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조선시대의 형벌은 오형(五刑)으로 ‘태장도유사(笞杖徒流死)’입니다. 곧 회초리, 곤장, 징역, 유배, 사형이 그것이지요. 재산과 관련한 형벌이 없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우린 흔히 유배 생활을 매우 어려운 시간이라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사 박문수가 신처수의 유배지를 방문했을 때의 기록입니다. "바로 신처수(申處洙)의 유배지로 갔다. 이곳은 생양역(生陽驛) 부근으로 관아에서 서로 마주 보이는 곳이다. 들판 가운데 있는 촌락은 쓸쓸한 데다 거처하는 방도 누추하고 으슥했다. 자리 오른쪽에는 책 몇 질이 놓였고 창문 바깥으로 학생 몇 명이 있었다. 이는 근심을 해소하고 번민을 떨쳐버리기 위한 것이다. 문 앞에 농민들이 일할 때 쓰는 농막 같은 누각이 있기에 물어보니 날이 너무 더우면 위에 올라가서 땀을 식힌다고 한다. 즉시 서로 손을 잡고 올라가 마주 앉아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이 저물어 관아로 돌아와 묵었다." 또한 이익필은 북정록에서 자신의 유배 생활을 기록했는데 "유배지는 덕원에서 50리다. 거처할 곳은 이미 서문 밖 김예길의 집으로 정해두었다고 한다. 그 집에 이르니 김예길이 절하며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狂噴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롱산) 미친 듯이 흘러 첩첩 바위 때리며 겹겹 봉우리를 향해 소리치니 지척에 있는 사람 소리도 알아듣기 어렵구나 속세의 시시비비 소리 귀에 닿을까 항상 걱정되어 일부러 흐르는 물로 온 산을 감싸 버렸구나 신라말 명문장가 고운 최치원(857 ~ ?)의 시입니다. 제목을 <제가야산독서당>으로 한 것으로 보아, 말년에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쓴 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운은 해인사에 머물면서 홍류동 계곡에서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시 내용으로 보아 고운은 책을 읽던 독서당에서 귀를 멍멍하게 소리를 지르며 내닫는 계곡물을 바라보다가, 문득 시상이 떠올라 이 시를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고운은 물소리를 들으며 속세의 시시비비 소리 귀에 닿을까가 걱정되어 일부러 흐르는 물로 온 산을 감싸 버렸다고 하는군요. 왜? 속세의 연을 완전히 끊지 못하고 자꾸 바깥 속세의 소리에 귀를 쫑긋거려서? 아니면 속세를 잊고자 하나, 계속 고운을 쫓아오는 속세의 소리를 굳게 차단하고 싶어서? 하여튼 가야산은 흐르는 물로 온 산을 감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어느 날 들판에 나갔던 양치기 소년은 외롭게 버려진 하얀 망아지 한 마리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소에서 나온 우유를 먹이며 정성을 기울여 마침내 하얀 망아지는 늠름한 말이 되어 소년이 양을 칠 때에 늑대들로부터 양을 지켜주었다. 둘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인 유대가 커 갔다. 그즈음 말타기 대회에서 1등 하는 자는 원님의 사위로 삼겠다는 마을 원님의 공약이 온 초원을 바람을 타고 이 소년의 귀에까지 들려온다. 소년도 하얀말과 함께 출전한다. 그리고 당당히 1등을 한다. 그런데 힘차고 멋진 말과 부와 기백을 겸비한 강한 청년이길 기대했던 원님은 1등을 한 사람이 가난한 양치기 소년임을 알고는 말은 빼앗고 소년에게는 상 대신 매를 때려 내쫓는다. 자신을 돌봐준 소년과 갈라진 하얀말은 감시가 허술한 틈을 이용해 소년이 있는 집 쪽으로 달려가는데 뒤쫓아오던 군사들에 의해 집 바로 앞에서 화살에 숨을 거둔다. 눈앞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하얀말을 죽음으로 맞이한 소년은 당장 복수를 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기왕에 저세상으로 떠난 하얀말과 평생을 함께할 방법을 생각해 낸다. 그것은 하얀 말의 뼈와 가죽과 심줄 그리고 털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온돌 문화는 우리나라의 아주 독특한 문화입니다. 바닥 난방을 중심으로 하는 주거문화의 한 형태로 한국인들이 기후 환경을 슬기롭게 활용한 삶의 방식이지요. 온돌은 다른 나라에서 보이지 않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여서 2018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합니다. 옛 선조들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있을 때 비교적 높은 곳에 정자를 지었습니다. 정자는 자연을 감상하면서 한가로이 놀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아담하게 지은 집으로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 있는 구조이지요. 우린 정자의 이름에 쓰이는 루와 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루(樓)’는 주로 1층으로 하단이 뚫려있는 다락집 형태로 비교적 규모가 작고 ‘각(閣)’은 2층 이상으로 루보다 크고 웅장합니다. 서울 종로에 있는 보신각(普信閣)을 다르게 종루 또는 종각으로 불러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는데요. 