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 전인 9세기 초에 만들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설화집이 있는데 그 이름은 《일본국현보선악영이기(日本國現報善惡靈異記》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일본국현보선악영이기(日本國現報善惡靈異記》 나라(奈良)지방의 한 마을에 다데하라도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는 영험한 약사여래불이 있었다. 때마침 이 마을에는 눈먼 과부가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이 모녀는 생활이 너무나 어려워 끼니를 잇기조차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모녀는 그대로 앉아서 죽느니 약사여래불에 가서 기도라도 드리다 죽을 요량으로 어린 딸을 데리고 절로 향했다. 그러나 남루한 행색으로 약사여래불당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절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도를 할뿐이었다. 제 목숨은 아깝지 않으나 제 딸아이의 목숨이 안타깝습니다. 한꺼번에 두 명이 죽을 지경이니 바라옵건대 제 눈을 뜨게 해주시옵소서.라고 빌었다. 여자는 절박한 마음으로 약사여래불이 있는 절을 향해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때 절에서 이 모습을 보던 관리인이 나와 이 모녀를 약사여래불상으로 안내하였고 이들은 더욱 열심히 기도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예전에 한국인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온돌방 아랫목에서 한 겨울을 보냈다. 지금은 보일러가 보급되어 거의 온돌이 사라졌지만 과거 한국인의 겨울철 난방은 뭐니 뭐니 해도 뜨끈뜨끈하게 불 땐 아랫목이었다. 글쓴이의 어린 시절만 해도 아랫목은 겨울철 온 식구가 모여 오순도순 보내던 곳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사정은 어떠한가? 일본은 우리처럼 온돌문화가 아니라 다다미 문화다. 다다미란 돗자리 문화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따라서 겨울철이 되면 방안이 춥다. 이러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고다츠(こたつ, 火燵炬燵)라는 난방기구가 생겨났다. 요즈음은 전기 고다츠가 주종을 이루지만 예전에는 숯불이 쓰였다. 고다츠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 가장 쉽게 설명한다면 난로를 사각 나무판으로 덥고 그 위에 이불을 덮어씌워 놓은 형태로 발을 이불속에 넣는 구조이다. 고다츠는 밥을 먹을 때는 식탁이요, 아이들이 공부를 할 때는 책상으로 쓰고 차를 마실 때는 차탁으로 쓰는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지만 기본적으로 발을 고다츠 속에 넣어 보온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 일본 겨울의 필수품이라고 선전하는 난방기구 고다츠(こた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일본에서는 가업을 대대로 이어오는 가게들이 많은데 이를 일컬어 시니세(老鋪)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오래된 가게라는 뜻이다. 이러한 시니세에는 백화점도 있고 된장가게도 있으며 기모노 같은 옷가게는 물론이고 오래된 여관이나 과자점도 있다. 무엇이든 자기 대에서 끝나지 않고 대를 이어 가는 가게라면 시니세인 것이다. 따라서 그 지방의 전통 있는 물건이나 먹거리 따위를 찾는 사람들은 그 고장의 시니세를 찾으면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 할 수 있을 것이다. 품질은 기본이고 무엇보다도 신용을 목숨처럼 여기는 시니세는 시대에 유행하는 세련된 장식이나 점포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어딘가 모르는 안정된 모습 속에서 정감어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딱히 시니세가 100년이라든가 몇 백 년이어야 하는 조건은 없지만 그래도 100년은 되어야 시니세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는 창업 100년 이상의 기업이 21,000개나 있다. 200년 이상의 기업은 3,000개가 있다고 한다. 주로 이러한 시니세 가게는 술과 전통과자점, 옷가게 따위의 전통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 20세기 초의 건설회사 금강조 회사 직원들 한 조사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시치고상(七五三)이란 어린 자녀에게 일본 전통 옷인 기모노를 입혀 신사참배하는 것을 보통 일컫지만 최근에는 가족사진만을 찍는 집도 늘고 있다 이는 11월 7일 일본 잡지 러닝파크(ラニングパク)에서 소개한 말이다. 