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현용운 회장] (편집자말) 요즘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혼돈에 빠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연변 동포 ‘중국조선어신식학회(조선어정보학회)’ 현용운 회장이 ‘춘절 가택연금 영탄곡’이란 시 두편을 보내왔습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깊기에 두 번에 걸쳐 싣도록 합니다. 아, 무슨 죄로 춘절 가택연금 영탄곡 1 나는 내가 지금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지었는지를 모른다.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들이 어이도 없이 집 안에 갇혔다. 그것도 모두가 하루한시에 새초롱 같은 아파트에 촘촘이 갇혀있다. 지은 죄명도 모르는 채. 수천수만의 도시와 농촌이 전 중국이 한 달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 포위망에 같혔다. 경자년(庚子年) 춘절 벽두에 14억 중국이 보이지도 않는 망에 발도 묶이고 손도 묶이고 입도 코도 막혔다. 온 세상이 바이러스 공포속에 눈, 귀만 살아 판들펀들 세태를 주시한다, 살아는 보자고 세상을 살핀다. 천지만물을 길들이던 초라한 인간들이 인공지능이랍시고 만물을 련통시킨다는 인간세상이 야생들의 대반격속에 덜덜떨며 살려달라고 아우성 친다. 하늘 길도 막히고 땅 길도 막혔다.
[우리문화신문=현용운 회장] 또 한 분이 타계하셨다. 조선어신식학회는 대선배를 잃었고 현용운은 평소에도 그렇게 존중해 마지않던 스승을 잃었다. 2016년 4월 14일 전임 연변대학 한어학 교수이고 조선어신식학회 창시자이시며 저명한 현대응용 언어학자이신 김진룡 교수가 유명을 달리하셨다. 항상 정의감이 있고 불의에 대하여서는 참지 못하는 김 교수님이셨고 폐암 말기에도 아주 쾌활하게 병마와 싸우시던 멋쟁이 노장 김진룡 교수, 악독한 병마는 우리 김진룡 교수를 끝내 하늘나라로 데려갔다. ▲ 김진룡 동지 고별 의식- 2016년 4월 16일 중국 연길 금년 초에 내가 병문안 갔을 때만 해도 아주 긍정적이고 유쾌하시던 김진룡 교수, 안부를 물으니 금방 난 애들도 요절하는데 내 이만하면 오래 살었지. 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더욱이 나의 아내 장명자의 집적 스승이었기에 노상 현용운을 내 제자의 남편이라고 하시면서 아주 아끼고 챙겼기에 나는 김 교수 앞에서는 아주 조심스레 행동하였다. 때론 성깔머리 부리는 과분한 처사를 하면 아주 부드럽게 타일렀지만 제자인 우리 마누라한테 술을 많이 마셨다던가, 남북사이의 민감한 사안들을 처리할 때 있었
[그린경제/얼레빗 = 현용운 회장] 중국조선어신식학회(조선어정보학회) 현용운 회장이 아래와 같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중국에서 조선어 정보처리 표준화 준비위가 구성되어 출범했다는 소식입니다. 이는 1996년 처음 남북중 화의가 열린지 17년만의 일이요 '한글공정'의 소동이 일어난 지 3년 만의 일입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으며 남남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립적인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독자적 표준화를 가지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 구체제적 결실이 바로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축하를 드리고 발전이 있기를 돈수백배하며 기원합니다. (진용옥 경희대학교 전자전파공학 명예교수, 전한국어정보학회장) 오늘 참으로 멋진 하루였습니다.=륙진방언으로 좋은 (할랄) 밤잠못자는 하루. 좋은 기분을 혼자 좋아하면 이상해서 이 밤에 30년 력사(역사)의 편장을 다시 뒤져 보다가 자판을 두드립니다. 오늘, 아니 어제 중국조선어정보처리국가급 공작소조가 연길 백산호텔에서 중앙과 성정부, 주정부의 공동 개최로 멋지게 출범하였습니다. 저는 제 생의 최고의 날로 기억하고자 합니다. 중국이란 이 960만 평방키로의 땅에 13억 인구에서 6번째로 드디어 가의(대국의) 의지를
