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스물넷째로 ‘큰 추위’라는 뜻의 대한(大寒)입니다. 하지만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꼭 소한보다 더 춥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크게 힘쓸 일도 없고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 것 말고는 대부분 놀고먹기에 삼시 세 끼 밥 먹기 죄스러워 점심 한 끼는 반드시 죽을 먹었거나 걸렀지요. 또 죽을 먹는 다른 까닭은 양식이 있는 겨울에 아껴서 돌아오는 보릿고개를 잘 넘기려는 의지도 들어 있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대한을 겨울을 매듭짓는 절후로 보아, 대한의 마지막 날 곧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 섣달그믐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 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지요. 그 절분의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으로, 이 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새해 첫날이 되지요. 김영현의 소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에 보면 "도시에서 온 놈들은 겨울 들판을 보면 모두 죽어 있다고 그럴 거야. 하긴 아무것도 눈에 뵈는 게 없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하지만, 농사꾼들은 그걸 죽어 있다고 생각지 않아. 그저 쉬고 있을 뿐이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동지(12월 21일(수))를 맞이하여 오는 12월 15일(목) 동지 세시행사를 진행한다. 잡귀 쫒고 동지팥죽도 먹고, 동지행사 동지는 이십사절기의 스물둘째 절기로 한 해 가운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따라서 동지가 지나면 점차 낮이 길어지므로 태양이 다시 태어난다고 믿어,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고 불렀다. 12월 15일(목),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동지와 관련된 동지고사, 팥죽 나누기 등 체험행사를 운영한다. 동지고사는 이른 11시부터 낮 12시까지 1시간 동안 야외전시장 오촌댁에서 진행된다. 동지고사는 팥죽고사라고도 불리는데 팥죽을 쑤어 각 방과 장독, 헛간 같은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둔 후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려 잡귀를 쫒기 때문이다. 또한, 이른 11시 30분부터 늦은 1시 30분까지, 늦은 2시 30분부터 늦은 4시 30분까지 2회에 걸쳐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서 관람객 2,000여명(회당 1,000여명)과 팥죽을 나누어먹는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길고 긴 겨울 밤, 동지 “우리 선조들은 왜 팥죽을 먹었을까?” 어린이박물관에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물한째에 해당하는 절기 “대설(大雪)” 입니다. 대설은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절기의 기준 지점인 중국 화북지방(華北地方)의 계절적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우리나라는 이 때 눈이 그리 많이 오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대설이 있는 이즈음 음력 11월은 농부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농한기(農閑期)이기도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 11월이라(時維仲冬爲暢月) 대설과 동지 두 절기 있네(大雪冬至是二節) 이달에는 호랑이 교미하고 사슴뿔 빠지며(六候虎交麋角解) 갈단새(산새의 하나) 울지 않고 지렁이는 칩거하며(鶡鴠不鳴蚯蚓結) 염교(옛날 부추)는 싹이 나고 마른 샘이 움직이니(荔乃挺出水泉動) 몸은 비록 한가하나 입은 궁금하네(身是雖閒口是累)“ - 이하 줄임 이는 열두 달에 대한 절기와 농사일 그리고 풍속을 기록한 김형수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의 일부입니다. 이즈음 관련된 속담으로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눈이 많이 내리면 눈이 보리를 덮어 따뜻하게 하므로 동해(凍害)를 적게 입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의미입니다. 