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홍문연가 鴻門宴會>라는 제목의 단가는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홍문(鴻門)이란 곳에서 연회(宴會)를 가졌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노래 첫대목 사설 가운데는“ 진(秦)나라 모진 정사(政事) 맹호독사(猛虎毒蛇) 심하더니, 사슴조차 잃단 말가“ 란 말이 나오는데, 왜 여기 에 느닷없이 사슴을 잃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지록이마(指鹿以馬), 또는 지록위마(指鹿爲馬)와 관련하여 지난 호에서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그 뒤로 이어 나오는 사설을 주해(註解) 부분과 함께 읽어 보기로 한다. “초야에 묻힌 영웅, 질족자(疾足者-발 빠른 사람) 뜻을 두고 곳곳이 일어날 제, 강동의 성낸 범(항우를 뜻함)과 폐택(沛澤)에 잠긴 용(龍-유방을 가리키는 말)이 각기 기병(起兵) 힘을 모아 진(秦)나라를 멸(滅)할 적에, 선입정(先入定), 관중자(關中者)-진나라의 서울이었던 관중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면 왕(王)을 하리라. 깊은 언약이 어젠 듯 오늘인 듯. 어찌타 초패왕은 당시 세력만 믿고, 배은망의(背恩忘義-은혜를 배반하고 의로움을 잊음)하단 말가.” 무죄한 패공을 아무리 살해코저 홍문에다 설연(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1903년 겨울, 해가 어느덧 산 너머로 넘어가는 밤 충청북도 회인(懷仁, 지금의 보은 일대)에 살던 부자(富者) 정인원은 자기 집 사랑채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기엔 그저 평안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종잇장 하나를 들고 벌벌 떨고 있군요. 무엇이 그를 이렇게 떨게 했을까요. 일렁이는 호롱불 아래, 종잇장에 적힌 한글이 언뜻언뜻 드러납니다. 이를 읽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정인원의 어깨너머로 그 글을 읽어봅시다. 지금은 읽기도 힘든 옛한글입니다. 번역을 해보면, “활빈당(活貧黨) 발령(發令). 이상 발령하는 일은 전일에 전(錢) 5천 냥을 보내라 하였더니, 3백 냥만 보내니 괘씸한 마음을 어디에 다 말하랴 … 명령을 내니 이번에도 따르지 않으면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을 것이로다.”라는 내용이네요. 허! 그냥 글이 아니었습니다. 홍길동(洪吉童)이 만들었던 도적 집단, 활빈당의 협박장입니다. 그러니 정인원이 이렇게 떨 수밖에요. 종이 위에 크게 박힌 화살 모양 수결(手決)이 그에겐 퍽 섬뜩했을 겁니다. 아니 그런데 잠깐, 활빈당은 고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가상의 존재 아니었던가요? 한데 20세기로 접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정치 현장에서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하려고 했다. 그 첫째는 토론(討論)을 즐겨한 일이다. 토론은 이어 조금 더 주제에 관해 구체적으로 의견을 나누게 되는데 이 과정이 논의(論義)다. 논의를 거치면 다음에는 그 일의 결정이 지어져야 하는데 이 시점이 바로 의결(議決)이다. 그래서 논의의 주제가 정해지면 토론-논의-의결의 순서를 밟아 주어진 과제를 마치게 된다. (그러니까 여기에 제목을 단 ‘토론의결’은 사자성어라기보다 ‘사자조어-四字造語’가 되겠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한문으로 기사를 찾으면 토론(討論) 8건, 논의(論議) 19, 의결(議決) 3건이 있다. 실록 원문 기사들을 통해 토론-논의-의결의 과정 곧 어떠한 문제들이 얼마만큼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 얼개를 보자. (경연관을 합하여 한 번으로 하고 강한 후에는 경연청에서 토론하게 하다) "번(番)을 나누어 나아와서 강(講)하는데, 모두 다른 사무를 맡은 관계로 많은 글의 깊은 뜻을 강론(講論)할 여가가 없어서, 나아와서 강(講)할 즈음에 상세히 다하지 못하게 되오니, 바라건대 지금부터는 합하여 한 번(番)으로 하여, 나아와서 강(講)한 뒤에는 경연청(經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몽유가(夢遊歌)> 속에 나오는 순(舜) 임금의 오현금 이야기, 패왕과 우미인의 이별 이야기, 과거 우리나라 조선창극단(朝鮮唱劇團)의 공연 기록에서도 <우미인가>는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 <몽유가> 끝부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 곧 “고기 낚아, 어부사 외우면서 행화촌 찾아가, 고기 주고, 술을 사서 취하여 돌아보니, 깨끗한 내 마음과 몸이, 세상의 공명을 비할소냐. 허름한 옷 입었다고 금의(錦衣)를 부러워할 것이며, 산나물 보리밥으로 배불리 먹었으니, 기름진 음식 무슨 소용이냐.” 