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경진(庚辰) 25일 황태자가 성인식(원복-元服-이라함)을 했다. 14살이며 성무왕(聖武天皇)이다. 이날 조정에서는 대사면을 했다. 죄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사면이 이뤄졌으며 신분도 묻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는 이날을 기해 100살이 넘은 사람에게는 곡식 5말을, 90살 이상인 자에게는 3말, 80살 이상인 자에게는 1말을 하사했으며 효자와 절부(節婦)는 마을 입구에 비를 세우고 종신토록 조세를 면제했다. 또한 과부나 홀아비, 독거노인, 중병환자들에게는 각각의 상황에 맞게 필요한 물건을 하사했다.고 《속일본기, 續日本紀》는 전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원명왕 (재위 707~715)때의 일이다. 《속일본기》에는 주로 정치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위와 같은 특별한 날에는 요즈음처럼 이른바 특별사면을 했다는 기록이 종종 보인다. 뿐만 아니라 699년 11월에는 야마토 가츠라기노가미 마을에 사는 가모 씨가 1남 2녀의 세쌍둥이를 낳았다. 조정에서는 포와 면 그리고 쌀을 산모에게 하사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세쌍둥이는 희귀한 일이라 국가가 신경을 쓴 기색이 역력하다. 《속일본기》에는 세쌍둥이 또는 쌍둥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도쿄 시부야 거리는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그 복작대는 시부야 역 앞 작은 공원에 충견 하치의 동상이 서있다. 시부야 역의 하치 동상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으로 어제 찾은 하치동상 앞에는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초만원이었다. 그 가운데는 하치의 모습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이 날도 하치는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다. 충견 하치는 1923년 일본 북부 아키타현에서 태어났다. 이른바 아키타견(秋田犬)으로 한국의 진돗개만큼이나 뼈대 있는 족보 출신이다. 태어난 이듬해 충견 하치는 개를 좋아하는 동경제국대학 농학부 교수인 우에노 씨 집으로 오게 된다. 우에노 교수는 하치에게 꼬리표를 달아 화물열차 편으로 아키타에서 도쿄까지 실어 오는데 무려 20시간의 긴 여행길 이었다. 이때부터 하치는 우에노 교수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대우 받으며 무럭무럭 크게 되는데 충견 중에 충견인 만큼 주인의 극진한 사랑을 뼈 속까지 느끼게 된다. 우에노 교수 집에는 하치 말고도 죤과 에스라는 개가 있었는데 유독 하치만은 주인의 출퇴근 시에 현관에서 배웅을 했으며 어느 날 부터인가는 주인이 이용하는 시부야 역까지 마중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도쿄의 한 여름은 한국의 무더위 보다 더 덥다. 그것은 일본의 습도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더위는 나무 그늘에 가면 어느 정도 식지만 도쿄의 무더위는 그런 여유를 주지 않는다. 너무 덥다보니 자기 자신보다도 가족이나 친지가 생각나는 것일까? 그런 증거가 바로 무더운 여름날 일가친척과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이름 하여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한다면 무더위 안부 편지라고나 할까? 쇼츄미마이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지만 직접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 집에 찾아가기도 한다. 편지는 대개 엽서를 보내는데 엽서에는 파도치는 그림이라든가, 시원한 계곡 그림 등이 그려져 있어 엽서를 받는 사람이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게 한다. ▲ 무더위 안부 편지용 엽서 카모메메루 (かもめ~る)광고 일본우편주식회사(日本郵便株式會社)에서는 이 시기를 특별 엽서보내기 기간으로 정하여 1950년부터 쇼츄미마이용우편엽서(暑中見舞用郵便葉書)를 발행하고 있다. 또한 1986년부터는 엽서에 복권 번호처럼 번호를 새겨 넣어 당첨되면 상품을 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무더위 안부를 묻는 쇼츄미마이 엽서 이름을 카모메메루 (かもめ~る)라고 하는데 이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일본의 최고 관광지 1위는 교토 후시미이나리대사伏見稻荷大社)로 꼽혔다. 세계최대의 여행 입소문 사이트인 미국의 트립어드바이저에 따르면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일본의 관광지는 교토 소재 후시미이나리대사로 이것은 종래 청수사나 금각사의 인기를 누른 것이다. 