습의 관세음보살상이 조성되어있다. 그만큼 관세음보살은 우리네 중생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고, 중생들의 다양하고도 많은 소원을 들어주고, 또 말못할 사연들도 아무런 조건없이 그대로 들어준다는 것이다. 낮이면 낮에도 밤이면 밤에도 그 어디에서 보아도 나름대로 품격을 갖춘 모습의 해수관세음보살상. 중생들의 마음에 따라 보는 각도는 달라도 모두가 좋기만 하였다. 중생들의 소망 부디 잘 들어주시고, 그 소망의 끝에 모두 성불하길 빌어봅니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
▲ 소나무 오솔길을 오르는 스님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멀고 험한 길!! 초발심의 원력으로 성불하시길 빕니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산사로 가는 소나무 밭 오솔길을 오르는 두 스님들! 세상을 피해서 출가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서 세상의 중생들을 구하고자 출가의 길을 걷겠다는 초발심의 의지가 부디 꺾이지 말고 이루어지길 빌어봅니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문화유산사진작가,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
▲ 의상대에서 본 홍련암 ▲ 홍련암의 관세음보살 ▲ 홍련암 벽화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 ▲ 홍련암에서 본 의상대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어디를 가나 다른 절에서 보는 부처님은 없고 관세음보살만 있다. 원통보전에는 '건칠관세음보살', 보타전에는 '천수관음', 높은 언덕에 우뚝 솟은 바다가 훤히 보이는 언덕위에는'해수관음' 바닷가에는 홍련암에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의 도상(그림으로 나타내는 형상)은 중생이 처한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그 이유는 중생이 처한 상황은 각양 각색이기에 그에 따라서 다양한 처지에 다양한 모습으로나타나서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고 구제해준다는 뜻이다. 관세음보살의 손이 무수하게 많은 이유도, 우리네 사람과 같이 단2개의 손만으로는 중생의 소원을 다 들어줄 수 없기에 부수한 손 무수한 눈으로 보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의미에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조성한다.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돌아와기도중에 관세음보살을 만난 곳에 지은 암자로 알려져있어 수많은 불자들이 연중 많이 찾는 곳이고, 하루 24시간 쉬임없이개방되는 곳이다. 바닷가에 위치하여 끊임없이 출렁이는 파도소
▲ 원통보전의 모습 ▲ 응향각에서 본 원통보전 모습 ▲ 원통보전을 들어가는 문에서 본 낙산사 원통보전 ▲ 원통보전의 주불과 탱화. 보살의 뒤로는 아미타부처님과 많은 보살들이 주위를 호위하고 있다. ▲ 원통보전의 주불 관세음보살상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낙산사의 주불전인 원통보전과 그 안에 모셔진 건칠관세음보살상이다. 원통보전은 2005년 양양의 바닷가에 일어났던 큰 불로 낙산사 전체가 화영메 휩싸여 거의 전소가 되는 바람에 탓으나, 건칠관세음보살상은 스님들이 불이 붙은 원통보전으로 뛰어들어 모시고 나와서 화마로부터 살아남게 되었다. 낙산사 원통보전의 건칠관세음보살은 보물 1392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그 조각상이 수려하고 아름답다. 2005년 초봄에해안가를 휩쓰는 화재로부터 살아남은 관세음보살상, 부디 오래오래 그모습 그대로 남아중생들의 많고 많은 소원도 이루어주고, 깨달음을 구하는 스님네들에게도 득도의 소식 많이 내려주길 빌어본다. 신라시대 '조신'이란 스님이 세달사에기도하러 왔던 귀족의 딸을 흠모하다가 잠시 잠든사이에 꿈속에서 그녀와 함께 살았던 이야기가 삼국유사에'조신의 꿈'으로 전하며 이를 김동인은 '조신의 꿈으로'
▲ 원통전으로 들어서는 문과 7층석탑 ▲ 문을 들어서는 스님과 7층석탑 ▲ 낙산사 7층석탑의 측면모습 상륜이 청동으로 되어있으며, 보개 보륜 수연 용차 보주등 윗부분이 사라져 아쉽게 보인다. ▲ 원통전 앞에 서있는 7층석탑 ▲ 소원을 가슴에 품고 탑돌이 하는 불자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보물 제499호인 낙산사7층 석탑은 낙산사의 주불전인 원통전의 바로 앞에 있다. 본래는 3층이었다고 하나1466년 중창되면서 7층으로 탑신을 늘렸다. 원통전은 낙산사가 관세음보살의 성지인 만큼 다른 절의 대웅전과 같은 위상이나, 이곳이 관세음보살의 영역이기에 그 이름을 원통전으로 하였다. 따라서 원통전의 내부에는 부처님상이 없고 오직 딱 한분 관세음보살만이 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희노애락을 가장 잘 들어준다고 하여 그 이름도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이란 명칭의 의미는 세상 모든 중생 고통의 소리를 보고 듣는 보살) 그래서 수많은 불자들이 마음에 부담없이 부르고 찾고 기대는 보살이 되어 전국의 어느 절이나 관세음보살이 없는 절이 없을 만큼 보편적인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전의 앞에있는 7층석탑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체감과 조형이 우수한
