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보 <기마인물형토기(騎馬人物形土器)>는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문화재입니다. 1924년 발굴될 때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지금도 신라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관람객의 사랑을 받습니다. 주인과 하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각각 말을 탄 모습으로, 말 탄 사람의 옷과 각종 말갖춤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신라인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입니다. 어떻게 발굴했을까? 이 기마인물형토기는 경주시 노동동에 있는 금령총(金鈴塚)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5월 30일이었습니다. 금령총은 6세기 초, 다시 말해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쯤의 신라 무덤입니다. 금령총 주변에는 신라의 초대형 무덤이 모여 있습니다. 금령총의 북쪽에 약 15m 떨어져서 단일 무덤으로는 신라의 가장 큰 무덤인 봉황대가 있고, 서쪽에는 금관총, 서봉총, 남쪽에는 황남대총, 천마총이 있습니다. 금관이 처음으로 발견된 금관총은 금령총과 불과 50여 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1920년 금관총에서 금관이 발견되었을 때 당시 언론은 ‘동양의 투탄카멘’이라고 특필하였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금관총은 집을 짓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지난 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국어 시험지에, “다음 밑금 그은 문장에서 맞춤법이 틀린 낱말을 찾아 고치시오.”에서와 같이 ‘밑금’이라는 낱말이 자주 나왔다. 그런데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밑금’은 시나브로 꼬리를 감추고 ‘밑줄’이 슬금슬금 나타나더니 요즘은 모조리 ‘밑줄’뿐이다. “다음 밑줄 친 문장에서 맞춤법이 틀린 낱말을 찾아 고치시오.”와 같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도대체 시험지 종이 바닥에다 무슨 재주로 ‘줄’을 친단 말인가? ‘금’은 시험지나 나무판같이 바탕이 반반한 바닥 또는 바위나 그릇같이 울퉁불퉁하지만, 겉이 반반한 바닥에 만들어진 자국을 뜻한다. ‘자국’이라고 했지만, 점들로 이어져 가늘게 나타난 자국만을 ‘금’이라 한다. 사람이 일부러 만들면 ‘금을 긋다’ 하고, 사람 아닌 다른 힘이 만들면 ‘금이 가다’ 또는 ‘금이 나다’ 한다. 사람이 만들 적에 쓰는 움직씨(동사) ‘긋다’의 이름꼴(명사형)이 곧 ‘금’이고, ‘그리다’와 ‘그림’과 ‘글’도 본디 뿌리는 ‘긋다’에서 벋어난 낱말이다. ‘줄’은 반반한 바닥(평면)에 자국으로 나 있는 ‘금’과는 달리,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이른바 입체로 이루어진 기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심청이 죽으러 뱃사람들을 따라 떠나가고, 심봉사는 공양미 300석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서 뒤늦게 후회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음을 알게 되면서 기절하게 된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한걸음에 눈물짓고, 두 걸음에 한숨 쉬며”라는 심청이가 뱃사람들을 따라가는 목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가는 길이 즐겁고, 신이 나는 행차가 아니다. 천근의 몸으로 가기 싫은 길을 한걸음, 한걸음, 옮겨 놓는 상황임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 심청이가 죽으러 가는 길, 슬픔의 극치를 표현하고 있는 부분인데, 신나게 서두를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슬픔으로 가득 찬 계면조의 소리 일색이라고 해도, 분위기의 반전은 필요한 법이다. 한 시간 내내, 또는 그 이상을 눈물만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청가에도 맹상군 이야기도 나오고, 뺑덕어미 이야기도 그리고 다음에 이어질 <범피중류> 대목처럼 넓은 바다를 헤쳐 나가면서 주위의 경관을 감상하는 우조의 느낌도 나와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다, 《악기(樂記)》에서는 사람의 감정을 애심(哀心), 희심(喜心), 노심(怒心)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새해가 밝아 오면 일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사참배를 위해 전국의 유명한 신사(神社, 진쟈)나 절(寺, 오데라)을 찾아 떠난다.