부분은 다시 되뇌어 보아도 티 없이 맑고, 고운 소년의 콧노래처럼 들려 마음속이 깨끗해지는 느낌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단가, <홍문연가(鴻門宴歌)>인데, 이 단가는 “홍문이란 곳에서 연회(宴會)를 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뜻으로, 중국 진(秦)나라 말기, 초(楚)와 한(漢) 초기에 있었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적(史蹟)이나 사건을 엮은 노래말 위에 곡조와 장단을 얹은 노래다. 홍문이란 곳은 중국 섬서성 동쪽에 있는 지명인데, 이곳 군문(軍門)에서 항우(項羽)와 패공(沛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찬물 끼얹는 등목에 대서(大暑)가 별거드냐 어어 시원타. 아이고 시원하다 에어컨 냉방기는 멀리멀리 가드라고 보리밥 한 그릇, 된장에 풋고추 찍어 오이냉채 한 사발로 얼른 뚝딱 해치우니 천하의 일미가 따로 없구려 위는 양태문 시인의 <여름> 시의 일부입니다. 오늘까지 온 나라엔 물폭탄이 내리듯 물난리가 나서 많은 국민은 큰 재산 보았고, 안타까운 인명 피해까지 겹쳤습니다. 그래서 잠시 더위가 주춤하지만, 내일은 24절기 가운데 열두째인 대서(大署)며, 일주일 뒤인 7월 30일은 중복(中伏)으로, “염소뿔도 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더위가 가장 심한 때입니다. 이렇게 '된더위' 속의 조선시대 사람들이 더위를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 모시적삼 밑에 “등등거리”를 받쳐 입기도 했습니다. 등등거리는 소매가 없어 “등배자(藤褙子)”라고도 부르는데 등나무 줄기를 가늘게 쪼개서 얼기설기 배자 모양으로 엮어 만든 것입니다. 등등거리를 입으면 땀이 흘러도 옷이 살갗에 직접 닿지 않아 적삼에 배지 않고, 등등거리가 공간을 확보해 줌으로 공기가 통하여 시원합니다. 또 여기 양태문 시인은 그의 <여름>이란 시에서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새로운 종교가 한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디딜 때 새로운 신(神)의 형상도 함께 전해집니다. 이 땅에는 없었던 얼굴과 옷을 입은 낯선 존재들의 모습이 상으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숭배를 받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낯선 신들은 신성하지만 친근하고 낯익은 존재로 바뀌어 갑니다. 우리나라에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처음 소개된 것은 삼국시대의 일입니다. 세 나라가 불교를 받아들인 시기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 새로운 종교는 이내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최초의 사원이 세워지고 승려들이 등장했으며 새로운 사상과 이국적인 모습을 한 신(神)들이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신자들이 보았던 부처와 보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 글에서 소개하는 보물(옛 지정번호 보물 제333호) 금동보살입상은 지금까지 전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보살상 가운데 하나로, 우리나라 불교 조각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입니다. 또한 1,500여 년 전 이 땅의 불교 신자들을 떠올리기에 아주 적절한 소재이기도 합니다. 삼국시대 초기 불교 조각의 모습을 보여주는 보살상 이 상을 보았을 때 어떤 점이 가장 인상적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날도 더운데 일본에서는 얼마전 유명한 만화가의 예언이라면서 '7월 5일 대지진설' 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일본 국내는 물론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은 적이 있다. 야단법석이던 7월 5일은 ‘아무일도 없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대지진설’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인 듯 인터넷에는 별의별 걱정스런 글들이 올라와 있다. 대학생 아들의 일본여행이 걱정된다면서 자신의 SNS에 올린 학부형의 글 가운데는 “대학생 아들이 7월 18일, 친구들과 일본 도쿄 여행을 계획하여 비행기표랑 숙소를 잡아두었는데 보내도 될까요? 몹시 불안하네요.” 와 같은 글도 눈에 띈다. 소동이 빚어졌던 7월 5일이 지났건만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언론에 따르면 일본 대지진설을 퍼뜨린 이는 일본 만화가 타츠키 료(竜樹 諒, 70) 라는 인물로 그는 1999년 펴낸 《私が見た未来(내가 본 미래)》에서 '2025년 7월 5일 대재앙이 온다'고 예언한 것이 확산되어 일본 여행 취소가 크게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 온라인상에서는 '7월 5일 새벽 4시 18분'을 기준으로 한 카운트다운 영상이 확산되었으며, 일본 현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순임금이 탔다고 하는 악기, 오현금(五絃琴) 이야기를 하였다. 