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제7회 벽파전국국악제전에서 ‘초한가(楚漢歌)’를 불러 영예의 대상을 받은 최은서 교사는 현재 서울 <한성여중>의 과학교사로 20여년 전부터 다양한 장르의 국악을 배워 왔다. 초한가는 서도지방의 유명한 좌창으로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항우의 싸움 이야기가 중심이며 가락은 서도 지역의 치켜 떠는 요성(搖聲)이 일품인 소리다. 이렇게 ‘초한가(楚漢歌)’를 불러 대상을 받을 정도로 학교의 선생님이 국악에 심취하게 되면 학교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바뀌어 간. 그가 근무하고 있는 한성여중에서는 올해 가야금병창 동아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고 한다. 국악 전공의 예술강사와 일반 교사가 협업하면 쉽게 동아리 활동이 확대됨에도, 학교 현장은 동아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국악동아리 활동을 통해 유대관계가 형성되면서 정체성에 대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되는데도 말이다. 그가 가끔 들려준다는 이야기 한 토막이다.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 견줘 우월한 분야가 하나둘이 아니겠지만, 저는 <노래>도 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세계에서 노래를 가장 사랑하고, 또한 잘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엇보다도 BTS가 이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7회 벽파전국 국악제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은 최은서 교사와의 대담내용을 일부 소개하였다. 현재 서울《한성여자중학교》에서 과학을 지도하고 있는 현직 교사로, 20여 년 전부터 풍물굿, 사물, 판소리, 경기민요, 서도민요 등을 틈틈이 배워 왔으며 현재는 이건자, 김경배, 유지숙, 조영숙, 명창 등에게 소리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서도지방의 긴소리, 초한가 ‘楚漢歌’를 불러 벽파 제전의 대상에 올랐는데, 서도지방이란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의 소리는 수심가조로 엮어진 소리가 대부분이다.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서도소리의 범주에도 여러 종류의 노래가 있다. 대표적인 장르로는 앉아서 긴 호흡으로 부르는 좌창(坐唱)과 시창이 있고, 여러 명이 서서 부르는 선소리 곧 입창(立唱)이 있는가 하면, 각 지방의 특징을 살리고 있는 다양한 통속민요, 그리고 이은관을 떠올리는 소리극 형태의 ‘배뱅이굿’ 등도 있다. 이 가운데 좌창의 대표적인 소리가 ‘초한가’, ‘공명가’, ‘배따라기’, ‘영변가’. ‘제전’ 등인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1,000쪽에 다다르는 벽파 이창배 저 《한국가창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경서도 소리를 비롯하여 판소리, 단가(短歌), 시창(詩唱), 송서(誦書), 불가(佛歌), 각 도(道)의 전통 민요와 신민요 등을 망라하고 있다는 이야기, 성경린ㆍ이혜구ㆍ김기수 등 국악계 원로 등은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자, 교수, 학생들의 필독서’, ‘사설만이 아닌 악보의 첨가,’ 등으로 한국 경서도창의 대표적인 문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해 12월 5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관에서 선생의 아호를 걸고 열린 바 있는 제7회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은 최은서와의 대담내용을 소개하기로 한다. 수상자는 서도의 긴소리 초한가<楚漢歌>를 불러 대상을 차지했는데, 그는 현직 중학교 교사여서 더더욱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는 이미 20여 년 전, 교사가 되면서부터 풍물굿이나 사물, 판소리, 경기민요, 서도 민요 등을 틈틈이 배워 온 실력자로 서울 <한성여자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다. 그가 풍물굿을 배우고, 판소리를 접하다가 경서도 소리에 심취하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앞에서 벽파 선생은 경서도 민요를 소리로 지켜온 명창, 소리꾼으로는 흔치 않은 학자(學者), 시대를 앞서가는 국악교육자, 무엇보다도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존경을 받아 온 대 사범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있어 선생은 역사에 눈을 뜨게 해 준 분이었다. 