이는 일본 산케이신문 7월 5일자 보도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오이나리상(お稻荷さん)이라고 알려진 교토 후시미이나리대사는 전국에 4만 개 이상 있는 이나리신사(稻荷神社)의 총본사다. 일반적으로 상업번창의 신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 이나리신사에서는 오곡의 풍요를 뜻하는 농업의 신을 모신다. 일본에 있는 8만여 개의 신사 중 절반을 차지하는 이나리신사는 일본 땅 어디를 가나 쉽게 만나는 신사이며 교토의 후시미이나리대사는 이 신사의 우두머리 격이다. ▲ 우리나라 절의 기와불사처럼 도리이 기둥에는 기부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후시미이나리대사에 바친 크고 작은 도리이는 일만여 개에 이른다. 교토 후시미이나리대사는 면적이 27만평으로 그 크기만으로도 압도적인데다가 해발 233미터의 이나리산(稻荷山) 산 정상까지 가는 길에는 1만여 개의 붉은 도리이가 만리장성 모양 끝없이 길게 늘어서서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아베정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30일, 도쿄 시부야역 주변에서 칠석 장식물을 세우고 행인들에게 평화의 소원을 적은 메시지를 단사쿠(短冊, 소원종이)에 써달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북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손뼉을 치면서 집단적 자위권 인정은 미국의 전쟁에 참가하는 것, 그 누구도 전쟁으로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다 와 같은 말을 확성기를 통해 행인들에게 호소했다. 소원종이에 마음으로부터 미소를 이라고 쓴 시부야쿠에 사는 회사원 요나코 씨(古林沙子, 33살)는 미소는 평화에 이르는 길이다. 전쟁이 아닌 대화로 해결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6월 30일치 마이니찌신문(每日新聞)이 보도한 기사다. 곧 다가올 칠석행사로 일본거리는 지금 형형색색 장식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백화점이나 상점가는 물론이고 역전이나 동네 골목길까지 사사(笹)라고 부르는 가는 대나무 가지를 세우고 거기에 알록달록한 소원종이를 적어 매단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로 숨진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노란 리본에 위로의 말을 적어 주렁주렁 내걸듯 일본은 해마다 칠석날이면 소원종이를 쓰고 칠석행사를 다채롭게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문화심의회는 6월 20일 <군함도(軍艦島)>로 알려진 나가사키의 하시마(端島)를 포함한 다카지마탄광유적지 (高島炭跡) 등 9건을 사적으로 지적하도록 문부과학상에게 건의했다. 이 밖에 명승 5건, 등록기념물 6건, 중요문화적경관 1건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유적은 내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정부가 추천한 ”명치일본의 산업혁명유산 큐슈· 야마구치 관련지역으로 올 여름과 가을에 걸쳐서 실시 예정인 유네스코 자문기관에 의한 현지조사 전에 사적지정으로 국가에 의한 보호체제를 정비하는 것이다.” ▲ 과거 하시마탄광이었던 <군함도(軍艦島)> 위는 일본 아사히신문 6월 20일치 기사로 여기서 말하는 <군함도>란 해저탄광지로 일제강점기 때 인구밀도가 수도 도쿄의 9배가 넘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던 곳이다. 탄광이나 금광지역이 활황기 때에는 언제나 광부와 그 가족들 그리고 돈벌이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군함도>가 단순한 일본인들의 돈벌이 장소였다면 오늘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곳이지만 그러나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징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 종이기술은 610년 고구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공식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일본서기》의 고구려 승려 담징이 종이 만드는 기술을 전했으며 이 보다 앞서 513년에는 5경 박사가 백제에서 건너와 한자와 불교를 보급하면서 사경작업이 이뤄졌기에 이 무렵에 이미 종이기술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이는 일본 위키 사전에 나오는 일본 종이의 유래이다. 일본 종이를 와시(화지, 和紙)라고 하는데 기록상으로만 봐도 1400여년이 지났으니 상당한 기술이 축적 되었을 법하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대장경을 찍는 종이가 말해준다. 대장경에 관한 이야기는 세종 6년(1424)에 일본으로부터 조선에 건너온 사신들의 단식투쟁 기사가 보이는데 우리들이 조선에 온 것은 대장경을 얻기 위해서이며 만일 경판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돌아갈 수 없다. 