금(琴)이란 악기는 고려 예종 때, 중국 송(宋)으로부터 들어왔으나, 현재는 연주법이 단절되어 희귀한 악기로 남아있다는 점, 관련하여 책과 금을 들고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해 주던 좌서우금(左書右琴)의 선비들은 지금 만나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 또한 부부의 정(情)이 돈독할 때 쓰는 말, ‘금실 좋은’, ‘금실이 좋다’라는 금슬상화(琴瑟相和)라는 말에서도 이 악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구려의 왕산악이 중국에서 들어온 7현금을 고쳐 만들어 탔더니, 그곳에 검은 학(鶴)이 내려와 춤을 추어 현학금(玄鶴琴), 후에 <학>을 빼고 <현금-玄琴>, 곧 우리말 <거문고>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단가, <몽유가>에는 순(舜)임금의 오현금에 이어 양귀비를 잃은 뒤, 명황의 피눈물이 아미산에 뿌려졌다는 이야기, 초의 패왕이 된 항우(項羽)장사와 우미인의 이별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 수양산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죽어 간, 백이와 숙제, 오자서와 굴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기상관측 사상 유례없는 불가마 더위가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프랑스 파리 41도, 스페인 44도를 찍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덥다는 대구가 아니라도 전국이 37~38도의 온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도 섭씨 40도를 오르내린다는 보도가 들려온다. 이쯤되면 그야말로 불가마를 넘어 ‘불지옥’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더운 계절에는 떨어져 사는 일가친척이나 이웃의 안부가 걱정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무더위철 안부를 묻는 풍습이 있다. 이름하여 무더위 속의 안부편지인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 더위 문안편지)가 그것이다. 쇼츄미마이는 대개 시원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엽서를 보내는데 엽서에는 파도치는 그림이라든가, 시원한 계곡 그림, 헤엄치는 금붕어 등이 그려져 있어 엽서를 받는 사람이 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이 들게 배려한 것들이 많다. 그뿐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 집에 선물을 사들고 찾아가기도 한다.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를 보내는 때는 보통 장마가 갠 뒤 소서(小暑)부터 대서(大暑) 사이에 많이 보내는데 반드시 이때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입추까지 보내면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홍련(紅蓮)>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화원별집(花苑別集)》의 한 면입니다. 이 화첩은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대체로 시대순으로 실었고 산수화, 사군자 등 각종 옛 그림의 분야가 고루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사정은 여러 가지 그림에 능했던 조선시대 선비 화가인데 꽃과 새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이 화첩에는 심사정의 그림이 두 점 실려 있는데 모두 꽃과 새를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꽃 가운데 군자로 불리는 연꽃과 예쁜 물총새를 단아하게 담고 있습니다. 물총새와 연꽃 연꽃이 붉게 핀 연못에 물총새가 날아듭니다. 물총새는 파랑새목 물총새과의 새로 몸길이는 약 17cm입니다. 아주 작고 깜찍한 새지요. 물총새 몸의 빛깔은 윗면이 광택이 나는 청록색이고 아랫면은 주홍색을 띱니다. 청록색깔을 하고 있어서 중국에서는 비취색깔새 곧 취조(翠鳥)라고 부릅니다. 물총새는 물가의 사냥꾼입니다. 물고기 매[魚鷹]라고도 불리는데 먹이를 잡을 때면 수면에서 1~1.5m의 높이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가 수면에 물고기가 떠오르면 물속으로 뛰어들어 긴 부리로 순식간에 물고기를 잡습니다. 예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