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은 비교적 규모가 큰 지역의 신사라도 찾아나선다. 신사참배의 나라 일본인의 모습은 정초가 되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신사참배야 연중 이어지는 것이지만 특별히 정초에 하는 신사참배를 가리켜 하츠모우데(初詣)라고 하는데 하츠모우데는 단순한 참배가 아니라 ‘정초 기도’의 의미가 크다. 일본의 정초 하츠모우데 풍습은 “도시코모리(年籠り)”라고 해서 집안의 가장이 기도를 위해 그믐날 밤부터 정월 초하루에 걸쳐 씨신(氏神)을 모신 신사(神社)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던 것이 그믐밤 참배와 정초 참배로 나뉘었고 오늘날에는 정초 신사참배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반인들의 정초 기도 풍습은 명치시대(1868년) 중기부터 유래한 것으로 경성전철(京成電鐵) 같은 철도회사가 참배객 수송을 대대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철도를 이용해 유명한 신사나 절을 찾아다니게 되면서 보편화 되었다. 하츠모우데(初詣) 기간은 보통 1월 7일까지로 알려졌지만 마츠노우치(松の内)라고 해서 1월 15일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그치다’나 ‘마치다’ 모두 이어져 오던 무엇이 더는 이어지기를 그만두고 멈추었다는 뜻이다. 이어져 오던 것이므로 시간의 흐름에 얽혀 있고, 사람의 일이나 자연의 움직임에 두루 걸쳐 쓰이는 낱말이다. 그러나 이들 두 낱말은 서로 넘나들 수 없는 저만의 남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그치다’와 ‘마치다’의 뜻이 서로 넘나들 수 없게 하는 잣대는, 미리 어떤 과녁이나 가늠을 세워 두었는가 아닌가다. 미리 어떤 과녁이나 가늠을 세워 놓고 이어지던 무엇이 그 과녁을 맞혔거나 가늠에 차서 이어지지 않으면 ‘마치다’를 쓴다. 아무런 과녁이나 가늠도 없이 저절로 이어지던 무엇은 언제나 이어지기를 멈출 수 있고, 이럴 적에는 ‘그치다’를 쓴다. 자연의 움직임은 엄청난 일을 쉬지 않고 이루지만, 과녁이니 가늠이니 하는 따위는 세우지 않으므로, 자연의 모든 움직임과 흐름에는 ‘그치다’만 있을 뿐 ‘마치다’는 없다. 비도 그치고, 바람도 그치고, 태풍도 그치고, 지진도 그친다. 과녁이나 가늠을 세워 놓고 이어지는 무엇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라고 모두 과녁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이나 움직임에는 ‘그치다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민보어신(民保於信) 백성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마지막 단계는 나라의 정치 제도가 백성에게 믿음[信]을 주는 일이다. 신(信)은 민본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신(信) : 임금이 말하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법은 믿음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처음에는 저화(종이돈)를 보물로 삼아 그것을 쓰게 하였다가, 인제 와서 오로지 돈만을 쓰게 하고 그것을 헛되이 버리게 된다면, 백성 가운데 저화를 가지고 있는 자가 어찌 근심하고 한탄하지 아니하랴.(세종 7/4/14) 처음에는 저화를 쓰게 하다가 지금에 와서 못 쓰게 한다면 이는 백성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 강조하고 “민간에 돈을 주고서 저화를 거둬들이는 것이 옳을 것이다.”라고 한다. 백성이 정부의 시책을 따르게 하려면 국가가 먼저 믿음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믿음/신(信) : 그윽이 생각하건대 나라는 백성에게서 보전되고, 백성은 믿음에서 보전되는 까닭으로, 임금님의 정사(政事)는 반드시 믿음을 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세종 9/1/26) 가뭄으로 그만두기로 한 강무를 병조의 계로 다시 강무하는 데 관해 정지시키자는 상소가 올라온다. 강무를 해야 하는 것, 백성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제 며칠 후면 계묘년 토끼해가 지나고 곧 갑진년 용띠해가 밝는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일본에서는 오오소우지(大掃除, 대청소)를 하고 연말이면 도시코시소바(年越しそば, 해넘이 국수)를 먹는다. 그런가 하면 집 대문에 시메카자리( 注連飾り, 금줄)를 매달고 집이나 상가 앞에 카도마츠(門松, 소나무장식)를 세워 나쁜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기원한다. 시메카자리는 연말에 집 대문에 매다는 장식으로 짚을 꼬아 만든 줄에 흰 종이를 끼워 만드는데 요즈음은 편의점 따위에서 손쉽게 살 수 있다. 