차라리 여기서 식음을 전폐하고 죽어 버리겠다. 는 기록이 그것이다. 당시 일본은 대장경을 만들 능력이 없었기에 조선의 대장경을 숱하게 얻어 갔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 일본 종이(和紙)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장경을 요구하기 시작한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지금 일본은 장마철이다. 한국보다 한 달 정도 빠른 일본의 장마는 남북으로 긴 일본열도의 특성상 가장 아래 지방인 오키나와가 5월 5일부터 시작되고 동북 지방은 6월 6일 정도에 장마가 시작되어 무려 1달이나 장마 시작이 차이가 난다. 그에 견주면 일본의 중부지방이 장마가 끝날 무렵 한국의 남부지방이 장마가 시작된다. 장마 기간 동안에는 밖의 활동이 적어지고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데 이렇게 비가 지루하게 내릴 때 일본에서는 데루데루보우즈, てるてる坊主라는 인형을 처마 밑에 매달아 두는 풍습이 있다. 흰 천을 펴서 솜을 넣고 실로 묶으면 꼭 사람 머리통 모양인데 여기에 눈코입을 그려 넣고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아 두면 비가 그친다고 믿는 풍습인 것이다. ▲ 비가 그치길 바라는 인형을 데루데루보우즈, てるてる坊主라고 하며, 처마 밑에 매단다.(왼쪽), 비가 내리길 바라는 인형은 거꾸로 매달며 아메아메보우즈, あめあめ坊主라고 한다. 일본의 데루데루보우즈 풍습은 헤이안시대(794-1192)의 《카게로우닛키》라는 작품에 나올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오늘날과 같이 일반적으로 널리 확산된 것은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8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의 지진과 해일(츠나미)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앗아갔다. 당시의 참상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러한 재난 앞에 사람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들 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임시 천막촌에는 각지에서 보내오는 구호품이 넘쳐나고 자원 봉사자들 또한 전국 각지에서 앞 다투어 달려와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일본재단(日本財團)의 사사카와요헤이(笹川陽平) 회장은 누리집 인사말을 그렇게 시작했다. 일본재단은 50년이 넘는 자원봉사 단체로 사회 전반적으로 활동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고령화문제, 맞벌이시대의 육아문제를 포함하여 지구환경과 자원문제, 식량문제 등으로 고통을 받는 이웃과 사회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 고려박물관의 자원봉사자 가키바타 씨 사사카와 회장은 특히 지난 2011년 동일본대진재 이후 시민들의 자원봉사활동 인식이 한층 높아가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 단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반 시민, 기업, 비영리단체(NPO), 공적기간 등 다양한 층에서 관여하고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함께 1박 2일로 떠나온 아하메드 군으로부터 배운 말은 쇼코랑이라는 말이다. 아라비아 말로 고맙다는 말이라고 한다. 아랍어를 쓰는 그가 평소에는 무척 먼 나라 사람이라고 느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아주 가까워졌다. 아하메드 뿐만이 아니라 중국, 한국, 미얀마, 인도, 태국에서 온 유학생들과도 교류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의 나라가 바로 내 고향집과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바로 그들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폴 유학생 람슨메이 씨의 1박 2일 유학생 교류를 다녀와서 - 일본에는 수많은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싱가폴 유학생 람슨메이 씨처럼 저마다의 꿈을 갖고 유학 생활을 하고 있다. 낯설고 물선 나라에서 사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 어려움이 있겠는가만 가장 큰 어려움을 든다면 고향이 그리운 향수병일 것이다. 그러한 유학생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비록 유학생이지만 일본 내에서 당당한 한사람의 인격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다양한 보살핌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쵸후물레모임(調布ムルレの會) 사람들이다. ▲ 쵸후물레모임(調布ムルレの會) 의 한국과 교류 모습