요즈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무째로 소설(小雪)인데 이날 첫눈이 내린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이 무렵은 추위가 시작되지만 한겨울에 든 것은 아니고 아직 따뜻한 햇살이 비치므로 “소춘(小春)”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하지만,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는 속담이 전할 정도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김장을 서두르고, 여러 가지 월동 준비도 하지요.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기도 하며 곶감을 깎아 말리는 것은 물론,목화를 따서 손을 보기도 하고, 겨우내 소먹이로 쓸 볏짚을 모아두기도 합니다. 한편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는 것이지요. “입동(立冬) 이튿날에 이미 이러한 변이 있어 내 마음이 조심스럽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또 소설(小雪) 전날 밤에 눈[雪] 속에 천둥이 쳤다. 한겨울이 이미 다가왔는데도 변이가 그치지 않으니, 위로는 하늘의 견고(譴告, 잘못이나 허물을 꾸짖는 뜻을 알림)의 간절함이 두렵고 아래로는 자정(疵政, 나라를 다스리는데 잘못)의 많음이 부끄럽다.” 이는 《명종실록》 명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아홉째로 겨울에 들어선다는 입동(立冬)입니다. 입동 무렵이면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지요. 입동을 앞뒤로 하여 닷새 안팎에 담근 김장이 맛이 좋다고 합니다. 농가에서는 냉해(冷害)를 줄이기 위해 수확한 무를 땅에 구덕(구덩이)을 파고 저장하기도 하지요. 또 추수하면서 들판에 놓아두었던 볏짚을 모아 겨우내 소의 먹이로 쓸 준비도 합니다. 예전에는 소가 먹을 풀이 없는 겨울철에는 주로 볏짚을 썰어 쇠죽을 쑤어 소에게 먹였지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10월부터 정월까지의 풍속으로 궁궐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나이 많은 신하들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다고 하지요. 이런 궁궐의 풍습처럼 민간에서도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아름다운 풍속도 있습니다. 이는 입동(立冬), 동지(冬至), 섣달 그믐날에 나이든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아무리 살림이 어려운 집이라도 치계미를 위해 곡식을 내놓았다고 하지요. 입동에는 또 다른 아름다운 풍속도 있었습니다. 농가에서 고사를 많이 지내는데 음력 10월 10일에서 30일 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모레 23일 일요일은 24절기의 열여덟째 “상강(霜降)”입니다.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때인데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면 하룻밤 새 들판 풍경은 완연히 다릅니다.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수채색 물감으로 범벅을 만든 듯 누렇고 빨갛게 바뀌었지요. 그리고 서서히 그 단풍은 하나둘 떨어져 지고 나무들은 헐벗게 됩니다. 옛 사람들의 말에 “한로불산냉(寒露不算冷),상강변료천(霜降變了天)”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한로 때엔 차가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상강 때엔 날씨가 급변한다.”는 뜻입니다. 상강이야말로 가을 절기는 끝나고 겨울로 들어서기 직전이지요.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진 날 한 스님이 운문(雲門, 864~949) 선사에게 “나뭇잎이 시들어 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운문 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니라. 나무는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고(體露), 천지엔 가을바람(金風)만 가득하겠지.”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상강이 지나면 추위에 약한 푸나무(식물, 植物)들은 자람이 멈추지요. 천지는 으스스하고 쓸쓸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온한 상태로 들어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말뜻 그대로 찬이슬이 맺힌다는 24절기 열일곱째인 한로(寒露)이며, 모레는 우리 겨레가 명절로 지내왔던 중양절(重陽節, 重九)입니다. 한로와 중양절 무렵에는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가 먹었는데 국화술은 그 향기가 매우 좋아 많은 사람이 즐겼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막걸리에 노란 국화를 띄워 마셨지요. 