선생은 민요시간에도 사설 중에 역사적 인물, 지역 이름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으로 실감이 나게 풀어내 마치 역사 공부 이상의 수업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는 벽파 이창배의 역저 《한국가창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벽파 선생은 예전부터 불려 내려온 민요들을 정리하여 《가요집성》을 펴냈고, 이를 수차례에 걸쳐 《증보 가요집성》을 낸 바 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대대적으로 보완, 증보하여 1976년 2월, 경서도창의 교본, 《한국가창대계》를 완성한 것이다. 이 책을 펴내게 된 배경을 보면 국악 중에서도, 성악 분야에 있어서 난해한 가사가 많아 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마침 <홍인(弘人)문화사>의 획기적인 시도로 성악곡 전반에 걸쳐 해설과 아울러 난삽한 어휘를 일일이 주해를 붙이고, 겸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앞에서 벽파는 <청구고전성악학원>의 설립과 운영, 선소리 산타령의 예능보유자 인정, 《가요집성》, 《한국가창대계》의 출간 등 공연이나 방송활동 외에도 교육과 저술 등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10여 년 전 ‘벽파학술대회’에서 나는 벽파야말로 “경서도 민요를 소리로 지켜온 명창”이며 소리꾼으로서는 흔치 않은 학자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는 명창이며 학자가 전부는 아니었다. 벽파 선생이야말로 민요의 중요성을 강조한 진정한 국악교육자였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1955년, 전쟁의 후유증으로 모두가 힘겨운 재건운동을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서울 종로3가에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세우고, 일반인과 정규 수강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국악고교>와 <국악예술학교>를 비롯하여, 국악 전문가를 꿈꾸는 젊은 학생들에게 좌창이나 입창, 일반 민요 등 경서도 소리를 지도하면서 이 분야의 확산 운동에 앞장서 왔다. 그 결과, 2021년 현재 경서도 민요와 관련한 국가와 지방의 예능보유자나 전승교육사 대부분은 그의 직간접 제자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7회 벽파 전국국악경연대회 관련 이야기로 <벽파(碧波)>라는 이름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벽파란 경서도 명창 이창배 선생의 아호(雅號)라는 점, 1916년 서울 성동구 출생이며, 원범산과 최경식에게 잡가와 가사, 이명길, 탁복만에게 산타령을 배워서 오늘에 이어주었다는 점, 해방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경서도 소리 공부를 하였고, 1955년에는 종로 3가에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세워 경서도 입창, 잡가, 속요들을 중심으로 가르쳤는데, 당시 전문인, 비전문인 등이 모두 이곳에서 그의 지도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1960년대, 선소리 산타령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벽파는 김순태, 김태봉, 정득만, 유개동 등과 함께 이 종목의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그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서울음대 이혜구 교수, 국립국악원장 성경린 등과 함께 《국악대전집》과 《민요삼천리》를 펴냈다. 또한 1976년까지 《가요집성》을 7차례 증보하여 경서도 소리의 전범(典範), 《한국가창대계》를 출간하였다. 이것은 경서도 소리를 위해 매우 유용한 저서로 지금까지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제7회 벽파 전국국악경연대회가 지난 12월 12(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작년에는 감염병으로 인해 대회 자체가 열리지 못해 아쉬웠는데, 올해에는 비(非) 대면(對面)으로 실시하는 영상 심사로 예선을 거친 뒤, 본선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2021년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돌림병 확진자가 줄어들기는커녕, 또 다른 새로운 이름의 병균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어서 매우 불안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철저히 방역해 가며 대회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년에 견줘 다소 출전자들이 줄기는 했어도 100여 명 이상이 참가신청을 냈다고 하니 벽파 대회의 위력은 나름대로 살아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제7회 대회에서 명창부의 대상은 서도좌창 가운데서 초한가(楚漢歌)를 힘차게 부른 최은서가 차지하였다. 