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 흰 저고리와 치마는 김마리아 열사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입었던 옷입니다. 70년이 넘은 옷이지요. 이 저고리를 보십시오. 안섶과 겉섶의 길이가 다르지 않습니까? 이것은 일제 고문으로 한쪽 가슴을 잃으셨기에 정상인들이 입는 저고리를 입을 수 없어 특별히 체형을 고려하여 지은 옷이지요.” 이는 그제(18일),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교장 최성이) 내 김마리아회관(kimmaria Hall) 전시실에서 조영호 교감선생님이 한 말이다. 김마리아 열사의 흰 치마저고리가 여러 겹의 포장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 기자도 가슴이 뛰었다. 마치 살아생전의 김마리아 열사를 보는 듯 감격스러웠다. 가슴을 도려내는 고문 속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지켜낸 조국 독립의 의지에 대해 이날 정신여고를 방문한 우리 모두가내내 숙연한 마음이었다. 그제 18일(화), 서울 정신여고를 방문한 사람들은 일본 고려박물관 전 이사장인 하라다 쿄코(原田京子) 씨와 도다 미츠코(戶田光子) 씨였다. 일본 고려박물관의 조선여성사연구회 회원인 이들은 2박 3일의 짧은 방한 기간 중이었지만 평소 존경해오던 김마리아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를 배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부산의 조숙한 문학소녀 경술국치 치욕의 날 자결한 아버지 뒤를 이어 타오르던 항일 투지 끝내 의열단 투신했었지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를 사랑하는 조선의 피 끓는 혁명가와 맺은 언약 신방에 타오르는 촛불 우국의 횃불 삼아 대륙을 휘저으며 일제에 대적하던 여장부 곤륜산 피 튀는 전투에서 마감한 서른네 해 삶 왜적의 총칼에 날개 꺾였으나 나라사랑 마음 생사 따라 변하지 않아 조국의 빛 찾던 날 피 묻은 속적삼 가슴에 품고 고향 땅 돌아온 남편 슬픔 삭일 때 긴 가뭄 끝 밀양 감전동 하늘에 때맞춰 내리던 단비 대지에 피처럼 스며들던 불굴의 투지여라. - 이윤옥 시 ’부산이 낳은 대륙의 불꽃 박차정’ 가운데- 햇살 따스한 어제(4일) 오후 2시, 칠산동(새주소: 동래구 명륜로 98번길)에 자리한 박차정 의사 생가를 오랜만에 다시 찾아 툇마루에 앉았다. 오월의 따스한 햇살이 부드럽다. 마침 그 자리에는 문화재해설사 주용돈 선생이 나그네를 반갑게 맞이한다. 올해 나이 80살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한 주용돈 선생은 박차정 의사 일가의 독립운동사를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들려준다. “박차정 의사의 아버지는 일제 침략에 항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머니(장경례 지사)는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자고등학교) 제1회 입학생으로 1928년 11월, 동교생이던 장매성, 박옥련 등 11명과 함께 소녀회(少女會)를 만드셨습니다. 조국독립과 여성해방을 목적으로 조직된 소녀회는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적극 참여하였고 시위 도중 부상을 입은 학생들을 치료하는 등 큰 활약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때 어머니 나이 17살 때이셨습니다.” 이는 장경례 지사(1913.4.6.~1997.12.1.)의 따님인 허찬희(83살), 허은회(81살) 자매의 증언이다. 가을 햇살이 따스하던 지난 10월 22일 월요일 낮 3시, 기자는 미리 약속한 장경례 지사의 따님이 살고 있는 수원 광교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인형작가인 장경례 지사의 큰 따님인 허찬희 씨 집에는가까이에 살고 있는 동생 허은희 씨도 미리 와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파트 거실 창 너머로 보이는 호수공원에 짧은 가을햇살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어머니 장경례 지사의 학창시절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머니는 당시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잡혀가는 바람에 박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