일본에는 우리나라처럼 아이들 돌잔치라는 게 없다. 하지만 남자 아이는 3살과 5살 그리고 여자 아이는 5살과 7살 되는 해를 맞이하여 부모님을 비롯한 일가친척과 함께 신사참배를 하는 습관이 있다. 당신은 아이의 시치고상 준비를 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61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물론 여기서 그렇다고 한 것은 아이에게 일본 전통 옷을 입혀 신사참배를 한다는 뜻이다. 61퍼센트 외에 18퍼센트는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시치고상을 하긴 할 것이라고 했고 21 퍼센트만이 별다른 계획이 없다고 했다. 말하자면 79퍼센트가 시치고상을 어떤 식으로든지 치루겠다는 이야기다. 시치고상에 해당하는 나이의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 던진 이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 1위는 사진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겠다.라는 답이 단연 1위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돌잔치를 하는 한국에서는 돌잔치 사진이 중요하듯 일본 부모들은 기모노를 입힌 귀여운 아이의 사진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는 죠카마치(城下町)라는 이름의 도시가 번성했는데 죠카마치란 말 그대로 성주가 살던 성(城)과 관련 있는 도시다. 아먀구치현 하기시나 기후현의 다카야마시 같은 곳이 죠카마치(城下町)의 대표적인 도시지만 현재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 절반이 죠카마치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죠카마치는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고장이다. 헤이안시대(794-1192) 이후 무사정권 시대의 긴 역사를 가진 일본의 성(城)은 성주를 중심으로 한 절대 권력의 중심지다. 하늘만큼 높이 쌓아 올린 성곽의 높이가 성주의 권력을 대변해주는 것이라도 되는 양 오늘날 남아 있는 성들은 그 규모가 매우 크다. ▲ 효고현의 다츠노성을 중심으로 한 죠카마치(城下町) 풍신수길의 오사카성도 규모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큰 곳이다. 오사카 성은 성곽의 돌덩이 하나만도 사람 키의 몇 배에 달할 만큼 규모가 크다. 일본의 제2도시 오사카도 오사카성을 중심으로 죠카마치(城下町)의 하나로 출발 했던 것이다. 물론 에도성을 중심으로 했던 곳이 지금의 동경이다. 일본에서 조용한 역사의 고장을 찾고자 한다면 이 죠카마치를 중심으로 찾아 가보면 뜻밖에 좋은 곳을 만나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사슴 뛰노는 절 천년고찰 동대사에 놀러가는 이웃들 오사카 나라 교토 묶어 3박4일 무얼 보고 올까? 동대사를 세운 백제 행기스님 초대 주지 백제 양변 스님 여기서 처음으로 일본 화엄종 강설을 한 신라 심상대덕 ...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한 세월 속 고승들의 발자취는 지워지고 지금 사람들 단풍든 고찰에 뛰어노는 사슴 쫓아 사진 찍기 바쁘다 ▲ 동대사 사슴은 사람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아양을 부린다. 정말 그렇다. 동대사는 나라시대 일본 최고의 절이자 현재도 천년 고찰로 그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오사카, 교토, 나라 이렇게 3도시를 엮어 3박 4일 코스로 떠나는 여행 상품이 즐비하다. 오사카만 해도 비행기로 한 시간 반이다 보니 바로 이웃집 드나들듯이 훌쩍 다녀오는 사람도 늘고 있다. 동대사는 나라공원 안에 있어 사슴이 한가로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관광객이 다가서면 사슴이 달려와서 먹이를 달라고 아양을 부려 인기 만점의 절이기도 하다.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는 나라현 나라시 조우시쵸 (奈良市司町)에 있는 천년 고찰로 1300여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도 일본 불교의 원형을 지금껏 고이 간직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천년고도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 (葵祭),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 (祇園祭), 10월 22일의 지다이마츠리(時代祭)를 꼽는다. 오래된 순서를 꼽으라면 아오이마츠리 (567년), 기온마츠리( 863년), 지다이마츠리(1895년) 순으로 꼽을 수 있다. 