▲ 겨울 해당화 앞에서 있는 해수관음상 [한국문화신문=최 우 성 기자] 양양 낙산사는 관세음보살의 성지로 유명하다. 관세음보살은 불교에서 중생의 소원을 가장 잘 들어주는 보살로, 중생이 고통속에 신음할 때, 그 이름을 진심으로부르면 그 어떠한 고통도 다 해결해준다는 보살이어서, 중생에 가장 가까운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바닷가에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해난사고가 잦을때 더욱 큰 의지처가 되었기에,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양양 오봉산 언덕에 거칠고 광대한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낙산사'란 이름은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상상의 산이 '보타락가산'인데, 그 '보타락가산'의 줄임말이 바로 '낙산'이다.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홍련암에서 관세음보살을 직접 만났다고 전하는 사찰로, 전체가 관세음보살의 성지로 많은 불자들이 꼭 한번은 가고 싶어하는 절이다. 낙산사에는 관세음 보살이 여러곳에 모셔져 있는데, 바닷가에는 홍련암이 오방산 맨 꼭대기에는 원통전에 그리고 바다가 내려보이는 언덕 위에는 이 해수관세음 보살이 있다.요즈음에는 중국의참배객들도 많이 오는 곳이 되었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 눈내리는 12월 아직도 단풍잎이 그대로 붙어있어 더욱 운치가 느껴진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올해는 눈이 자주 올것이라는 예보가 나왔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고궁의 풍경은 더욱 운치가 느껴진다. 특히 경복궁의 향원정은 눈내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많은 사진가들이 찾는 명소 가운데 하나이다. 눈과 어우러진 단풍잎이 향원정의 느낌을 더욱 멋스럽게 하여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문화유산사진작가,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
▲ 방화수류정과 포루가 보이는 정경 ▲ 화홍문(화성으로 들어오는 물 위에 지은 정자)과 방화수류정 ▲ 반영으로 본 방화수류정 ▲ 북측성곽과 포루 ▲ 방화수류정에 앉아서 본 포루 [한국문화신문화=최우성 기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인 방화수류정을 오르 내리면서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방화수류정은 크기는 작지만북쪽의 수원지에서화성으로들어오는 물길주변에 적을 감시하기 좋은높은 곳에 지은 복잡한 정자로, 여름에는 시원하여 순찰을 돌던 병사들의 휴식처로 가장 좋은 곳이기도 하지만, 전시에는 북쪽의 수문근처로 접근하는 적군을 감시하고 작전을 지휘하는 작전 본부이기도 하다. 물길이 비록 작지만, 그래서 오히려 적들이 성을 공격하기에는 좋은 곳이고 방어하기에는 취약점이 들어나는 곳이다. 그래서 방화수류정의 북쪽에는 연못을 파서 해자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적들이 쉽게 물길을 따라 처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 연못에는 사철 방화수류정의 모습이 반영으로 비추고 있다 방화수류정은 눈이 내리고 칼바람까지 불어대는 겨울에는 잠시도 앉아있기 어려운 추운 곳이지만, 그 운치만은 계절에 관계 없이 좋기만 하다. 봄에는 철쭉을 비롯한 꽃으로, 여름이면 푸
▲ 성곽안에서 본 화서문 ▲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아래는 돌로 되고 위는 벽돌로 쌓은 서북공심돈과 전체를 벽돌로 쌓은 화서문의 옹성 ▲ 화서문의 옹성에서 본 서북공심돈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초겨울이지만 눈이 와서 겨울운치가 느껴지는 화성의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이다. 서공심돈은 높은 곳에 올라서 적을 관찰하며 공격작전을 세우기 위한 망대이고, 화서문은 화성의 동서남북 4문중에 서쪽에 있는 문으로 남북방향으로는 통행이 많고 그에 따라 큰 길이 놓여있기에2층의 장안문과 팔달문이 세워졌고 동과 서에는그에 보조적인 문이기에 1층으로 된서쪽의 화서문과동쪽에 창룡문이 있다. 성문앞으로는 적의 침입으로 성이 함락되지 않도록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옹성이 둘러있다. 성벽의 주변에는 음양오행 가운데 서쪽을 뜻하는 하얀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다. 산책로에 쌓인 눈길을 조심해서 걸어가는 탐방객들이 보이고 있는 평화로운 정경이지만, 옛날에는 곳곳에 수비병사들이 보초를 서는 삼엄한 방어진지였다. 성벽의 위에는 여장이 있고, 그 여장의 군데군데는 총을 쏘는 구멍들이 있는데, 경사가 급하게 된 총안은 가까운 곳에 접근한 적에게 총을 쏘는 근총안이고, 경사가 완
▲ 서장대의 모습 ▲ 서장대와 서노대 ▲ 서장대 옆에 있는 서노대: 노대는 '노'를 쏘는 곳이라는 뜻인데 '노'란 우리가 '석궁'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무기로 활보다 훨씬 강력하고 조준도 정확한 무기다. ▲ 서장대에서 북쪽 성벽을 따라서 내려오는 계단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눈내린 화성의 서장대의 모습이다. 서장대는 화성에서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전망 좋은 곳으로 전쟁 때에는 화성의 주변을 둘러보면서 작전을 지휘하던 곳으로 활용하기 위한 지휘본부가 되었던 곳이다. '서장대'의 바로 옆에는 '서노대'가 지어져서 강력한 쇠로 만든 '노'를 쏠 수 있도록 하였다. 화성이 축조된 뒤에 한 번도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가장 튼튼한 방비를 위하여 최선을 다했던 국방유적으로 기능성뿐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여기서 '노대(弩臺)란 우리가 요즈음 '석궁(石弓)이라 부르는 무기로 '석궁'이란 말은 잘못된 말이고, '노'라고 불러야 맞는 말이다. 화성행궁의 좌측계단을 따라서 10여분 오르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비록 짧은 거리이지만 둥줄기에 땀이 흠뻑 날 만큼 운동도 되어 많은 수원시민들이 운동삼아즐겨 찾는 곳으로 사랑받고 있다. 서장대에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