또 이무렵에는 추어탕(鰍魚湯)을 즐겨 먹었습니다. '미꾸라지 추(鰍)' 자를 보면 '가을 추(秋)' 자 앞에 '고기 어(魚)' 자를 붙인 것으로 보아 미꾸라지가 가을이 제철인 물고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초강목》에는 미꾸라지가 양기를 돋우는 데 좋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음력 9월 9일을 중양절(重陽節), 또는 중구일(重九日)이라 했는데 여기서 중양이란 음양사상에 따라 양수(홀수)가 겹쳤다는 뜻이며, 중구란 숫자 '9'가 겹쳤다는 뜻으로 양수가 겹친 날인 설날ㆍ삼짇날ㆍ단오ㆍ칠석과 함께 명절로 지냈습니다. 신라 때에는 중양절에 임금과 신하들이 함께 모여 시를 짓고 품평을 하는 일종의 백일장을 열었습니다. 또 중양절에는 붉은 수유 열매를 머리에 꽂고 산에 올라 시를 지으며 하루를 즐기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줄다리기는 농경의식의 하나인 일종의 편싸움 놀이입니다. 그 가운데 충남 당진 기지시리에 가면 국가무형문화제 제75호로 지정된 “기지시줄다리기”가 있습니다. 이 줄다리기는 마을을 뭍(육지)과 바닷가쪽 두 편으로 나누는데 생산의 의미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바닷가 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줄다리기는 윤년 음력 3월초에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낸 다음 행해졌지요. 전설에 따르면 기지시리는 풍수적으로 옥녀가 베 짜는 모양이어서 베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시늉을 한데서 줄다리기가 생겼다고 합니다. 줄의 길이는 50∼60m이며 지름이 1m가 넘는 경우도 있어 사람이 줄을 타고 앉으면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라고 하지요. 또 줄이 커서 손으로 잡아당길 수가 없기 때문에 원줄의 중간 중간에 가늘게 만든 곁줄을 여러 개 매달아 잡아당기기 좋도록 만듭니다. 줄 위에 올라선 대장이 지휘를 하면 줄다리기가 시작되지요. 줄다리기가 끝나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칼로 줄을 끊어 가는데 이 줄을 달여 먹으면 요통이나 불임증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줄에 양잿물을 떨어뜨리거나 바늘을 꽂으면 줄이 끊어지고 여자가 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낮때와 밤때가 똑 같다 하느니 오면 앗 읽고 달 돋으면 임 생각고 고요히 깊어가는 갈 선비는 졸 닦고 위 노래는 일본 교토의 한밝 김리박 선생이 쓰신 “갈 같 날”입니다. 여기서 ‘갈같날’은 추분(秋分)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며, ‘앗’은 책, ‘갈’은 가을, ‘졸’은 지조(志操)를 뜻합니다. 조금 쉽게 풀어본다면 “추분은 낮과 밤이 똑 같다 하느니 / 추분 오면 책 읽고, 달 돋으면 임 생각나는 때라 / 고요히 깊어가는 가을, 선비는 지조를 닦고 있어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추분은 낮과 밤이 같다고 하는데 춘분과 함께 바로 “더함도 덜함도 없는 날”이어서 우리는 이때 중용(中庸)을 생각해봐야만 합니다. 세상일이란 너무 앞서가도 뒤쳐져도 안 되며, 적절한 때와 적절한 자리를 찾을 줄 아는 것이 슬기로운 삶임을 추분은 깨우쳐 줍니다. 더불어 가을 벌판 고개 숙이는 벼가 보여주는 겸손, 그리고 한여름 강렬한 햇빛과 천둥과 비바람을 견디어낸 벼의 향[香]를 생각해볼 때입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 한가위입니다. 이 한가위에는 여러 가지 세시풍속이 전해 오는데 그 세시풍속 가운데 민속놀이는 강강술래, 줄다리기, 가마싸움, 소놀이, 거북놀이, 밭고랑기기, 원놀이, 올게심니, 소싸움, 닭싸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밭고랑기기”는 전남 진도에서 전해지는 것인데 한가위 전날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나이대로 밭고랑을 깁니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된다고 믿었습니다. 더 재미난 것은 “거북놀이”입니다. 거북놀이는 수수 잎을 따 거북이 등판 마냥 엮어 이것을 등에 메고, 엉금엉금 기어 거북이 흉내를 내는 놀이지요. 이 거북이를 앞세우고 “동해 용왕의 아드님 거북이 행차시오!”라고 소리치며, 풍물패와 함께 집집이 방문하는데, 대문에서 문굿으로 시작하여 마당, 조왕(부엌), 장독대, 곳간, 마굿간, 뒷간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들보 밑에서 성주풀이를 합니다. 이때 조왕에 가면 “빈 솥에다 맹물 붓고 불만 때도 밥이 가득, 밥이 가득!” 마구간에 가면 “새끼를 낳으면 열에 열 마리가 쑥쑥 빠지네!” 하면서 비나리(걸립패가 마당굿에서 잘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