이러한 장식은 농사의 신(稻作信仰)을 받드는 의식에서 유래한 것인데 풍년을 기원하고 나쁜 액운을 멀리하려는 뜻으로 신도(神道)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도 있고 한편으로는 일본의 나라신(國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과 관련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메카자리는 12월 말에 대문에 장식하고 지역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개 1월 7일 이후에 치우는 게 보통이다. 관서지방에서는 1월 15일에 치우고, 미에현(三重縣 伊勢志摩) 같은 지방에서는 1년 내내 장식하는 곳도 있는 등 곳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카도마츠”는 12월 13일에서 28일 사이에 집 앞이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심청이가 떠나야 하는 마지막 날의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반야진관에 맹상군”이 아니어든,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라는 혼잣말의 의미를 소개하였다. 한밤중, 진나라 관문은 막혀 있고, 뒤에서는 군사들이 쫓아오고 있는 다급한 상황이다. 일행 중,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사람이 있어서 그 소리를 흉내 냈더니, 성(城)안의 모든 닭이 잠에서 깨어나며 한꺼번에 울었고, 그 바람에 성문을 지키던 병사도 날이 샌 줄 알고, 문을 열어주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슬픔이 가득 찬 계면조의 소리 속에서도, 분위기 반전을 위한 대목은 필요한 법이다. 공양미 300석에 몸이 팔린 심청, 드디어 선인(船人)들과 약속한 날이 밝아오니, 사당에 하직 인사를 마치고, 아버지와도 이별한 다음, 선인들을 따라나서는 약속 시간이 된 것이다. 아무 물색도 모르고 있던 아버지가 어딜 가느냐? 물으며 답답하다고 말하라고 재촉한다. 더는 아버지를 속이는 것도 자식 된 도리가 아니어서 심청은 눈물로 그간의 상황을 고백한다. “아이고 아버지, 공양미 300석을 누가 저를 주오리까? 남경 장사 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스물두째이며 명절로 지내기도 했던 ‘동지(冬至)’입니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곧 ‘작은설’이라 하였는데 ‘해’의 부활이라는 큰 뜻을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하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첨치(冬至添齒)’ 곧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동지는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부릅니다. 동지의 특별한 풍속을 보면 다가오는 새해를 잘 계획하라는 뜻으로 달력을 선물하는데 더위를 잘 견디라는 뜻으로 부채를 선물하는 단오 풍속과 함께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지의 또 다른 풍속에는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나 시할머니에게 버선을 지어 선물하는 “동지헌말(冬至獻襪)”이란 아름다운 풍속도 있었습니다. 이날 새 버선을 신고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으면 수명이 길어진다고도 믿었지요. 그런데 이날 가장 보편적으로 지내는 풍속은 팥죽을 쑤어 먹는 일일 것입니다. 특히 지방에 따라서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솔가지에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자유는 사람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바람이다. 그러나 사람은 몸과 마음에 얽힌 굴레와 멍에 때문에 자유를 누리기가 몹시 어렵다. 가끔 굴레를 벗고 멍에를 풀었을 적에 잠깐씩 맛이나 보며 살아갈 수가 있지만, 온전한 자유에 길이 머물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의 몸과 마음에 얽힌다는 굴레나 멍에는 빗대어 말하는 것일 뿐이고, 참된 굴레나 멍에는 소나 말 같은 집짐승을 얽어매는 연모다. ‘굴레’는 소나 말의 머리에 씌워 목에다 매어 놓는 얼개다. 소가 자라면 코뚜레를 꿰어서 고삐를 코뚜레에 맨다. 그리고 고삐를 굴레 밑으로 넣어서 목뒤로 빼내어 뒤에서 사람이 잡고 부린다. 이때 굴레는 고삐를 단단히 붙들어 주어서, 소가 부리는 사람의 뜻에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말은 귀 아래로 내려와 콧등까지 이른 굴레의 양쪽 끝에 고삐를 매어서 굴레 밑으로 넣고 목뒤로 빼내어 뒤에서 사람이 잡고 부린다. 굴레가 고삐를 맬 수 있게 하고 움직이지 않게 하여, 말이 부리는 사람의 뜻을 거스를 수 없도록 한다. ‘멍에’는 소나 말에게 수레나 쟁기 같은 도구를 끌게 하려고 목덜미에 얹어 메우는 ‘ㅅ’ 꼴의 막대다. 멍에 양쪽 끝에 멍에 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