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잔치마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승재, 신희숙, 이새봄 단원을 소개하였다. 오승재는 타악기 전공으로 <우도농악>과 <진도 북놀이>, <남사당놀이>,《잔치마당》단무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핵심단원이고, 행정 팀장 신희숙은 잔치마당의 기획공연을 운영해 온 문화 행정통으로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직원이고, 이새봄은 어린이 국악극 <금다래꿍>의 배우, 퓨전 국악뮤지컬 <탈>의 작가 겸 연출, 출연까지 맡고 있는 능력있는 단원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국악전용극장인 <잔치마당 소극장>의 기획 프로그램이었던, ‘명인 명창 초청’ 관련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앞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인천지방에서 전통음악 관련 공연이나 춤, 또는 전통연희의 명인명창을 초대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기획은 무대의 조건이나, 출연자 선정이나 섭외과정의 문제에서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잔치마당 소극장> 명인명창전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그 결과 2013년에 시작된 제1회 명인명창전은 인천과 관련있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8도 아리랑 부르기 축제> 이야기와 코로나 상황에서 유튜브 중계가 예상 밖으로 반응이 좋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잔치마당의 유일한 창업 공신 김호석 부단장을 소개하였다. 김호석은 진도 북놀이와 남사당놀이, 부평구 연합 풍물단의 강사와 단장, 인천지역의 청소년 풍물단, 옹진군, 연평도, 백령도, 등 외지를 순방하며 풍물을 지도해 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잔치마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승재, 신희숙, 이새봄 단원을 차례로 간략하게 소개한다. 먼저, 오승재 단원은 국악의 타악기를 전공한 사람으로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오래전에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7호인 <우도농악>의 설장구 예능과 동 제18호 <진도 북놀이>의 예능을 이수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의 전수자로 활동하면서 전통연희단《잔치마당》의 단무장으로 서광일 단장을 도와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핵심단원이다. 현재 부평구 부개1동과 십정2동, 그리고 산곡동의 동 사물놀이팀의 지도강사를 맡고 있으며 열심히 지도하는 강사로 정평이 나 있다. 오승재는 잔치마당과 인연을 맺기 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국악전용 공연장은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취미 풍물반의 운영이 성공적이었으나 풍물만으로는 시민들의 욕구를 수용하기 어려워 숙고 끝에 <명인 명창전>을 기획하게 되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어서 지역의 문화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번 주에는 소극장에서 열린 <8도 아리랑 부르기 축제>, 곧 아마추어 소리꾼들이 전국의 아리랑을 통해 경연을 펼치는 잔치마당이다. 정선, 밀양, 진도, 등 전국의 아리랑을 3분 이내에 불러서 청중평가단과 전문평가단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소리꾼을 뽑는 방식이다. 한 시간 내내 아리랑 대회가 이어지면서 관객들에게는 아리랑에 대한 인식도 심어줄 수 있었고 그러면서 청중평가단으로 참여할 수 있다. 또한 경연자들은 <대회>라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축제는 우리가 몰랐던 지역의 아리랑을 새롭게 듣게 됨으로써 아리랑의 새로운 발견이나 풍부한 정서를 체감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보람이 있었다. 특히, 공연하는 무대와 관객 사이 간격이 떨어져 있지 않아 공연자와의 친근감이나 따뜻한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장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은 한국과의 오랜 교류의 역사를 학교에서 상세히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고대로부터 오랫동안 일본과 한국이 교류해온 사실을 알고 더 나아가 일본이 행한 식민지시대의 사실을 알아야 우리 일본인들이 사죄의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고려박물관은 많은 일본인에게 한국과의 역사적 사실과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재일동포를 비롯하여 한국인과의 화해의 길을 열어 좋은 관계 개선을 이루고자 활동해왔습니다.” -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 하라다 쿄꼬 지음, 197쪽- 일본의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 이사장을 지냈던 하라다 쿄꼬(原田京子) 이사장(재임기간, 2013.11~2018.10)으로부터 책 한권을 받았다. 이 책의 제목은 《私と韓国、感謝と謝罪の旅》이라는 제목으로 책 표지에는 한국어로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하라다 쿄꼬 이사장이라고 하면 한국에도 널리 소개되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듯하다. '조선 침략 역사를 반성하는 대표적인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인 하라다 쿄꼬 이사장은 올해 나이 81살로 그는 2002년 3월, 일본에서 장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서서히 음의 기운이 커지는 24절기 열여섯째 추분(秋分)입니다. 《철종실록》 10년(1859) 9월 6일 기록에 보면 “추분 뒤 자정(子正) 3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세 번 치던 일)를 치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여기서 중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 겨레는 추분에도 더도 덜도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도를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또 추분 무렵이 되면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뜨거운 햇볕, 천둥과 큰비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입니다. 