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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송흥록 소리를 사랑한 명기, 맹렬 이야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판소리, 또는 산조(散調)음악에 쓰이는 장단형 가운데 가장 느린 형태가 <진양 장단>이라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또한 진양 1장단의 길이를 6박으로 볼 것인지, 6박×4장단으로 해서 24박으로 볼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진양 장단>의 완성은 동편제(東便制)의 명창, 송흥록이 그의 매부(妹夫)인, 중고제(中古制) 명창, 김성옥으로부터 진양조를 처음 듣고, 그것을 여러 해 갈고 닦아 완성에 이르렀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그 일부를 소개하였다,

 

송흥록은 1780년대 태어나서 180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판소리 동편제의 중시조(始祖)로 알려진 대명창이다. 특히 그가 진양조를 완성했다는 기록은 1940년,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비치고 있는데, 구체적인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맹렬’이라는 여인과 만나게 된 배경과 헤어짐 속에서 이루어졌던 이야기이다.

 

 

명창, 송흥록이 대구 감영에 소속되어 있는 명기(名妓)로 노래와 춤이 뛰어나다는 맹렬로부터 ‘미진한 부분이 있다’, ‘더 연습해야 한다(피를 더 쏟아야 한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 곧 수긍하기 어려웠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보통 소리꾼 같으면 맹렬에게 거세게 항의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평가 자체를 무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송흥록은 그의 평가를 존중하고, 그 길로 고향땅 운봉으로 돌아가, 폭포 밑에서 다시 소리 공부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대명창이 될 예술가가 지닌 참된 겸손이 아닐 수 없다.

 

알려진 바와 같이 옛 명창들은 주로 폭포가 있는 산속이 연습장이었다고 한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소리꾼의 발성이 폭포를 뚫고 사람들에게 전달이 될 만큼 힘차고 강렬한 소리를 지녀야 명창이 될 수 있다고 전해 오기 때문이다. 확성 장치가 없으면 발성이 안 되고, 마이크가 없으면 소리가 힘들다는 젊은 소리꾼들이 말하는 현재의 연습환경과는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 폭포 밑에서 훈련하기 시작한 송흥록은 3달이 지난 어느 날, 과연 그의 목에서 피를 토하기 시작하며 목이 터지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에는 자신의 목소리가 폭포를 뚫고 건너편으로 전달이 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마치, 동편제 소리의 힘차고 당찬 면모를 확인하는 듯 느껴지는 것이다.

 

자신감을 되찾은 송흥록은 또다시 대중 앞에 서기 시작하였고, 고관대작들의 초대에 응하기 시작하다가 다시 대구 감영에 초대되어 소리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만회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과연 전과는 완전히 달리, 이번에는 소리도 소리이려니와 자신감이 고조되어 소리가 자유자재로 만들어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감을 여지없이 발휘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정신은 맹렬 여인의 동정을 살피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고, 맹렬 또한, 송흥록의 소리에 크게 만족하면서 그 소리판이 끝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한다. 소리판이 끝나자, 이번에는 기녀 맹렬의 태도나 결심이 또 송흥록을 놀라게 만드는 것이다.

 

소리판이 끝나는 즉시, 그녀는 송 명창과 함께 송흥록의 고향 운봉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로부터 물심양면으로 송흥록을 돌봐주는 후원자 겸 연인 관계가 되었다.

 

송흥록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 소리를 지켜주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으며 그를 위해, 대구 감영을 포기하고 스스로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 맹렬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人間事),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둘의 관계가 원만한 듯했으나, 각기 자존심이 강하고, 성격이 맞지 않아 자주 다투고, 헤어지는 상황을 반복했다는 이야기가 《조선창극사》에 소상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 한 대목에서 송흥록은

 

“맹렬아, 맹렬아, 잘 가거라. 네가 간들 어쩔소냐, 운운하여 그 슬프고 외롭고 애닯고 사랑스럽고도 미운 감정을 여지없이 발로하였는데, 문밖에서 듣고 섰던 맹렬은 동감(同感)의 정(情)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들어와서 서로 화해하고, 이것이 자신도 모르는 결에 자가(自歎歌)로 부른 것이, 우연히 진양조를 완성한 것”이었다고 적고 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