성격으로 따지자면 아오이마츠리는 궁정에서 시작한 마츠리(국가의 제사 형식)로 볼 수 있고 기온마츠리는 서민(전염병 퇴치의 제사)층에서 향수하던 마츠리다. 내일 10월 22일에 열리는 지다이마츠리는 명치정부가 교토 천도(헤이안 천도, 794년) 1100년째를 기념하여 명치28(1895)년에 새로 시작한 마츠리다. 명치정부는 교토 천도 당시의 환무왕(桓武天皇)을 모시기 위한 사당으로 헤이안신궁(平安神宮)을 만들고 그해 10월 22일부터 10월 24일에 걸쳐서 성대한 마츠리를 거행했는데 올해로 120년을 맞이한다. ▲ 10월 22일 열리는 지다이 마츠리의 한 장면 지다이마츠리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도구, 행렬 시간 등을 따지자면 7월의 기온마츠리(祇園祭)가 가장 성대하지만 5월의 아오이마츠리(葵祭)나 10월22일의 지다이마츠리(時代祭)도 꽤 볼만하다. 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0월 15일은 조선신궁 진좌제(신을 맞아들이는 행사)의 날이다. 내지인(일본인)도 조선인도 속속 돌계단을 오른다. 그러나 배전(신전)의 앞까지 가자 내지인은 모자를 벗고 절을 하고 조선인은 휙 발길을 돌려 돌아갔다. 단 한사람의 조선인도 참배하는 자는 없었다. 《해외신사사》, (1953, 小笠原省 지음) 그런데도 《조선과 건축, 1925.11》에는 조선인이 조선신궁의 건립을 매우 기뻐하며 반긴 듯이 적고 있다. 반도 1,700만 백성의 수호신인 조선신궁은 경치가 뛰어난 남산 허리에 신성한 땅을 골라 어진제가 감행된다. 우리 반도 주민은 기뻐 춤추는 것을 그칠 수가 없으며 이것은 조선 병합의 뜻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고운 빛깔을 더하는 것이다. 설마 조선인이 일본의 신을 모시는 신사 건립에 두 손을 들어 환영했을까? 만일 그런 자가 있다면 그는 친일파거나 민족 반역자였을 것이다. 훗날 친일문학가로 전향한 김기진(19031985)조차도 지금 나의 불평과 울분의 궁극의 도착지는 다만 한곳 밖에는 없다. 모든 것이 밉다. 남산 위로 자동차가 다니게 되었다. 나는 남산이 밉다. 남산이 미워서 못 견디겠다. 고 했을 정도다. 그만큼 남산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철없이 떠나온 야마나시의 청년 조선땅에 첫발 디디던 날 흰 옷 입은 식민지 백성들 따뜻이 맞이했지 백자에 밥을 담아 먹고 백자에 김치를 담아 먹고 백자에 막걸리를 마시는 백자의 나라 제국주의 일본이 최고인줄 알던 스무살 청년 오천년 조선의 역사와 백자를 무시로 쓰는 높은 문화에 그만 빠져 든 세월 조선옷을 입고 조선의 문화를 사랑하다 조선에 묻힌 희고 맑은 영혼 망우리에서 영원히 잠들다 <이윤옥 시, ‘아사카와 타쿠미’> ▲ 아사카와 다쿠미 영화 <백자의 사람>, 다쿠미 생전 모습(오른쪽) 일본 야마나시현 출신으로 조선 문예운동에 힘썼던 아사카와 타쿠미(淺川巧, 1891∼1931)의 무덤이 깨끗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몇 해 전 찾은 망우리 무덤에는 잔디도 많이 벗겨져 안타까웠었는데 말이다. 서울시가 시립승화원을 통해 지난 9월부터 망우리공원묘지 안에 있는 아사카와 타쿠미의 무덤에 잔디를 새로 심고 계단석도 새로 정비했다니 모처럼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 야마나시현 호쿠토시 시라쿠라 마사시(白倉政司) 시장 등 '아사카와(淺川) 형제 추모회' 관계자 30여명이 지난 10월 2일 방한했다. 아사
[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최근 페루 남성에 의한 살인 사건보도에서 일본에서 외국출신자들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니샨타 씨는 스리랑카인으로 일본에 유학 와서 교수가 된 사람이다. 사회학자이자 방송인이기도 한 그는 아예 국적을 일본으로 바꾼 사람으로 하고로모국제대학(羽衣國際大學)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다문화 사회에서 서로 돕고 힘을 모아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하는 판국에 일본 언론이 가세하여 마이너스 보도를 할 때 마다 니샨타 씨는 화가 난다고 했다. 이번 페루 남성이 저지른 살인사건 보도만 해도 구태여 국적을 페루라고 밝힐 이유가 뭐냐는 질책이다. 뉴스 시간마다 페루인의 살인사건이 보도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페루 사람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된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번 살인사건을 저지른 사람이 페루 사람이 아니라 일본계 페루인이라는 점이다. 니샨타 씨는 이번 용의자가 일본 국적을 갖고 있는 일본계 페루인 임에도 페루 남성 이라고 하는 바람에 5만 명이나 되는 일본에 사는 페루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 《일본에서 알게 된 행복의 값》의 저자인 니샨타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