굳이 따져보자면 종각(鐘閣)이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자에 온돌을 깐 건물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왕의 거처인 경복궁 안에 있는 향원정이지요. 향원정(香遠亭)은 향기가 멀리 간다는 의미로 주렴개의 애련설(愛蓮說)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향원정은 주로 왕과 왕실 가족들의 휴식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64) 견훤은 절영마를 왕건에게 바쳤다. 그런데 미래를 예언하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고 무척 후회를 했다. ‘절영마를 보내면 백제가 망한다.’ 고민하던 견훤은 왕건에게 사람을 보내 돌려받기를 청했다. 왕건은 웃으면서 허락했다. 《해동악부》 중에서 어떤 보물이든, 보물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애환과 사연이 녹아있다. 그러나 그 어떤 귀중한 보물이라도 세월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천 년이 넘는 세월과 함께 전설로 묻혀버린 보물도 많다. 그렇게 사라진 보물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후대 사람들의 귀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설흔이 쓴 이 책,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역사 속 보물 이야기》는 낙랑의 자명고, 신라의 만파식적처럼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보물과 함께 그림자보다 빠른 말 ‘절영마’, 책을 으뜸가는 보물로 여겼던 책장수 ‘조신선’처럼 생소한 보물과 인물도 다룬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절영마’다. 절영마 이야기는 조선의 대학자 이익이 쓴 《해동악부》에 나온다. 《해동악부》는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시의 형식으로 쓴 글이다. 이익은 절영마 이야기를 통해 견훤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p.65) 말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유방을 도와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한신입니다. 무수한 공을 세워 유방에게 천하를 안겨주고 자신은 제(齊)왕과 초(楚)왕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원래 항우의 군대에 입대했지만, 중용 받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항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유방의 진영으로 발걸음을 옮기지요. 그는 생애가 화려한 만큼 많은 고사성어를 만들어 냅니다. ‘과하지욕((胯下之辱)’으로 불량배 가랑이 사이를 지나가는 치욕을 참아 목숨을 부지하고 초왕이 된 뒤에 그를 찾아내 용서하고 벼슬을 내렸다는 고사와 ‘일반천금(一飯千金)’으로 동네 아낙이 한신을 불쌍히 여겨 밥을 주면서 "당신에게 돌려받을 것은 생각도 안 한다."라고 했는데 후에 천금으로 보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사면초가(四面楚歌)’로 항우와의 마지막 결전인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사지로 몰아넣은 이야기와 함께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유방과 군대의 운영을 두고 설전을 벌인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 그것인데요.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가 필요 없게 되어 주인이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우리문화신문=임세혁 교수] 2012년 10월 6일 자 빌보드 차트 순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2위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8년 정도가 지난 2020년 9월 5일 방탄소년단의 <Dynamite>가 빌보드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우리랑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빌보드는 이제 한국 음악 시장의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김치와 태권도만이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과거와 달리 K-POP이라는 우리의 대중음악으로 외국에 우리를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임세혁의 K-POP 서곡’은 아무것도 없는 맨땅 위에 치열하게 음악의 탑을 쌓아서 오늘에 이르게 만든 음악 선학들의 이야기다. 아침에 평소에 하던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으로 뉴스 기사를 훑어보다가 한 부분에서 눈길이 멈췄다. [속보] 학전 이끈 김민기 별세... 