[그린경제=현용운 회장] ▲ 청학생수기지봉사센터에 평양서 내려와 도와주는 미술대학 교수님 과 동료, 제자들 ▲ 산에 와서 산을 지하에다 그리는 사람들, 참 명화가들이였다. 3일 동안에 그린 장식용 대형 그림이다. ▲ 생수공장 한켠 ▲ 공장건너편 료양원 안의 생수터 ▲ 료양원 안에서 ▲ 구수한 함경도 6진 방언으로 통하던 료양원 부기(회계를 부기라고 함) 지금 말 같지 않은 말을 구사하는 연변 나그네를 무색하게 하는 함경도의 오염 없는 사투리 맛이 그곳의 물맛처럼 좋았다, 말씀이 오염되지 않어 좋았다.어디서 왔슴둥? 잘 갑소.형님이꾸마 ▲ 우리도 한우(조선 쇠꾸마)입니더. 연변 황소, 한국의 한우와 같은 족속임 ▲ 김파는 무엇을 구상하는지, 나의 안내에 무척 신경을 썼다 된감기를 라진에 가서 평양의대 박사님의 치료로 감기를 단 돈50원에 뗀 셈 ▲ 권하 통상구로 돌아오는 다리에서 ▲ 저녘에 집에 오니 꽃들이 활짝 반긴다. 라진을 방문하고 맺는 말 아, 왜서8년 동안이나 가지 않았던가, 실북 나들이하듯 다니던 곳인데 라진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찬바람에 경색된 개성과는 판판 달랐다. 라진에서의 사람들은 활보(闊步)로
[그린경제=현용운 회장] ▲ 손말틀(휴대폰)가 기본상 보급 되었다는 감을 가졌다. 문자입력의 자소배치는 나의 오랜 조선친구 김명규안으로 표준화된 것이었다 이렇게 남ㆍ북ㆍ중 3개국의 법정문자가 모두다 자기방식대로 입력한다고 하니 지난 20년 동안 연길에서만 14차나 만나서 공동표준제정안을 수없이 다룬 게 무용지물로 된 듯한 허탈감을 느꼈다. 단, 수요시장은 그런 느릿느릿한 합의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느껬다 ▲ 라진 책방에서 구입한 컴퓨터 도서들 ▲ 귀국 전, 점심 때 45년 전 화룡 신동(新東)소학교 동창이자 주 체육위축구 구락부 주임이었던 친구 정룡준씨 일행을 만났다, 룡준주임의 부인 현정옥은 나하고 종친이자 역시 동창이기도 하다, 부르기 좋은 매형인 셈이다. 북경 체육대출신이다. ▲ 라진을 떠나면서 투숙했던 삼흥호텔앞에서 김파씨와 라진 1박2일 방짝인 고철룡씨와 함께 ▲ 우리를 초청하느라 수고한 김 신고(申告員을 칭하는 말인데 회사의 대외업무 총괄 같은 지위같었다,) 일어를 잘 한다고 들었다. ▲ 나의 방짝(룸메이트) 철룡이영어를 잘하는 친구이고 현재는 김파씨를 도와 생수사업을 돕고 있었는데 아주 착한 친구였다
[그린경제=현용운 회장] 나진 선봉지구는 두만강 어귀에 자리 잡은 북한의 특별구이다. 여기는 조ㆍ중ㆍ러가 마주 치는 삼각지대다. 중국이 바다로 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서려있다.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지만 연변 조선인은 비교적 자유롭다. 2013년 5월 현용운 회장이 다녀온 답사기를 옮긴다. 표기법과는 다른 데가 있지만 이해가 가능한 것은 고치지 않았다. 사진 중심으로 5번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주, 정리와 지도 작성 진용옥 명예교수) ▲ 구굴 위성에 표기한 현용운 회장의 여정도(술봉 진용옥 작성) ▲ 지명 지도 위키메피아에 나타난 원정-권화 다리의 모습 (술봉 진용옥 탐색) 2013년의 봄은 어느새 도심의 가로수 꽃보라를 3,4일만 피고는 빨리도 지나갔다. 화창한 봄날 달래 캐는 처녀들의 노랫소리는 옛말이고 봄이 없는 여름에 들어선 것이다. 2013년 5월 13일 나는 8년 만에 조선 라진선봉지역을 방문하게 되었다. 조선 술봉 무역회사의 초청과 만복 유통 김파 씨의 안내로 8년 만에 조선 땅을 딛게 된 셈이다. 5월 13일 연길에서 정확히 8시40분에 떠나 훈춘으로 가는 고속도를 타니 한 시간 10분이니 훈춘에 도착하였다. 다시 훈춘에서 권하(圈河)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