내공을 쌓은 사람이 머리가 무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것과 벼가 수많은 비바람의 세월을 견뎌 머리가 수그러드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벼에서는 향[香]이 우러나고 사람에게서도 내공의 향기가 피어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간에 들리누나 /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 백곡을 여물게 하고 만물을 재촉하니” 정학유(丁學游)의 ‘농가월령가’ 8월령에 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한국의 풍물을 지도하고 있는 박호진 교장의 초청으로 잔치마당이 미국을 방문, 공연과 교육, 행진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한국의 풍물패가 미국 땅에서 공연을 펼친 예는 70년대 초, 미국 LA에서 열린 제1회 <코리안 퍼레이드>, 곧 <한국의 날>행사가 된다는 이야기, 이 행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 고유미를 발휘한 풍물패의 행진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모자에 달린 긴 줄로 그리는 원의 광경은(12발 상모) 누구나 ‘감탄할 묘기’였다는 신문 기사를 소개하였다. 이번 주부터는 2004년 7월, 인천에 세워진 국악전용 공연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본다. 이 전용 공연장은 인천시청이나 어느 구청에서 직접 새로 지었거나 기존의 건물을 증축한 형태도 아니고, 어느 독지가가 공공의 이익이나, 문화 예술의 발전을 위해 새로 건물을 신축한 것도 아니다. 단지, 풍물을 좋아하는 서광일을 위시한 풍물패 몇 사람이 의기투합해 그들의 연습 장소를 구하고, 그 건물의 지하층을 활용하여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꾸민 공간이다. 원래 이 건물은 <꿈나무 어린이 소극장>으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잔치마당>의 나라 밖 공연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소개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는 상모에 모터가 달려 있는지 궁금해하는 아프리카 연주팀의 이야기와 우리의 장고가락을 흉내 내는 외국의 타악기 연주자 이야기, 그리고 기악의 경우에는 악기 편성이 음악의 성격을 판가름하는 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이번 주에는 미국의 샌디에이고에서 한국의 풍물을 전파하고 있는 열성 교포 한 분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잔치마당의 서광일 대표는 어느 날, 미국의 박호중 씨로부터 도움 요청이 담긴 다음의 문자를 받게 된다. “저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풍물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전문 인력이 부족한 탓에 교육의 한계를 느끼게 되어 이 점을 한국 <잔치마당>의 인력으로 보완하고 싶은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하는 내용이었다. “낯선 문자를 받기는 했으나 내심 뿌듯했습니다. 머나먼 바다 건너, 그것도 우리의 정서와는 완전히 상반된 서구문화권에 사는 분이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풍물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 차마 감동을 거두기 어려웠습니다.” 초청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그 꽃을 어디서 보았을까? 아주 오래전의 일로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어느 작고 아담한 암자의 뜨락이었던 것 같다. 한 겨울에 눈송이처럼 마른 벚나무 가지에 피어있던 연분홍이라기보다 흰색에 가깝던 그 연약한 꽃을 나는 어쩌다 핀 ‘겨울벚꽃’ 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꽃에 이름이 있었다. 후단자쿠라(不断桜)! 얼마 전, 일본의 중견 시인이 보내온 시집 제목이《不断桜, 일본 발음은 후단자쿠라, 이하 ‘不断桜’》였다. 우리말로 한다면 ‘겨울벚꽃’ 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쓴 일본의 중견 시인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75) 씨는 윤동주의《空と風と星と詩(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도쿄 콜삭사에서 펴내(2015년 7월) 한국에도 꽤 알려진 시인이다. “후단자쿠라(不断桜)는 11월부터 4월까지 피는 벚꽃입니다. 원래 벚꽃은 봄에 피는 것이지만 후단자쿠라는 늦가을부터 봄을 맞이하기까지 피는 꽃이라 더욱 마음이 끌려서 책 제목을 그렇게 지었지요. 이번에 낸 시집은 약 10년 만에 낸 책입니다. 약간 망설임이 있었지만 나이도 있어서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시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그동안 틈틈이 써둔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꼬리가 긴 남은 더위도 차츰 물러가고 산양에는 제법 추색(秋色, 가을빛)이 깃들고 높아진 하늘은 한없이 푸르기만 하다. 농가 초가집 지붕 위에는 빨간 고추가 군데군데 널려 있어 추색을 더욱 짙게 해주고 있는가 하면 볏논에서는 어느새 ‘훠이 훠이’ 새를 날리는 소리가 한창이다.” 위는 “秋色은 「고추」빛과 더불어 「白露」를 맞으니 殘暑도 멀어가”란 제목의 동아일보 1959년 9월 8일 치 기사 일부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다섯째 <백로(白露)>인데 백로 즈음의 풍경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백로는 “흰이슬”이란 뜻으로 이때쯤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힌다는 뜻이지요. 백로부터는 그야말로 가을 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때입니다. 이때쯤 보내는 옛 편지 첫머리를 보면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포도가 익어 수확하는 백로에서 한가위까지를 <포도순절>이라 하지요. 또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하는데 이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에 넣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잔치마당>의 나라 밖 공연 이야기를 하였다. 30여 년 동안 프랑스를 비롯, 30여 개 나라, 50여 도시에 초청되어 공연해 왔으며, 한국 문화에 대한 방문국의 깊은 관심에 기뻤고, 책임감도 느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세계 드럼 페스티벌> 때, 각국의 난타 공연이 끝나고, 한국 <잔치마당> 연주자들이 악기와 의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아프리카 연주팀이 찾아와 잠시 머뭇거리더니 “상모에 모터가 달려 있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해당 연주자는 즉답 대신 웃으면서 상모를 가져와 보여주면서 모터는 물론이고, 그 어떤 장치도 없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그 아프리카 연주자는 한국의 타악기 연주자들이 아무런 도구 없이, 오직 몸으로만 상모를 돌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로 보면 우리의 가락, 우리의 전통문화는 저물어가는 시대의 잔상이 아니라 새롭게 여물어가는 미래의 씨앗이라는 표현이 더더욱 적절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과거의 전통문화를 현대라는 틀에 접목해서 색다른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은 예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