초한가란 어떤 노래인가? 아니 그보다도 벽파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벽파(碧波)>란 무슨 뜻이고 누구를 일컫는 이름인가? 벽(碧)은 푸르다는 의미, 또한 파(波)는 물결이라는 의미여서 벽파란 <푸른 물결>을 뜻한다. 바로 경기민요의 대명사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금슬상화(琴瑟相和)라는 말이 있다. 금이라는 악기와 슬이라는 악기가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보통 부부 사이가 좋을 때, ‘금실이 좋다’는 표현을 한다. 슬을 타는 자는 그 뜻을 슬에 두지만, 금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금을 타는 자, 역시 그 뜻은 금에 두되, 그 슬과 더불어 조화를 통해 즐거움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무룻 여기에 조화를 모르는 자는 즐거움 또한 넓지 아니하며 뜻도 없고 음악의 역할도 구차하게 스스로 얽어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악기를 붙잡고 그 솜씨를 다투는 자와 비슷할 것이다. 마음의 교류를 통하여 조화의 멋을 느끼며 유유자적하던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흔히 영산회상이나 가곡을 일러 ‘점잖은 음악’이라고 말한다. 점잖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을 말함인가? 성재 유중교(1821~1893)는 이항로의 문인으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던 인물로 유명하다. 외국과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에 척사위정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유고로는 《성재문집》 60권이 있다. 그 유중교가 쓴 《현가궤범》 서(序)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듣건대, 세상에 금(琴)과 가(歌)에 종사하는 자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영산회상>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 음악은 전문 국악인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큰 고개라는 이야기, 영산회상과 관련하여 1970년대 중반, 서울 음대에 출강하고 있던 서한범과 김선한(거문고)은 김정자의 제안으로 정악 공부 모임인 【정농악회】를 조직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농악회】의 원로 사범으로는 김천흥(해금), 김성진(대금), 김태섭(피리, 장고), 봉해룡(단소), 이석재(피리, 장고) 선생 등으로 이분들은 오로지 영산회상 중심의 정악만을 연주해 온 정통음악인들이라는 이야기를 더했다. 또 크고 작은 소리의 대비, 강하고 약한 소리, 잔가락이나 표현적인 시김새의 처리, 장단과의 호흡, 관(管)가락과 현(絃)가락의 조화, 내 소리와 다른 악기와의 조화 등등, 우리는 원로들과 함께 연습하면서 그분들로부터 배운 경험은 지금도 소중한 자산이 되어 후진 양성에 큰 교훈이 되어 왔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예기》 중에서 악기(樂記) 편에 나오는 말이다. “음악의 생성은 음양의 기(氣)가 흘러 하나 되고, 화(化)하여 일어나며, 만물의 변하여 이루는 것이 곧 악(樂)이요, 악을 천지의 화합이라고 한다. 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나는 영산회상과 관련하여 잊지 못하고 있는 경험담을 지니고 있다. 1970년대 중반이다. 당시 서울 음대에 출강하고 있던 나와 이화여대의 김선한(거문고)은 기말 전공시험의 채점을 마치고, 서울 음대 국악과 김정자 교수의 제안으로 함께 식사와 차를 나누며 영산회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주된 내용은 오늘 시험에 치른 학생들의 연주 능력이나 해석이 제각각 달라 지도하는 선생들이 더욱 더 근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하여 우리 3인과 한양대학의 양연섭(양금) 교수는 함께 정악 공부 모임인 【정농악회】를 조직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국악계의 원로 사범이었던 김천흥(해금), 김성진(대금), 김태섭(피리, 장고), 봉해룡(단소), 이석재(피리, 장고) 선생 등을 모시고, 정례적으로 영산회상 합주를 주 1회 정도 공부한 적이 있다. 겨울에 시작된 공부가 3달 정도 지날 무렵, 우리 젊은이들은 노 선생들과 함께 영산회상 전곡을 국립극장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로 하고 연습계획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젊은 교수들은 ‘매매일의 일정이 바쁘다.’, 또는 ‘이미 다 배워서 잘 알고 있는 곡이며, 현재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