향년 73세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곡 <아침 이슬>의 작곡가이자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대표되는 대학로의 전설적인 극단 ‘학전’의 수장인 김민기의 별세 소식이었다. 한국 첫 자작가수(싱어송라이터) 음반을 발매한 음악인이자 수많은 배우를 키워낸 한국 대중예술계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몽골에 왜 가려고 합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별 보러 간다는 것이리라. 우리나라가 산업화한 이후 밤하늘에도 매연이건 연무건 완전히 걷히지 않아 도시에서는 영 별을 제대로 보기 어렵고 그러기에 몽골의 사막 한 가운데에 가면 별이 잘 보일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다녀오신 분들의 증언도 많이 떠돌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 사실 여름이 우리나라가 무덥기에 습도가 낮은 시원한 사막의 밤을 즐기자는 것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몽골의 밤하늘은 어디에서 보면 좋은가? 수도인 울란바토르 일대도 이미 상당히 매연이 번지고 있어 도시 안에서는 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수도 옆 30분을 나가면 교외에 테레지라고 하는 멋진 풍경구가 있긴 한데 별을 보는 최적지는 아니란다. 그래서 우리가 간 것은 고비사막의 한가운데다. 수도에서 포장도로로 7시간, 다시 비포장도로로 1시간, 보이는 것은 누런 모래와 자갈과 말라죽은 이끼류뿐. 길도 없는 길을 타이어 바퀴 자국만 따라 잘도 찾아 달려 마침내 천막촌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곧 석양이 진다. 밤이 오는 것이다. 아 드디어 밤이구나. 사막의 밤이구나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7월 13일, 14일 이틀에 걸쳐 국악의 성지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에서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창극단이 제57회 정기공연 창극 <춘향>을 선보였다. 이 공연은 2012년 전주세계소리축제 초청작으로 ‘춘향아씨’로 선보인 이후 12년 만이다. 춘향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로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음악으로 ‘사랑가’와 ‘쑥대머리’가 인기 있는 눈대목이다. 춘향가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로 고전 소설, 신소설, 현대소설 ‘춘향전’으로 지속해서 개작되며 대중들과 만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단순한 남녀의 사랑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 속에는 부정부패한 탐관오리들에 대한 질책과 높고 낮음이 없는 신분에 관한 이야기, 여성의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담으며, 사회적 모순과 비판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또한, 춘향가는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하며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야기로 서울 국립창극단이 정기적으로 올리는 창극으로도 유명하다. 오랜 세월 동안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단골 소재인 것이다. 이렇듯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와 노래로 대중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거기에 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81)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일세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라 메꽃 같은 우리 딸이 시집 삼 년 살더니 미나리꽃이 다 피었네 표독한 장희빈, 천사 같은 인현왕후, 사랑에 눈멀어 부인을 내치는 숙종… 어느덧 역사를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선명한 선악의 구도는 어쩔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대립이 수많은 사극에서 무수히 변주되는 까닭이다. 인현왕후 폐비는 당대에도 참 충격적인 사건이기는 했다. 조선 개국 이래 왕후가 폐출되어 사가로 나가게 된 것은 처음이었으니, 당시 지식인들과 관료들은 군주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젊은 임금 숙종의 혈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임생이 쓴 이 책, 《인현왕후전》은 계축일기나 한중록과 더불어 대표적인 궁중문학으로 꼽히는 소설이다. 작자는 인현왕후를 모시고 있던 궁인이라는 설도 있고, 왕후 폐출에 반대하던 박태보의 후예나 왕후의 친정 가문에서 지은 것이라는 설도 있다. 줄거리는 대체로 다 아는 바다. 인현왕후 민씨는 숙종 당시 병조판서이던 민유중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름답고 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